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남 제주평화연구원 연구위원

   
 
     
 
"내 몸속에는 소통하고 타협하는 유전자가 있는 듯합니다"

해마다 1월 하순에 스위스의 다보스(Davos)에서 열려, '다보스포럼'으로 널리 알려진 세계경제포럼(WEF)의 창설자이자 회장인 클라우스 슈밥(Claus Schwab)이 지난해 한국의 모 중앙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슈밥은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에 접경한 독일 루벤스부르크에서 스위스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독일식 교육 아래 소년시절을 보낸 슈밥은 스위스에서 공학과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미국 하버드대에서는 공공정책을 전공했다.

'어린 시절부터 다른 생각을 조율해 타협시키는 데에 관심이 많았다'는 슈밥은 서로 다른 문화와 사고방식이 자신의 몸속에 융합돼 있다고 토로한 바 있다. 다른 점이 있을 경우 몇 번이고 대화해서 타협안을 만들어내는 것이 자신의 인생이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소통과 타협에, 그가 학문을 통해 연마한 체계적인 공학적 사고와 실용적인 사회과학적 사고가 도움이 된 셈이다.

유럽과 미국간의 차이점을 체험한 슈밥이 대서양 양쪽의 리더들이 서로 다른 생각을 나누면서 공감대를 넓힐 수 있는 비즈니스 특강을 마련한 데서 다보스포럼은 탄생한다. 1971년 '유럽경영포럼'으로 출발한 제1회 포럼의 참가자는 140명이었다. 이것이 1987년 '세계경제포럼'으로 이름을 바꾸고 경제·경영뿐 아니라 정치와 문화에 이르기까지 영역을 거듭 넓혀, 지금은 내로라하는 글로벌 리더 2500명이 운집하는 가장 권위있는 포럼으로 성장한 것이다.  

세계 거물들이 자리를 함께하다 보니 중대발언이 나오고 극비리에 수뇌회담이 열리기도 해 다보스포럼에서 국제적 갈등이 해결된 사례도 적지 않다. 영토 분쟁으로 전쟁 일보직전까지 갔던 그리스와 터키가 1988년 다보스에서 평화적인 해결책을 찾았는가 하면, 1992년 남아공 대통령 데클레르크와 흑인 지도자 만델라가 다보스포럼에서 민주적인 정권이양을 합의하기도 했다.

이처럼 영향력이 큰 포럼이 열리는 다보스는 해발 1500m가 넘는 고지에 자리한 인구 1만3000명의 작은 휴양지이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토마스 만은 과거 결핵요양소로 이름난 다보스를 배경으로 쓴 대작 소설 '마(魔)의 산'에서, 결핵에 걸린 주인공이 이 산중마을에서 7년간 요양하며 겪는 치열한 지적 체험을 그리기도 했다.

2001년 창설돼 격년제로 치러지다가 올해부터 연례화된 '평화와 번영을 위한 제주포럼(약칭 '제주포럼')'을 다보스포럼과 같은 세계적 포럼으로 반석에 올려놓기 위해 제주특별자치도가 '제주포럼 육성 및 지원 조례' 마련에 나섰다.

정부는 2005년 제주도를 '세계평화의 섬'으로 선포하면서 이를 구현하기 위한 사업의 일환으로 제주포럼을 주관하도록 제주평화연구원을 설립했다. 이번 제주포럼 조례 제정 작업은 이러한 내용을 규정한 제주특별자치도 특별법(제155조) 및 시행령에 따른 것이다. 스위스 정부 또한 다보스포럼에 참가하는 요인 경호 등을 위해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고대 로마의 공공집회 광장'에서 유래한 '포럼'이라는 말에는 대화와 토론을 통한 소통과 타협이라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제주포럼을 세계 평화를 위한 소통과 타협의 광장으로 제도화하는 작업에 제주도민 모두가 힘을 모아야 할 시점이다.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