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85> 「4·3은 말한다」 5권 출간

"억울한 영혼 한 풀어 주는 것이 산자의 도리"
 4·3취재반 진실규명 활동 "한가닥 빛" 표현

「4·3은 말한다」 5권 출간

「4·3은 말한다」 제5권 표지

제민일보 4·3취재반의 「4·3은 말한다」 제5권(492쪽 분량)이 1998년 3월에 출간됐다. 이 책에는 신문에 연재됐던 마을별 '초토화작전의 실상'이 실렸다. 초토화 피해에 대한 연재는 시계방향에 따라 제주도를 한바퀴 도는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 책에는 구좌면·성산면·표선면·남원면·서귀면·중문면·안덕면·대정면 상황이 소개됐다.

'핏빛으로 물든 성산포 앞바다', '18세부터 40세까지 학살당한 토산리', '대낮에 나타난 비행기의 총탄세례', '군경으로 변신한 서청의 학살극', '자수공작에 걸린 피해사례', '흑심 못 채우자 아버지를 살해', '우는 아기 입 틀어막아 질식사' 등 제목만 봐도 얼른 연상되는 참상과 절절한 사연들이 실렸다.

이 책의 부록으로 '왜 4·3계엄령은 불법인가'를 실었다. 불법 계엄령에 대한 언론 보도와 법제처의 반론을 둘러싼 논쟁의 쟁점, 계엄령에 대한 역사적·법률적 검토, 4·3 당시의 계엄령 실상 등을 김종민 기자가 정리하고 분석한 글이다. 또 그동안의 진상규명 운동사를 정리하여 '4·3 진실찾기 50년'이란 제목의 부록도 실었다.

이 책을 출간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기쁜 소식을 들었다. 한국 가톨릭의 큰 별이자, 우리 사회의 양심으로 존경받던 김수환 추기경이 책 출간에 대한 '추천의 글'을 써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동안의 연재과정에서 쌓였던 심적 어려움이나 피로감을 한방에 날려 보내는 낭보였다.

영화 '바보야'에 나오는 생전의 김수환 추기경 모습. 그는 「4·3은 말한다」 제5권 출간 때 추천의 글을 써줬다.
「4·3은 말한다」를 출간할 때마다 3명 정도의 현대사 전문학자나 문인들로부터 추천의 글을 받았다. 4·3 발발 50주년을 앞두고 펴내는 제5권에는 누구의 글을 실을까 고심하던 중이었는데, 뜻밖의 제안이 들어왔다. 이 책을 만드는 출판사 '전예원' 편집인인 김진홍 교수(한국외국어대·작고)가 천주교 서울대교구장인 김 추기경의 글을 받자는 것이었다. 필자는 그의 제안에 긴가민가하면서도 그렇게만 됐으면 얼마나 좋겠냐는 뜻을 전했다.

그런데 그걸 성사시킨 것이다. 가톨릭 신자인 김 교수는 김 추기경에게 추천의 글을 부탁하면서 특별히 4·3이 50주년을 맞는 해임을 강조했다고 한다. 김 추기경은 그걸 의식해서인지 추천의 글 제목을 '제주4·3 50주년 기념 「4·3은 말한다」 5권 출간에 부쳐'로 달았다. 추천의 글은 "올해는 제주4·3사건이 발발한 지 5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50년마다 한번씩 돌아오는 해를 '희년(禧年)'이라고 합니다. 희년이 되면 누구나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고통과 불행에서 벗어나 행복한 삶을 되찾게 해줍니다"로 시작됐다.

김 추기경은 이어서 "해방공간의 소용돌이 속에서 수만명의 제주도민이 국가권력에 의해 희생된 불행한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충격으로 다가온다"면서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하고, 정부 차원의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왜 제주섬은 초토화되었고, 그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숨져 갔는가? 어찌하여 정부에서는 오랜 기간 이런 중대한 역사적인 사실을 은폐해 왔는가? 의문은 지금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민족의 단결과 진정한 화합의 계기로 삼기 위해서 그 진상은 규명되어야 합니다. 4·3사건은 재평가·재해석되어야 합니다(중략). 새롭게 탄생한 '국민의 정부'는 보관 자료를 명명백백하게 공개하고 정부 차원에서 4·3의 진상을 밝혀야 합니다. 억울한 누명을 쓴 채 숨져간 영혼들이 있다면, 그 한을 풀어주는 것은 산 자의 도리입니다"

김 추기경은 제민일보 4·3취재반에 대한 격려도 잊지 않았다.

"제주의 지방지 「제민일보」 기자들이 10년 동안 이 사건의 진실을 추적해 왔다는 것은 진상규명에 있어서 한 가닥 빛이 되고 있습니다. 그 노력의 결정체가 몇 권의 책으로 엮어져 나왔습니다. 역사의 진실에 충성을 다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참된 역사로 복원될 날이 멀지 않으리라 생각합니다"

필자는 그 직후 김 추기경에게 장문의 편지를 보내 고마움을 전했다. 특히 '4·3'이라는 예민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책을 추천해줬고, 취재반에게도 커다란 용기를 준데 대해 감사의 뜻을 표현했다.

김수환 추기경은 2009년 2월 16일 선종했다. 향년 87세로 생을 마친 것이다. 한국 현대사의 정신적 지주였던 그의 생애와 업적을 추모하는 물결이 전국적으로 일었다. 필자도 빈소가 마련된 명동성당을 찾아가 유리관에 안치된 김 추기경의 명복을 비는 한편 다시 한번 고마운 뜻을 마음속으로 전했다.  

☞다음회는 '4·3은 말한다의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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