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은·소암기념관 큐레이터>

"걸으며, 보며, 들으며..." 서귀포시가 올해부터 새로운 테마가 있는 문화관광 프로그램을 시도를 하고 있다.

서귀포의 예술문화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이중섭, 기당, 소암, 서복기념관를 둘러보는 산책길 코스가 그것이다.

피난작가로 국민화가로 추앙받는 이중섭, 황토색 색채로 독특한 화풍을 구축한 변시지, 일평생 서예에 몸 바쳤던 소암 현중화, 다 같이 불같은 예술혼을 살랐던 예술가이며 보배이다.

 청정한 햇빛과 공기도 좋지만 천천히 걸으며 해설사들이 들려주는 서귀포 예술가들의 이야기들에 푹 빠지다보면 어느덧 여러분의 마음은 사색의 시간으로 채워질 것이다. 맑은 물이 솟아나는 바닷가 자구리에 발 담그고 이중섭화가가 잡아먹은 게에게 미안해 그림으로 남긴 얘기, 소암 현중화선생이 매년 쌓인 습자지를 들고 나와 태우며 새로운 다짐을 했다던 얘기, 해안절벽위에 솟아난 소나무와 멀리 수평선에 떠있는 한조각의 배를 보며 변시지의 폭풍의 바다를 연상하는 일은 얼마나 재미있는 일인가.

 유독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던 서귀포의 매력은 과연 무엇일까. 한번 그들이 걸었던 산책길을 따라 걸으며 그 매력을 느껴볼 만도 하다. 한반도에서 뚝 떨어진 섬, 그 남쪽 끝에 위치한 서귀포의 매력은 풍광이 빼어나게 아름답다는 것, 그것만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더 이상 나아 갈 수 없는 막다른 곳에 와 있다는 막막함과 고독감, 예술은 그렇게 자신을 극한에 이르게 할 때 더 빛나는 힘을 발휘하지는 않는지. 인상파 화가 고갱이 타이티 섬에 칩거하며 수많은 명작들이 남기지 않았던가. 예술가들에 있어서 자연환경은 그만큼 예술적 영감에 크게 영향을 끼친다.

 올해 5월부터 시작해서 매달 넷째주마다 진행하고 있는 작가의 산책길 프로그램은 지금까지 700여명이 다녀가면서 서서히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미술관에서 작품들을 감상하고 작가의 행적들을 찾아 걷다보면 작품에 대한 이해는 한층 깊어질 것이다. 또 길 중간 중간에서 펼쳐지는 퍼모먼스나 공연, 이중섭거리에서 열리는 예술문화시장은 또 다른 재미이다. <이경은·소암기념관 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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