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88> 닻올린 특별법 제정운동 ①

1997년 9월20일 4·3범국민위 주최로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여야 4당 초청 4·3정책토론회.

서울·제주에서 특별법 제정운동 본격화
1997대선 때 정치쟁점 부각…2년후 결실

닻올린 특별법 제정운동 ①
1999년 12월 16일 제주4·3특별법이 극적으로 국회를 통과했다. 그리고 2000년 1월 11일 청와대에서 이 법에 대한 김대중 대통령의 서명식이 있었다. 4·3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한 시기는 20세기 100년의 마침표를 찍기 바로 보름 전이고, 이 법이 공포된 시점은 21세기 새로운 100년을 시작하는 벽두여서 역사적 의미가 더 컸다.

필자는 4·3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하던 날 "기적 같다"는 말로 밖에는 그 감격을 달리 표현할 수가 없었다. 4·3범국민위원회 법률특별위원장을 맡아 특별법 제정에 헌신했던 김순태 교수(한국방송대·작고)가 그 당시를 회고하는 특집(「4·3반세기」 제10호)에서 "'4·3특별법의 제정은 비록 그 내용이 미흡하지만 기적 같은 일이라 여겨진다'는 양조훈 선생의 표현이 가슴에 와 닿는다"라고 쓴 글을 본 적이 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도 그 과정은 기적 같은 일이라고 느껴진다. 그런데 그 '기적'은 어느 날 돌연히 일어난 일이 결코 아니었다. 4·3의 진실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해서 부단히 노력했던 사람들의 헌신과 땀의 결정체라고 감히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 마지막 통과 과정이 너무나 긴박했고 극적이어서 '보이지 않는 손'의 도움이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남아 있다.

제주4·3특별법 제정 운동에는 크게 두가지 축이 있었다. 하나는 서울에서의 4·3범국민위원회의 활동이요, 다른 하나는 1999년 3월 제주에서 출범한 4·3도민연대의 활동인데, 제주에서는 그해 10월 도민연대를 포함한 24개 시민단체가 참여한 4·3연대회의가 발족되면서 연합활동으로 승화됐다. 여기에다 반공단체로 출범한 4·3유족회의 변신과 특별법 제정운동 합류, 지방의회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 김대중 민주정부의 출범, 한나라당 제주출신 국회의원들의 발 빠른 특별법 제정 행보 등이 가세됐다.

4·3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주장은 1990년대 들어 산발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4·3단체의 성명서나 4·3희생자 위령제 때도 간간이 거론됐다. 그러나 그때까지는 특별법을 어떻게 만든다는 구체적인 계획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4·3특별법이 법조문의 틀을 갖추고 공개적으로 논의된 것은 1996년 11월 30일 서울 종로성당에서 열린 '제주4·3특별법 제정 촉구 시민 대토론회'였던 것 같다.

제주사회문제협의회(명예회장 정윤형·회장 김승만) 주최로 열린 이날의 토론회에서 발제자인 허상수(한국사회과학연구소 연구위원)는 가칭 '제주4·3사건 등 희생자 명예회복 및 피해배상에 관한 특별조치법' 제정안을 제시했다. 이 제정안은 국회의장 소속 하에 진상조사위원회를 두고, 국회의원으로 조사특위를 구성하는 한편 명예회복 및 피해배상을 심의 의결하기 위한 위원회는 별도로 국무총리 소속 하에 두는 안이었다.

이 토론회에는 쟁쟁한 사람들이 토론자 등으로 참여했다. 사회는 당시 학술단체협의회 공동대표를 맡고 있던 안병욱 교수(가톨릭대)가, 토론자로는 박원순 변호사(참여연대 사무처장), 서중석 교수(성균관대), 황상익 교수(서울의대), 강창일 교수(배제대), 김순태 교수 등이 나서서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에 한목소리를 냈다.

1997년 4월 서울에서 출범한 제주4·3범국민위원회는 4·3의 정치적·제도적 해법을 찾기 위해 그해 9월2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제주4·3문제, 해법은 무엇인가?'란 주제를 내걸고 여야 4당 정당 초청 정책토론회를 개최했다. 바로 12월에 있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4·3을 정치적으로 쟁점화하고 대선 공약으로 다짐을 받겠다는 전략이었다.

서중석 교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서 김정기 교수(서원대)는 '한국현대사의 미결과제:제주4·3 해법 찾기의 원칙과 과제'란 발제를 통해 ①국회 4·3특위 구성 ②진상규명활동에 대한 정부의 지원 ③4·3의 진상조사와 해결을 위한 특별법 제정 등을 역설했다.

이에 대해 신한국당 변정일 의원(국회 법사위원장), 국민회의 김원길 정책위 의장, 민주당 이규정 사무총장 등이 나서서 4·3문제 해법에 대한 각 당의 입장을 밝혔다. 자민련 대표는 불참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3당 대표들은 4·3에 대한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나 위령사업 등에 대해서는 거의 같은 목소리를 냈다. 그럼에도 4·3특별법 제정보다는 국회 내 특위를 구성하는 쪽에 비중을 두는 입장을 보였다. 이 때문에 토론자로 나선 강정구 교수(동국대), 조용환 변호사, 김명식 시인(4·3범국민위 운영위원장) 등이 정치인들과 열띤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4·3특별법 제정운동은 그해 12월 대통령선거에서 김대중 후보가 당선됨으로써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김대중은 선거 과정에서 4·3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분명하게 공약한 후보였기 때문이다.

☞다음회는 '닻올린 특별법 제정운동' 제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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