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82> 4·3 국제학술대회 ①


노벨상 수상자 등 유명 인사 연사로 참석
김석범 선생 입국 거부로 '국적'문제 화두

4·3 국제학술대회 ①
제주4·3 5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가 1998년 8월 21일부터 24일까지 나흘간 제주그랜드호텔에서 열렸다. '21세기 동아시아 평화와 인권'이란 주제의 이 행사는 동아시아평화와인권 한국위원회(대표 강만길)를 비롯해 일본, 대만, 오키나와 등 3개국, 4개 인권단체가 주최하고 제주4·3연구소(소장 강창일)가 주관한 행사였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학술대회는 전무후무한 4·3 국제행사였다. 국내외 현대사 전문학자, 인권운동가, 정치인, 법조인, 예술인 등 500명이 참가했는데, 외국인만 180여명에 이르렀다. 외국인들은 자비로 참가하는 열의를 보였다. 행사장은 연일 만석을 이뤘고 토론의 열기도 뜨거웠다. 거기에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동티모르 독립운동가 호세 라모스 오르타 박사, '김대중 납치사건 진상규명위원회' 일본 대표 덴 히데오(田英夫) 참의원 등이 연사로 참여했으니 단연 화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한·중·일 인권단체가 모여 학술대회를 가진 것은 1997년 2월 대만 타이페이시에서 열린 국제심포지엄이 그 시초이다. '동아시아 냉전과 국가테러리즘'이란 주제의 이 심포지엄은 대만 2·28사건 50주년을 기념해 열렸다. 거기서 제2회 대회는 1998년 4·3 50주년을 맞는 제주도에서 열기로 결정됐다.

동아시아평화와인권 한국위원회는 행사 1년 전부터 조직을 정비하고 대회 준비에 매진했다. 대표는 강만길, 상임위원장에 김명식, 위원으로 강남규·강정구·강창일·김봉우·김성례·김은실·김정기·문무병·박원순·박호성·백승헌·서중석·양명수·유철인·임종인·임헌영·정근식·조영건·진관·현기영 등이 위촉됐다. 실무 책임은 사무국장 강창일, 사무차장 강남규 체제로 구성됐다. 특히 오르타 박사, 히데오 참의원 등 외국 거물인사를 섭외하는 데는 국제적인 인권운동가 서승 교수(일본 리츠메이칸대)의 역할이 컸다.

대회장은 연일 만석이 되는 등 성황을 이뤘다. 앞줄에 강만길·김진균 교수와 박형규 목사가 앉아있다.
이 학술대회의 핵심 논지는 '냉전'과 '국가테러리즘'이었다. 오키나와 양민학살을 필두로 제주4·3, 대만의 2·28사건과 1950년대 백색테러, 광주 5·18항쟁, 동티모르 양민 학살에 이르기까지 민중탄압 역사를 고찰하고, 평화와 인권의 소중함을 느끼는 동아시아인들이 연대하자는 취지였다.

21일 열린 개회식에서는 강만길 교수(고려대)의 개회사에 이어, 우근민 도지사·강신정 도의회 의장·현기영 4·3연구소 초대 소장의 환영사, 김중배(참여연대 대표)·김진배(국민회의 4·3특위 위원장)·김영훈(제주도의회 부의장)·강문규(새마을운동중앙협의회장)·박석무(학술진흥재단 이사장)·김진균(서울대 교수) 등 각계 인사의 축사가 이어졌다. 또 축하 메시지도 발표됐는데, 도이 다카코(土井多賀子·일본 사회민주당 위원장)·오사 마사히테(大田昌秀·오키나와 지사)·고재유(광주광역시장)·강원용(목사·크리스찬아카데미 원장)·김몽은(신부·한국종교인평화회의 회장) 등의 메시지가 눈길을 끌었다. 

그런데 이렇게 화려하게 막이 오른 국제학술대회가 뜻하지 않은 난관에 부닥쳤다. 일본인들과 함께 행사에 참가하려던 「화산도」의 작가 김석범 선생의 입국이 거부된 것이다. 앞에서 밝힌 바 있지만, 김석범 선생은 남도 북도 아닌 '한반도가 남북으로 분단되기 이전의 이름인 동시에 미래에 있을 통일 조국의 이름'이라는 '조선'을 고집해왔다. 도쿄 주재 한국대사관이 한국 국적이 아니면 입국할 수 없다고 막은 것이다.

이 소식이 대회장에 알려지면서 한국을 비롯한 일본, 대만 참석자들이 분노했다. 참가자들은 "4·3을 논하는 학술대회에 김석범 선생이 빠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긴급 호소문을 채택했다. 제목이 '호소문'이지 실상은 '항의문'이었다. 일부 외국 참가자들은 인권을 소중히 해온 김대중 정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면서 직접 청와대 쪽으로 항의의 뜻을 전달했다. 결국 김석범 선생은 대회 마지막 날 회의장에 올 수 있었다.

그는 뒤늦게나마 자신이 학술대회에 참가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민주정부가 출범했기 때문이라고 참관 소감을 말했다. 그는 또 일본에는 자기처럼 남쪽도 북쪽도 아닌 오로지 '통일된 조국'을 기억하고 염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에게 통일을 전제로 한 '준통일 국적'을 인정하는 방안을 연구하자고 제안했다. 그들이 남과 북을 자유롭게 왕래하게 되면 완충지대가 생기고 통일로 가는 다리 구실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꿈도 피력했다. 예상치 않았던 국적 문제가 학술대회의 화두로 떠올랐다.

☞ 다음회는 '4·3 국제학술대회' 제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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