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제주파(派)'다] 제주9년차 산천단 바람카페·여행자카페 운영자 이 담 씨

제주 안 시·공간 개념이 '오밀조밀'해지고 있다. 특별한 어감이다. 자동차로 1시간이면 '멀다' 느꼈던 것이 슬쩍 가까워지고, 조용하기만 했던 시골마을에 인기척이 끊이질 않는다. 섬 어디든 사람이 머무는 공간이 만들어지고 그런 공간마다 문화·예술 아이템이 들어선다. 농업에 대한 희망과 함께 탱글탱글 사람 농사까지 짓는다. 숨찼던 도시에서의 삶을 내려놓고 제주를 찾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변화'에 섬 구석구석 화색이 돈다. 그런 움직임이 꿈틀대기 시작했던 2000년을 기준으로 '제주파(派)'를 분류했다. 쉽지만은 않았던 그들의 제주 정착기, 섬에서 찾은 희망을 듣는다.

서울 생활 끝 방랑 내려놓은 곳…관광정보 세상 알리다 정착까지
"적어도 1년을 살아봐야 제주 안다" 문화이주 변화 담은 지도 계획

# 좋은 추억 찾아 왔다 뿌리 내려

"이제 다시 어디를 가라면 못 갈 것 같아요. 멀리 외국에 나가는 것이 아니라면"

이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제주시 산천단 바람카페의 이 담 주인장(46)은 올해로 벌써 제주 9년차다.

처음 제주에 올 때만 해도 힘들었던 현실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었다. 10년 정도 인터넷 잡지사에서 일을 하다 인터넷 벤처 사업에 손을 댔다. 한꺼번에 뜨거워졌던 닷컴열풍은 그만큼 쉽게 식었다. 투자자를 찾지 못해 고전을 하다 하던 일이며 주변을 정리하다 보니 남은 것이라곤 약간의 빚과 카메라, 노트북이 전부였다.

이씨는 "대학시절 여행을 하면서 둘러봤던 좋은 추억이 많았던 곳이 불현 듯 떠올랐다"고 말했다. 그 곳이 제주였다. 먼저 제주에 내려가 있던 친구와 연락이 닿으며 그대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제주에 내려와서는 말 그대로 설렁설렁 이 곳 저 곳을 둘러봤다. 개인 블로그에 하루 한 곳 꼴로 제주에 대한 이야기와 음식·숙박 정보를 올린 것이 새로운 기회가 됐다. 당시만 해도 '제주 관광'하는 검색어에 관광지 명칭과 이용요금 정도가 소개되는 것이 전부였던 탓에 음식이며 오름 같은 아직 관광지로 이름 붙여지지 않은 곳에 대한 정보는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제주의 진짜 모습과 그것들을 제대로 만날 수 있는 방법을 나누고 싶었다는 이씨의 마음은 그의 인터넷 블로그 '제주 뽐뿌(http://blog.daum.net/inmymind)'를 통해 만날 수 있다. 지금은 상업적인 쪽으로 무게가 실리면서 눈동냥만 가능한 다양한 사진자료며 상세 정보를 아낌없이 퍼준다. 지금은 트위터나 페이스북을 통해서 '실시간'제주를 옮기고 있다. 거기에는 치열하기 보다는 느릿느릿한 제주만의 시간도 보태진다.

# 내면의 따뜻함까지 읽어야 '제주사람'

몇 번을 벗겨내도 속을 다 알 수 없는 양파 같던 제주가 입에 착하고 달라붙는 순간 이씨는 '정착'을 선택했다.

인터뷰를 하는 동안 옆 자리에서 작은 논쟁이 벌어진다. 산천단이 산중인지 산간인지 하는 얘기다. 이씨는 "처음 여기에 자리를 잡겠다고 했더니 제주 지인들이 다 말렸다"고 말했다. 그 때만 해도 서울 사람이던 이씨에게 제주 도심에서 15~20분 거리인 산천단은 가까웠다. '터가 세다'는 말에도 "제주와 오랜 세월을 살아온 큰 소나무가 지켜주고 있는데다 이런 경치를 어디서 보겠냐"고 일축했다. 지금은 새로 생긴 괜찮은 공간들 중 제주 도심에서 가장 가까운 문화 사랑방으로 자리를 잡았다.

먼저 자리를 잡은 터줏대감 격으로 제주 문화 이주를 고민하는 많은 이들의 이야기를 듣는다는 이씨는 적어도 1년, 제주의 4계절을 모두 겪고 난 뒤 선택하라고 충고한다. 코코넛 같은 제주의 사람들을 이해하고 또 동화될 준비를 할 시간을 가지라는 얘기다.

제주를 다니다보니 사람을 많이 얻었지만 얻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조금 시간을 두고 딱딱한 껍질만 벗기고 나면 그 안에 유순하고 따뜻한 인간미 넘치는 제주를 만날 수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걸 참지 못하고 "배타적이고 무뚝뚝하다"는 인상만 가지고 간다는 아쉬움이 잔뜩 배어있는 조언이다.

문화 이주로 인한 변화 역시 피부로 체감하기 시작하면서 '지도'에 대한 계획도 진행하고 있다.

이씨는 "불과 10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제주의 시·공간 개념이 많이 달라졌다"며 "제주를 택한 사람들이 사람냄새와 여유를 찾아 제주 안을 살피기 시작하고 그들이 들고 온 문화 아이템들이 자리를 잡은 때문"이라고 말했다. 제주는 여전히 즐겁고 새로운 도전이다. 고 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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