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태인 집단학살로 유명한 아우슈비츠는 폴란드 남부지방의 인구 4-5만명의 중소도시다.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무려 4백만명이 이곳에서 나치 독일에 의해 집단학살됐다.그러나 집단학살의 현장에도 빛과 그림자는 있었다.비록 희생자 수자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1천2백여명의 유태인들을 홀로코스트로부터 구출해낸 이른바 오스카 쉰들러의 영웅담이 그것이다.

 공전의 대박을 터뜨렸던 스티븐 스필버그의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주인공이기도 한 쉰들러.그는 자신의 공장에서 유태인들을 빼돌려 죽음의 수용소로 끌려가는 것을 모면케 했다.과연 그같은 쉰들러의 용기있는 행동의 원동력은 무엇 이었을까.최근 그의 일대기를 그린 '오스카 쉬들러'의 원작자 피케츠가 이에 대한 새로운 답을 제시하고 있다.그에 따르면 쉰들러는 나치 정보부인 '압베르'의 영향력 있는 스파이였다고 한다.그가 유태인 수용소에서 유태인들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나치의 스파이였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얘기다.사연이야 어떻튼 쉰들러는 유태인들에게 좋은 나치스였다.

 최근 집단학살 망령이 한반도에서 불거져 나오면서 '한국판 쉰들러'가 화제가 되고 있다.한국전쟁 당시 4·3과 연루된 예비검속자를 총살하라는 상부의 명령을 단호하게 거부,수많은 사람들을 집단학살로부터 구제한 문형순씨(당시 성산포경찰서장)에 관한 영웅담이 그것이다.한국판 쉰들러, 문형순의 영웅적 행동의 원동력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경찰서장이었다고는 하나 그는 책가방 끈이 짧은 '무식장이'였다고 한다.그렇지만 대단한 자존심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다.군이 좌지우지 하던 시절이었지만 누구도 함부로 그를 대하지 못했다.일제 때 만주에서 활동하던 독립군의 일원이었기 때문이었다.당시의 군인 경찰 고위간부들이 대다수가 일제때 일본군이나 그 앞잡이인 만주군에 있었던 것과는 매우 다른 경력의 소유자였다.

 그가 한국판 쉰들러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독립군 출신이라는 자존과 자부심 하나였다.비록 배우지는 못한 '무식장이'였지만 독립군 출신의 양심에 비춰 집단학살이 반 인류적 범죄임을,홀로코스트가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파렴치 행위란 것쯤은 알고 있었다.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터득하고 있었다.그것이 범죄임을,그리고 수치임을 배워서 알고 있었던 이른바 '유식장이'들과는 다른 뜨거운 가슴을 갖고 있었다.그의 영웅적 행위의 원동력은 바로 가슴에서 우러 나온 인류양심이다. <고홍철·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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