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84> 「제주4·3연구」 발간


"육지 학자들 사죄하는 마음으로 글 모았다"
 문광부 우수학술도서 선정…금석지감 실감

「제주4·3연구」 발간

1999년 4·3문제를 다양하게 학문적으로 접근해서 해부한 종합 연구서적이 편찬됐다. 제주4·3제50주년기념사업추진범국민위원회가 간행한 「제주4·3연구」(역사비평사·486쪽)였다. 이 책은 역사문제연구소·역사학연구소·한국역사연구회·제주4·3연구소 등 4개 학술단체가 공동으로 참여해 엮어냈다. 한국 역사학계가 처음으로 공들여 만들어낸 '4·3 진실찾기' 성과물이나 다름없다.

본격적인 4·3 진실찾기는 1980년대 후반부터 지역언론과 4·3연구소 중심으로 시작됐다. 뜻있는 문인과 학자들에 의해 금기의 벽을 뚫려는 시도도 있었다. 그로부터 10여년만인 1999년에 종합 학술서적이 발간된 것이다. 이 책은 역사학자, 정치학자, 법학자, 인류학자, 의학자, 문학평론가, 신문기자 등 다양한 분야의 필진 11명의 글로 엮어졌다. 집필자의 면면을 보면 제주 출신보다 육지부 출신(8명)이 더 많은 것도 하나의 특징이었다. 역사문제연구소 김정기 소장이 서문에서 밝힌 "육지 학자들이 뒤늦게나마 사죄하는 마음에서 글을 모았다"는 표현이 눈길을 끈다.

김인덕(국가보훈처 연구원-1920년대 후반 재일 제주인의 민족해방운동)·양정심(역사학연구소 연구원-주도세력을 통해서 본 제주4·3항쟁의 배경)·서중석(성균관대 교수-제주4·3의 역사적 의미)의 글은 4·3에 대한 역사학적인 접근의 논문들이다. 4·3의 발발 배경을 살피고, 양민학살에 대한 이승만 정권과 미군정의 책임을 심층적으로 분석했다. 미군정의 오류에 대해서는 정해구(세종연구소 연구위원-제주4·3항쟁과 미군정 정책)의 글에서도 신랄하게 비판됐다.

김순태(한국방송통신대 교수-제주4·3 당시 계엄의 불법성)의 글은 언론 보도로 논란이 됐던 4·3 계엄령의 불법성을 학문적으로 해부했다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의학사를 전공한 황상익(서울대 교수-의학사적 측면에서 본 4·3)의 글은 초토화작전이 전개된 기간을 '집단광기의 시대'라고 표현해서 눈길을 끌었다.

문화인류학적 접근을 시도한 김성례(서강대 교수-근대성과 폭력: 제주4·3의 담론정치)의 글에서는 무고한 죽음을 영혼의 울음으로 재현하는 제주의 굿에 대한 분석이 이루어졌다. 임대식(역사문제연구소 연구원-제주4·3항쟁과 우익 청년단)은 제주도민들의 뇌리에 악몽으로 남아 있는 서북청년회의 활동을 해부했다. 문학평론가 김재용(원광대 교수-폭력과 권력, 그리고 민중)의 글은 4·3문학의 쌍봉인 현기영과 김석범의 문학세계를 분석했다.

고려대에서 4·3 연구 석사학위를 받았던 박명림(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북한연구실장-제주4·3과 한국현대사)의 글은 4·3이 한국현대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을 점검했다. 10여년전부터 4·3 현장을 발로 누비며 4·3 실록을 엮어온 김종민(제민일보 4·3취재반-4·3 이후 50년)의 글은 '4·3 진실찾기 50년'의 보고서이자 취재현장에서 체득했던 제주공동체의 변화상을 심도있게 분석했다.

이 책은 이렇게 학계와 언론계의 다각적인 연구 성과를 집약했다는 점에서 4·3 논의의 폭을 넓혔고 학문적 수준을 한단계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 책은 덩달아 문화관광부가 선정하는 1999년 역사부문 우수학술도서로 뽑혔다. 한때 4·3을 소재로 시나 소설 등 문학작품을 써도 탄압받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민주정부가 들어서면서 4·3 연구서적이 정부의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되는 세상으로 바뀐 것이다. 금석지감을 금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책 역시 4·3에 이름을 붙여주지는 못했다. 일부 연구자들이 '4·3항쟁'이란 표현을 썼지만, 책 제목은 여전히 꼬리표가 없는 「제주4·3연구」였다. 이를 의식해서 4·3범국민위원회 김중배 공동대표는 간행사에서 '4·3의 정명(正名)'을 찾자고 주장했다. "4·3의 깃발이 역사의 정명으로 나부끼고, 원혼의 어림수가 해체되어 실수(實數)로 확정되는 그날까지 우리의 정진은 계속되어야 한다"고 호소한 것이다. 과연 제주4·3의 바른 이름은 무엇인가?

필자는 1999년 제주학회에서 발간하는 학회지 「제주도연구」(제16집)에 '제주4·3의 바른 이름을 찾아서'란 제목으로 「제주4·3연구」에 대한 서평을 썼다. 그 서평 끝부분에 이런 글을 남겼다.

"과연 우리 역사는 제주4·3에 어떤 이름을 붙일 것인가. 나는 단언하건대 세월이 흐를수록 4·3에 씌워진 붉은 색의 꺼풀들은 하나씩 벗겨질 것이라고 확신한다. 이데올로기문제로 너무 과대 포장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남게 되는게 제주도민의 생존권과 직결되는, 항쟁과 대학살의 문제이다. 이 문제를 어떻게 슬기롭게 용해할 것인가가 앞으로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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