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93> 전국순례 홍보단 활동 ①

1996년 박희수 도의원이 주도한 '제주4·3 국토순례단' 출정식이 관덕정 앞에서 열리고 있다.

지방의원·유족 등 81명 전국 누비며 홍보전
4·3 실상 너무 모른데 충격…새 결의 다져

전국순례 홍보단 활동 ①
1999년 4월 4일 제주도의회에서 4·3특별법 제정운동에 의미있는 족적을 남긴 출정식이 있었다. 제주도의회(의장 강신정)가 주최하고, 도의회 4·3특위(위원장 오만식)가 주관한 '4·3문제 해결 촉구를 위한 대국민 홍보 및 국회 방문단' 출정식이었다.

기대를 걸었던 김대중 정부에 대한 불만이 서울에서는 4월3일 마로니에공원에서 3000여명이 모인 '제주4·3 명예회복 촉구대회'로, 제주에서는 지방의회와 4·3관련단체 등이 공동 참여한 홍보단이 전국을 누비며 4·3문제의 심각성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정부와 국회를 압박하자는 전략으로 표출됐다.

이 전국순례 출정에는 도의원 14명 이외에도 제주시의회(의장 강영철) 6명, 서귀포시의회(의장 한건현) 5명, 북제주군의회(의장 윤창호) 4명, 남제주군의회(의장 이종우) 5명 등 지방의회 의원 34명과 4·3희생자유족회(회장 박창욱), 4·3도민연대(공동대표 김영훈·양금석·임문철), 4·3범도민위원회(위원장 조승옥), 백조일손유족회(회장 김정부) 관계자 등 모두 81명이 참가했다. 이른바 운동권 출신인 오만식 도의회 4·3특위 위원장이 "4·3문제 해결에 지지부진한 중앙 정치권을 압박하기 위해서는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면서 이렇게 판을 키운 것이다.

1999년 전국 순례 홍보단이 명동성당 앞에서 철야농성 중인 재경 인사들과 만나 구호를 외치고 있다.
이런 형태의 전국 순례는 제5대 도의회 시절인 1996년에도 있었다. 박희수 도의원이 '제주4·3 알리기와 특별법 제정 촉구를 위한 국토순례단'을 꾸려 그해 3월23일부터 4월2일까지 11일간 전국을 누비며 4·3 홍보전을 펼쳤다. 서울에 입성해서는 여야 중앙당사를 방문, 4·3특별법 제정의 필요성을 알리는 유인물을 전달했다. 이때에 박 의원은 신문 광고를 통해 순례단을 모집했는데, 북촌리 민간인학살사건의 진실규명을 위해 헌신해온 홍순식을 비롯한 4·3 유족과 학생 등 10여명이 동참했다.

제주도의회는 그후로 3년만에 매머드급 4·3 순례 홍보단을 결성한 것이다. 4박 5일의 일정으로 전국 순례에 나선 이들은 방문 첫날에는 광주 5·18희생자 망월동묘역을, 다음날에는 거창사건 희생자 묘역 등을 참배하고 그곳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거창에서는 거창사건 등의 특별법 제정과정을 설명 듣는 과정에서 "우리가 얼마나 많은 상경투쟁을 통해서 특별법 제정을 얻어낸 줄 아느냐"는 쓴소리를 듣기도 했다.   

대구·대전·청주·천안·수원을 거쳐 7일 서울에 입성할 때에 홍보단에는 새로운 결의가 필요하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전국을 순례하면서 국민들이 4·3의 실상을 너무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낀 것이다. "그동안  제주도에서 우리만의 '4·3'을 외쳤던 것이 아닌가"하는 회한이 스쳐갔다. 그런 가운데도 홍보물을 받아본 사람들로부터 "제주도민의 아픔이 이렇게 큰 줄 몰랐다. 하루 빨리 치유되기를 바란다"는 격려를 받고는 새로운 힘을 얻었다.

서울에 입성한 순례 홍보단은 곧바로 4·3범국민위원회 관계자들과 재경 유족들이 5일째 철야농성을 벌이고 있는 명동성당 현장으로 향했다. 명동성당 벽에는 김대중 대통령의 4·3 공약내용을 열거하고 공약 이행을 촉구하는 현수막이 내걸려 있었다. 또한 강요배 화백의 4·3 그림을 전시하는 한편 정부가 탄압했던 4·3 관련 비디오 '레드헌트'를 상영하는 등 대국민 홍보활동을 벌이고 있었다. 이 자리에서 감격적인 조우를 한 참석자들은 "이젠 정치인에게 호소할 때가 지났다"면서 "도민이 하나 되어 4·3해결을 쟁취하자"고 뜻을 모으고 의지를 다졌다.   

4일 전 제주도의회에서 출정식을 가질 때만 해도 일부 참석자들은 사회자가 구호를 소리쳐 외쳐도 손들기를 쑥스러워했다. 어떤 참석자의 손은 겨우 어깨까지 갔다가 멈추어버렸다. 그런데 며칠 새 그들은 '투사'로 변해 있었다. 명동성당 앞 차디찬 시멘트 바닥에 앉아 구호를 외치는 그들의 손은 하늘로 치솟았다.

이런 열기는 그 다음날 국회를 방문했을 때에도 여실히 드러났다. 제주출신 국회의원 3명이 모두 참석한 자리인데도 "연내에 4·3특별법이 제정되지 않는다면 제주출신 의원들의 정치생명은 끝난 것"이란 경고의 말도 서슴지 않았다.   

☞다음회는 '전국순례 홍보단 활동' 제2편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