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한은 화해·협력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

 물론 여전히 남북한관계가 부분적으로 기대에 못 미치는 불만족과 아쉬움을 남기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그러나 우리가 미래에 대한 기대에서 평가하지 말고 지난 50여년 동안의 과거와 비교해 보면,남북한관계는 구체적인 성과를 일일이 열거할 필요가 없을 만큼 괄목할 진전을 보이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남과 북이 이처럼 화해·협력 단계로 접어들고 있다면,이제 우리는 남과 북이 어떤 사이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때가 되었지 않나 싶다.

 1991년 12월 남북기본합의서에서 남과 북은 “나라와 나라 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고 설정한 바가 있다.

 특수관계 속에서 남과 북은 화해-불가침-교류·협력으로 나아가기로 합의를 본 것이다.그 후 9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남과 북은 핵과 미사일 문제로 숱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꾸준히 화해·협력을 증대시켜 나갔고,이러한 남과 북의 노력에 대한 국제사회로부터 인정은 김대중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이렇게 볼 때 최근 국방부가 펴낸 국방백서에서 북한을 계속 주적으로 명시하고 있다는 것은 무언가 새천년의 새로운 남북 교류협력 시대로의 변화를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물론 국방부는 안보를 지상목표로 설정하는 기구로서의 속성상 기본적으로 만에 하나라도 있을 안보상의 위협에 대해서 준비를 게을리 해서는 안 될 것이고,그런 의미에서 국방백서는 보수적이고 방어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국방백서가 북의 현실적 군사위협이 해소될 때까지 주적 개념을 유지할 것으로 밝힌 것도 기실은 안보를 튼튼히 하려는 우국충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모르는 바 아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군사·전략적 차원에서 제시되는 주적 개념과 남북한 화해·협력의 특수관계 설정간 모순이 당혹감을 불러일으키는 것도 사실이다.

 필자는 2000년 12월 현 시점에서 북의 위협이 과연 얼마나 가시적인지 회의적이다.물론 필자의 생각과는 달리 국방부는 북의 위협이 상존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이고,그러한 한 북은 군사·전략적으로 적일 수 있다.

 그렇다고 북을 적이라 하면 되지 굳이 주적이라고 지칭하면서 남과 북 사이의 적대성을 강조할 것까지야 없는 게 아닐까.더군다나 국제사회에서는 영원한 동지도 영원한 적도 없다고 하지 않는가.군사·전략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북이 항상 적으로만 존재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현실적으로도 이왕이면 같은 민족끼리인 남과 북 사이가 주적이라는 불편한 관계보다는 화해·협력이라는 사이좋은 관계를 갖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앞으로는 주적이라는 별 소용이 없는 개념은 버리자.대신 북한이든 중국이든 일본이든 그 어느 나라라도 우리의 안보를 위협할 경우는 단호하게 적으로 대할 것이라는 안보상의 확보한 마음가짐을 천명하는 것으로 족한게 아닐까.

 그럼으로써 21세기 남과 북 사이는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두 개의 국가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상생(윈-윈) 관계로 한걸음씩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양길현·제주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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