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정월 초하루를 원단이라 부르고 나라마다의 세시풍습에 따라 새해 첫날의 행사를 갖습니다.

올해는 지난 천년을 마무리하고 다시 새천년을 맞는다는 의미에서 아쉬움과 바람들이 교차되는 설레임이 있었으며 그것은 지겨움이랑 버리고 아늑한 맘으로 잘 살아보고자하는 여망에서입니다.

저는 연말연시의 소중한 태양을 멀리 외국땅 대만에서 보내고 맞았습니다.台北을 떠나 嘉義시로 달리는 차창 넘어의 20세기 마지막 태양은 유난히 가깝고도 붉기만 하였으며 어쩐지 촉촉하게 가슴 적시는 애수가 있었습니다.이제 막 보내는 1999년의 한해,여기에서도 그 얼마나 숱한 일들이 일고 지었던 다사다난의 한해라 하겠습니다.여기에는 속시원한 일들도 있었지만은 그보다는 더 가슴 답답한 사연들이 많았던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잘못된 것이 고쳐지지 않는 사회 바른 것을 바르게 그른 것을 그르게 받아들이지 않는 현실에서 서로들은 분노하고 울분을 삼켰던 일들이 서로가 도우면서 착하게 살아가는 가슴뭉클한 감동보다 더 많앗던 것으로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아득한 천년전 1900년 정초에 떠올랐던 태양도 암울한 것이라고 역사에는 기록이 돼 있습니다.명성황후 시해사건의 조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전국에선 굶어죽기 직전의 사람들이 활빈당을 조직하여 습격을 일삼았고 러시아와는 마산항을 떼어주는 협상이 진행중이었으며 일본의 득세는 하늘을 찌를 듯 당당한 상황에서 나라의 리더십은 분열이 됐고 여기에 국가는 위기에 처해있었다고 하는 내용들입니다.

차창넘어로 서산에 즈므는 태양을 바라보는 나의 마음은 참으로 착찹하였습니다.태양은 스크린이 되어 천년의 역사가 일고 지는데 즈므는 태양을 보라보라고 나는 옆사람에서 조용히 얘기를 건넸습니다.천년의 마지막 순간을 조금이라도 많이 각인해 보고자 하는 저의 욕심에서였습니다.

숙소에 여장을 풀고 우리는 곧바로 공연장에 나갔습니다.송구영신의 큰행사는 중정공원의 야외무대에서 였습니다.화려한 무대 위의 갖가지 공연들은 열기로 가득하였으며 드디어 자정을 맞는 순간 그것은 말 그대로의 흥분으로 가득하였습니다.크게 울리는 종소리에 맞춰 새천년의 합창은 울려퍼졌고 작열하는 폭죽들은 하늘에 요란했으며 용들이 승천하는 야광놀이가 펼쳐졌습니다.

나는 이 공연을 보면서 지엽적 기교가 아니라 전체의 조화를 중요시하며 출연자들은 자기현시가 자기도취가 아니라 모든 관람자들과 동질감으로 대단원의 큰 하나를 이루려고 애쓰는 모습들에 호감이 갔습니다.이러한 것은 중국사람들이 느긋한 민족성에서 오는 여유인 듯 느껴졌으며 사소한 것에 신경질적으로 대하는 우리의 국민성과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실감해 보기도 하였습니다.

어느 일본사람이 “한국인은 동양의 이탈리아인이다”라고 말을 했던 것이 떠올랐습니다.한국사람도 이탈리아사람도 대륙에 매달린 반도에 살며 자기주장이 강하고 노래와 춤을 종아하며…등등이었습니다만은 이렇게 밝은 이미지를 갖고 있는 이탈리아인과 비슷하다는 것은 어쩌면 흥미있는 지적이며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는데 음미해 볼만한 얘기인 것으로 느껴보기도 하였습니다.

승천하는 용의 공연은 많이 인상적이었습니다.중국사람이 용을 숭앙하듯 우리나라에 있어서도 용은 절대권위의 상징이모가 동시에 민간신앙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모처럼 우리나라는 용(庚辰)의 해를 맞아 승천하는 용의 기상으로 용기와 희망이 가득한 한해가 되며 그 지겨웠던 모든 일들이랑 천년의 시공속에 묻어버리고 밝고 향기로운 일들만이 소복하게 있어주기를 멀리 남의 땅 대만의 한 공연장에서 간절한 맘으로 기원했던 것입니다.<고봉식·제주국제관악제 조직위원장><<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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