김용우 소리꾼

   
 
     
 
나는 제주에서 공연제의가 오면 무조건 가고 싶다. 왜냐하면 제주의 땅에 발을 딛는 순간 느끼는 그 청량감 때문이다. 푸른 바다, 검은 돌담, 초록 나무 그 단순하고 순수한 빛깔과 청정한 공기. 제주의 민요는 제주를 닮았다.

내가 제주민요를 처음 접한 것은 1990년대 초반, 대학을 졸업하고 슬기둥에서 활동하던 때였다. 그 당시는 일명 '삐삐'라고 불렸던 호출기가 막 대중화되던 시기였다. 한 통신회사에서 '삐삐' 고객들을 위해 국악음반을 기획했고 내가 거기에 참여하게 되면서 제주교대 조영배 교수를 만나게 됐다.

조 교수는 오랜 시간동안 제주민요를 연구하신 분이어서 우리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민요의 원형적 아름다움은 훼손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하면 지금 이시대의 사람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다가갈 수 있을까 그것이 그 당시 나의 고민이었고 교수님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계셨다. 나는 통신사에서 만든 음반에 모두 4곡의 제주민요를 담았다. 용천검, 신아외기소리, 진서우제소리, 디딤불미소리가 그것이다.

나와 제주의 인연은 연이어 이어졌다. 얼마 되지 않아 한 방송사의 촬영차 제주 민속마을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그곳에서 조을선·이선옥 할머니를 만났다. 한창 전국으로 민요채집을 다니던 나에게 두 할머니와의 만남은 정말 값진 것이었다. 툇마루에 앉아 물허벅 장단에 맞춰 듣는 수많은 제주민요는 이후 나의 음악인생에 커다란 밑거름이 됐다.

제주민요는 다른 지역 민요와 달리 시김새, 즉 꾸밈음이 많지 않고 소탈하다. 그런데 그 단순한 선율이 다른 어떤 지역 민요보다 아름답고 감성적이다.

전라·경상·경기·서도소리도 물론 각각의 특징과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소리들은 제주민요에 비해서는 비교적 많이 알려져 있었다. 제주민요는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사랑하고 그만큼 더 잘 알고 있는 또 다른 나만의 재산이었다.

1996년 첫 음반 지게소리에 제주민요 '봉지가'를 수록한 것을 시작으로 2003년에는 '용천검'을 타이틀곡으로 음반을 냈고 2006년 십년지기 앨범에는 타이틀곡 '너영나영'과 함께 '신아외기소리'를 새로 편곡해 실었다. 그러고 보면 내가 부른 노래들 중에서 대중들이 가장 좋아했던 노래들은 제주민요들이었다.

나는 이달 초 '소리꾼 김용우의 아리랑'이라는 타이틀로 새 앨범을 발매했다. 정선아리랑, 밀양아리랑, 진도아리랑은 물론 북한지방에서 불려지던 '자진아리'까지 전국의 아리랑을 새로운 편곡과 새로운 악기로 탄생시켰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번 앨범에는 제주민요가 포함되지 않았다. 제주에는 예부터 전해지는 아리랑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너영나영'이나 '용천검'과 같은 민요는 '제주의 아리랑'이라고 칭해도 손색이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언젠가는 제주민요만을 가지고 음반 하나를 만들겠다는 소망도 가지고 있다. 국악이 새롭게 변하고 대중과 소통하지 않으면 박물관의 유물처럼 박제되고 말 것이다. 제주의 어느 계절이 아름답냐고 물으면 나는 4계절이 다 아름답다고 대답한다. 제주의 민요도 그렇다. 아쉬운 것은 사람들이 제주를 좋아하는 만큼 제주민요의 아름다움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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