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75> 여당 4·3특위와 공청회 ②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열린 제2차 4·3 공청회. 왼쪽부터 박원순·심지연·추미애·서중석·양조훈·정근식

"공산폭동" 주장하며 유인물·퇴장 선동도
 정부·여당 부진 질책에 "분발하겠다" 약속

여당 4·3특위와 공청회 ②
1998년 5월 7일 국민회의 4·3특위가 주최한 공청회에서 '4·3역사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주제로 발표에 나선 필자는 "4·3 당시 토벌대는 갓난아기부터 노인들까지 무차별로 학살했다. 그러나 과거 정권들은 공권력의 불법집행으로 빚어진 인명피해의 실상을 감추기 위해 '공산폭동'이라는 이데올로기 문제로만 덧칠하기에 급급했다"고 포문을 열었다.

행사장인 한국방송대 제주지역학습관 강당은 빈자리가 없을 정도로 청중이 가득 찼는데, 보수측 참석자가 더 많은 것 같았다. 내가 발표할 때마다 간헐적으로 항의 고성을 지르던 일부 인사들은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없으면 '도피자가족'이라 낙인찍어 그 부모형제를 대살했다"는 대목에 이르자 폭발하고 말았다. 몇몇 참석자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이런 엉터리 발표를 들을 필요가 있는가, 나가자"고 선동하는 것이 아닌가? 장내가 웅성거렸다.

그동안 차분하게 사회를 보던 추미애 의원이 여기에 이르자 소리를 높였다. 법관 출신인 추 의원이 재판정에서 하듯이 "장내 정리를 하는 사람은 저 사람을 퇴출시키라"고 소리 지른 것이다. 일순 긴장감이 돌았다. 그러나 사회자의 단호한 조치에 분위기는 차츰 가라앉게 되었다.

당초 예상대로 다른 토론자들의 발표 요지는 필자의 견해와 비슷했으나, 유독 고문승 교수는 다른 입장에서 발표했다. 그는 "4·3은 공산집단이 일으킨 폭동"이라고 규정하고, 그 근거로 4·3 초기 인공기 게양, 민전의 스탈린·김일성 명예의장 추대, 김달삼의 해주대회 참석 등을 들었다. 이에 대해 필자는 "해방직후 건준에서 선포한 '인민공화국'과 북한정권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는 구분돼야 하며, 당시 중앙청에도 인공기가 걸렸고 해주대회 때는 전국적으로 1002명이 참석했는데 그렇다면 남한 국민 모두가 북한과 연계된 것이냐"고 반박했다.

이날 제2주제 '4·3문제 어떻게 풀 것인가'의 발표자인 김순태 교수는 "공권력에 의한 대규모 인권유린이라는데서 4·3해결의 논의가 출발해야 한다"고 전제하고, "따라서 우선 국가가 사죄하고 진실규명과 명예회복, 배상 순서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 방법으로 그는 국회 4·3 특위 구성과 특별법 제정이 시급하다고 제시했다.

1998년 9월 28일 국민회의 4·3특위는 서울 국회도서관 강당에서 제2차 '4·3 공청회'를 열었다. '제주4·3사건의 해결방향'이란 주제로 서중석 교수(성균관대)가 발표를 하고, 박원순(변호사·참여연대 사무처장)·심지연(경남대 교수)·양조훈(제민일보 상무이사)·정근식(전남대 교수)이 토론자로 나섰다. 사회는 1차 공청회에 이어 추미애 의원이 맡았다.

서울 공청회에서도 반공단체 회원들의 항의 소동이 있었다. '자유언론수호국민포럼'이라는 반공단체는 행사 시작 전부터 유인물을 뿌리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예고했다. 그 유인물에는 "4·3사건은 공산주의자들의 폭동으로 새삼스럽게 진상을 규명하자는데 대하여 대단히 의아하게 생각한다"며 행사 자체를 원천 부정했다.

이날 공청회에는 국민회의 유재걸 부총재·김진배 4·3특위 위원장, 한나라당 양정규·현경대 의원, 제주도의회 강신정 의장, 강호남·김영훈 부의장, 오만식 4·3특위 위원장, 고인호 서울제주도민회장, 박창욱 4·3유족회장, 장영배 자유총연맹 제주도지회장, 고문승 자유수호협의회 공동대표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서중석 교수는 4·3의 희생이 민간인 학살이라는 비인간적·반문명적 만행의 형태로 자행됐음을 강조하면서, 4·3문제 해결을 위해 국가가 취해야 할 조치로서 국회 4·3특위 구성, 4·3특별법 제정, 정부(미국 포함) 차원의 사죄와 반성 등을 꼽았다. 발표 도중 청중석에서 고성이 나오자 서 교수가 더욱 목소리를 높여 발표문을 낭독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럼에도 청중석에서 "너 몇 살이냐, 6·25때 어디서 뭐했느냐"는 원색적인 비난이 쏟아지자 급기야 이를 만류하는 4·3 유족들과 몸싸움이 벌어졌다.

필자는 이날 4·3문제 해결은 '중앙정부의 민주화 수준에 비례한다'는 외신 보도를 인용하면서, "최근에 제주를 방문했던 김대중 대통령의 4·3에 대한 발언을 주목했는데, 원론적 수준에 머물러 제주도민들이 섭섭해 있다"고 전했다. 이에 사회를 맡은 추미애 의원은 "그동안 정치적 혼란과 IMF 경제난 등 여러 장애로 인해 다소 부진한 감이 있다"고 해명하고, 정부와 국민회의의 분발을 다짐했다. 추 의원의 그후 행적을 보면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애를 썼는지 짐작할 수 있다.

☞다음회는 '추미애 의원의 4·3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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