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83> 4·3 국제학술대회 ②

국제학술대회에서 '제주4·3 양민학살사건' 주제발표를 하고 있는 필자(왼쪽 세번째).

동티모르 오르타 "4·3 해결 기회왔다" 역설
외국인사들 대거 참석…4·3 국제화 큰 걸음

4·3 국제학술대회 ②
1998년 4·3 국제학술대회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사람은 역시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호세 라모스 오르타 박사였다. 그의 조국 동티모르는 포르투갈에 500년 가량 예속돼 있다가 1975년에 독립했다. 그런데 곧이어 인도네시아의 침공을 받아 점령됐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학살됐다. 오르타는 인도네시아의 대학살에도 비폭력 노선을 고수하면서 UN 등 국제사회에 호소했다.

오르타는 1996년 국민에 대한 억압에 평화적으로 대항한 노력과 굽히지 않은 의지를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그 같은 노력에 의해 동티모르는 2002년 독립을 이뤘다. 그는 외교·내무·국방장관과 국무총리를 거쳐 2007년 5월 제2대 대통령으로 취임, 현재 동티모르 대통령으로 재임 중이다.

국제학술대회 참석차 제주에 왔을 때 그의 나이는 마흔 여덟이었다. 그의 특별강연 제목은 '동티모르의 민족자결을 위한 투쟁과 아시아태평양지역의 인권'이었다. 그의 연설 중 이런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인권침해 사례인 제주4·3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왔습니다. 1998년 한국에는 새로운 김대중 민주정권이 들어섰고, 제주4·3 인권침해가 새로운 민주정부 아래 낱낱이 밝혀지기를 희망합니다. 물론 진실을 밝히는데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더구나 한국은 아직도 남북으로 분단되어 있는 상황이고 수구세력이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어떠한 어려움이 있더라도 진실 앞에 마주 서려는 용기가 없다면 진정한 문명사회로 전진할 수 없습니다"

필자에게 비디오 선물을 하고 있는 오르타 박사(왼쪽). 그는 현재 동티모르 대통령이다.
필자는 오르타 박사에게 「4·3은 말한다」 다섯권을 전달했다. 그랬더니 그는 동티모르 독립운동에 관한 비디오를 나에게 선물했다. 

학술대회에서 오르타 못지않게 주목받은 사람이 덴 히데오 일본 참의원이었다. 그는 김대중 납치사건 진상규명위원회 대표였다. '김대중 납치사건'이란 1973년 박정희 정권시절 야당 지도자 김대중이 일본 도쿄 한 호텔에서 한국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의해 납치돼 수장될 뻔 했다가 미국 정보기관의 개입으로 생환한 사건이다. 그런 수난을 당한 사람이 한국 대통령이 되었으니 자연히 덴 히데오에게 시선이 모아졌다.

그런데 그의 학술대회 참석은 '대타'였다. 원래는 사민당 당수 출신 도이 다카코 의원이 참석할 예정이었다. 그녀는 1993년 일본 여성 최초로 중의원 의장을, 1996년 역시 최초의 여성 당수가 된 정치계의 거물이다. 그런데 갑자기 다른 일정이 겹쳐 못오게 되자 덴 히데오 의원을 대신 보낸 것이다. 그러나 대회 관계자의 회고에 의하면, 덴 히데오 의원이 대회에 참석하면서 청와대와 정치권에서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김석범 선생의 입국이 허가된 것도 그의 영향력 때문으로 분석했다.

국제학술대회는 제1부 동아시아 냉전과 민중, 제2부 냉전체제 폭력과 동아시아 여성, 제3부 냉전체제하 양민학살의 진상, 제4부 동아시아 평화인권운동의 연대와 전망 등으로 진행됐다.

제주4·3에 관해서는 모두 4건의 발표가 있었다. 즉 '미국의 한반도 전략과 조선의 분단-4·3항쟁을 중심으로'(강정구 동국대 교수), '국가폭력과 여성체험-제주4·3을 중심으로'(김성례 서강대 교수), '4·3을 통해 바라본 여성인권 피해사례'(오금숙 제주4·3연구소 연구원), '제주4·3 양민학살사건'(양조훈 제민일보 전 편집국장) 등이다. 필자는 "4·3 때 국가권력에 의해 전쟁 상황을 뛰어넘는 학살극이 자행됐다"면서 미군정과 이승만정권의 책임을 물었다.

대회 마지막 날인 8월24일 참석자들은 각국 인권단체 별로 호소문을 발표했다. 동아시아 평화와 인권 한국위원회가 발표한 호소문에는 '한국 국회는 조속히 4·3특별법을 제정하고, 정부는 진상조사 결과를 토대로 사과하라', '미국은 4·3에 대한 모든 자료를 공개함과 동시에 양민학살에 대해 사죄·배상하라'는 내용 등이 담겨있다.

4·3 국제학술대회는 성공리에 막을 내렸다. 4·3의 국제화에 큰 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참가자들은 제3회 대회를 1999년 11월 일본 오키나와에서, 제4회 대회를 2000년 5월 5·18항쟁 20주년에 광주에서 개최하기로 결정했다. 이 국제학술대회 보고서는 1999년 「동아시아의 평화와 인권」이란 제명으로 역사비평사에서 발간됐다.   

☞다음회는 '제주4·3연구 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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