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97> 4·3해결 도민공청회

1999년 10월 18일 4·3위령공원 조성계획을 둘러싸고 불거진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도민공청회'가 제주도와 도의회 공동주최로 중소기업센터에서 열렸다.

위령사업 문제보다 4·3 성격 논쟁 비화
제주도의 조급한 추진방침엔 잇단 제동

4·3해결 도민공청회
1999년 10월18일 제주도와 도의회 공동주최로 중소기업센터 대강당에서 '제주4·3문제 해결방안 도민공청회'가 열렸다. 이 공청회는 4·3위령공원 조성계획 수립과 추진과정에서 불거진 제주도와 도의회 및 4·3 관련단체 사이의 간극을 메우는 성격을 띠고 있었다.

이문교(제주발전연구원장) 사회로 진행된 이날 공청회에서 제주4·3연구소장 강창일(배재대 교수)이 '4·3의 역사기록과 위령사업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란 주제발표를 하고, 강만생(한라일보 논설위원), 김완송(자유수호협의회 감사), 박창욱(4·3유족회 회장), 임문철(4·3도민연대 공동대표), 정순희(생활개선중앙회 제주도회장)가 지정토론자로 나섰다.

강창일 소장은 "4·3은 한민족 사상 최대의 양민 학살사건"이라며 "4·3 진상규명 운동은 인권과 평화를 기리는 운동으로 승화시켜 제주도를 진정한 평화의 섬으로 만들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 소장은 "4·3 문제 해결을 위한 제주도의 접근 방향은 앞으로 제정될 4·3특별법을 충분히 고려해 진행돼야 한다"고 전제하고, 현재 추진 중인 특별법에는 지속적인 진상규명, 정부의 사과 명시, 양민에 대한 개별보상, 제주도민 전체에 대한 공동체적 보상이 포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4·3공원 조성사업과 관련해 "조급하게 서둘러 졸속적으로 추진하기보다는 특별법 제정을 고려한 장기적 조성계획이 수립돼야 한다"면서 4·3공원의 위치와 의미에 대해서는 접근성, 복합문화공간, 역사 상징성, 확장 가능성 등을 유의할 것을 주문했다.

토론자들은 발제자의 주장에 대체로 동조하는 분위기였다. 다만 보수단체를 대표해 토론자로 나선 김완송은 "4·3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지지하는 세력들이 5·10선거를 파탄시키기 위해 일으킨 무장폭동이며, 진압과정에서 비무장 폭도 및 폭도로 오인받은 사람들이 과잉 진압된 점이 있다"면서 "특별법을 만든다면 이러한 4·3의 성격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이어 "특별법이 없는 상태에서 제주도가 4·3위령사업 등을 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공청회장에는 전직 경찰과 우익단체 회원들이 대거 참석해 예의 '4·3공산폭동론'을 주장하면서 공청회 내내 '성격 논쟁'을 일으켰다. 주제발표자가 발표할 때에는 여러 차례 삿대질하며 원색적인 비난을 일삼는 바람에 다른 참석자들과 서로 고성이 오가는 등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이날 공청회는 주제가 너무 광범위한 탓인지 갖가지 주장들이 난무했다. 당초 이 공청회는 4·3위령공원 부지 선정과 위령사업 추진방향에 대한 논의를 할 예정이었지만, 당면한 특별법 제정문제가 전면에 나서면서 오히려 4·3의 성격 논쟁으로 비화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이 공청회를 계기로 그동안 도의회와 관련단체의 문제 제기로 논란이 됐던 4·3위령공원 부지 선정문제가 어느 정도 수습국면을 맞게 됐다. 즉 4·3위령공원 부지로 앞서 거론됐던 제주시 봉개동 소재 5만평에 대해 더이상 문제 삼지 않으면서 추인하는 분위기로 전환된 것이다. 처음에 완강한 태도를 보이던 도의회 4·3특위도 10월19일 제주도로부터 4·3위령공원 조성계획에 대한 보고를 받고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우근민 도지사는 10월25일 기자회견을 통해 4·3위령공원 부지를 제주시 봉개동 시유지 5만평으로 정하고, 김대중 대통령이 지원 약속한 국비 30억원을 토대로 내년부터 그곳에서 위령제를 지낼 수 있도록 부지 매입과 주차장 등의 기반시설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회견에서는 4·3 부상자에 대한 진료비 지원과 정무부지사를 단장으로 한 '4·3관련사업 추진지원단' 설치계획도 밝혔다.

이런 방침에 따라 그해 12월29일 봉개동 5만평에 대한 '제주4·3위령공원 조성 및 상징조형물 기본계획 현상공모'가 발표됐다. 공모내용은 토지이용 및 공간 활용계획, 건축물 및 조경계획, 상징조형물 설치 구상 등이었다.

그러나 그 시점은 제주4·3특별법이 국회를 통과(12월16일)한 직후였다. 이런 중대한 상황 변화가 있음에도 4·3공원 조성사업을 종전 계획대로 밀고 나가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불만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또한 해당 부지가 도로 아래쪽에 파인 지형으로 한라산이 보이지 않는 점과 바로 전면에 쓰레기 소각장이 건설될 계획이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부지 부적성에 대한 문제까지 불거져 나왔다. 4·3공원 조성사업은 이래저래 다시 논란의 불씨가 되살아나면서 도마 위에 오르게 됐다. 

☞다음회는 '불법계엄령 보도 송사'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