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74> 여당 4·3특위와 공청회 ①

국민회의 4·3특위 주최로 열린 1차 공청회에서 주제발표를 하고 있는 필자. 왼쪽부터 고문승·강창일·추미애·양조훈·양영호·이영길.

"4·3 어떻게 풀 것인가" 주제에 관심 집중
 4·3성격 둘러싸고 5시간동안 뜨거운 논쟁

여당 4·3특위와 공청회 ①
'국민의 정부'가 출범했지만 김대중 대통령은 예민한 제주4·3 문제를 정부가 곧바로 나서서 해결하는 방식에 대해서는 부담을 느꼈던 것 같다. 김 대통령은 그런 속마음을 1998년 5월 15일 「한겨레신문」 창간 10주년 특별인터뷰에서 드러냈다.

"나도 4·3 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다. 해결방법은 피해자 가족 등이 국회에 청원을 내서, 청원이 이미 됐다면 국회 이름으로 결의해서 정부에 건의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결국 국회라는 정치권에서 이 문제를 먼저 제기하면 정부가 이를 받아들여 처리하는 수순의 그림을 그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대통령의 생각이 구체적으로 표출된 것이 집권여당의 4·3특위 발족이었다.

새정치국민회의는 1998년 3월 29일 당내에 '4·3사건진상규명특별위원회'를 구성했다. 4·3특위는 위원장에 2선인 김진배(전북 부안) 의원, 부위원장에 추미애(서울 광진을) 의원, 위원에 박찬주(전남 보성·화순)·양성철(전남 곡성·구례)·이성재(전국구) 의원과 제주도 당직자인 김창진·정대권·홍성제·고진부 등 모두 9명으로 편성됐다. 간사는 당 기획조정위원회 위성부 전문위원이 맡았다.

집권여당인 국민회의에는 제주 출신 국회의원이 없었다. 그래서 4·3특위 위원으로는 주로 초선인 율사 출신 국회의원들이 차출되었고, 원외인 제주도지부장과 각 지구당 위원장 등이 배치되었다.

4월 1일 김진배 위원장은 제주4·3의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다짐하고, 특히 제주도가 추진하는 4·3 해결 방안을 적극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신구범 도정은 4·3 50주년을 맞아 ① 진상규명의 원칙 ② 명예회복의 원칙 ③ 공동체적 보상의 원칙 ④ 평화 추구의 원칙 등 4·3 해결을 위한 네가지 기본원칙을 천명했다.

4·3 문제 해결을 위해 이렇게 차근차근 준비하던 국민회의가 뜻밖의 암초에 부딪쳤다. 그것은 앞에서 밝힌 4월 15일 여야 원내총무회담에서 여당의 제안으로 국회 4·3특위 대신 운영위에 '4·3 양민희생자 실태조사 준비소위원회'를 두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제주사회에 파장이 일어난 것이다. 제주지역 언론들은 이같은 반발이 다가오는 '6·4 지방선거'에서 큰 변수로 등장할 것이라고 앞질러 보도했다.

이에 당황한 국민회의는 진화에 나섰다. 이 안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진 한화갑 총무대행은 직접 나서서 "준비소위는 충분한 사전 준비를 위한 것이고, 이 또한 야당에서 먼저 제안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4·3은 그 무렵부터 제주 정치권의 풍향계가 되었다. 4·3을 잘못 건드렸다간 바로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바람개비와 같았다.

이런 파동을 겪은 국민회의 4·3특위는 첫 사업으로 1998년 5월 7일 제주에서 '4·3 공청회'를 개최했다. 이 공청회는 4·3 발발 50년만에 집권여당 주최로 처음 열렸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끌었다. 공청회는 "4·3사건 어떻게 풀 것인가"라는 큰 주제아래 제1주제 '4·3 역사 어떻게 볼 것인가', 제2주제 '4·3 문제 어떻게 풀 것인가'로 나누어졌다.

제1주제 발표자는 양조훈(제민일보 편집국장), 토론자는 강창일(제주4·3연구소장)·고문승(자유수호협의회 공동대표)·양영호(4·3위령사업 범도민추진위원)·이영길(전 도의원)로 결정됐다. 또 제2주제 발표자는 김순태(한국방송대 교수·작고), 토론자는 강남규(사월제공준위 공동대표)·고창훈(제주대 교수)·박창욱(제주4·3유족회장)·오균택(전몰군경유족회 대의원)으로 정해졌다. 사회는 추미애 국회의원이 맡았다.

4·3의 성격을 다룰 수밖에 없는 제1주제에서는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필자와 고문승 교수(제주전문대)는 4·3를 보는 시각에 큰 차이가 있었다. 1997년에 4·3을 공산폭동으로 보는 반공단체와 보수 성향의 인사들로 '자유수호협의회'(공동대표 강창수·고문승·오균택·장영배·한수섭)가 결성되었는데, 고 교수는 이 단체의 대표 자격으로 공청회 토론자로 나온 것이다.

공청회가 열린 한국방송대 제주지역학습관 강당에는 도민과 유족 등이 행사장을 가득 메웠다. 행사장 한쪽에는 소복단장을 한 여인들이 눈에 띄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반공단체에서 전몰군경미망인들을 동원했다는 것이다. 행사장에는 국민회의 4·3특위 김진배 위원장과 위원뿐만 아니라 한나라당 현경대 의원, 도지사 후보인 우근민(국민회의)·현임종(한나라당) 등도 참석했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 오후 2시부터 시작한 공청회는 저녁 7시까지 장장 5시간 동안 뜨겁게 진행되었다. 

☞다음회는 '여당 4·3특위와 공청회' 제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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