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103>4·3연대회의 활동

▲ 1999년 12월 초 한겨레신문과 제주지역 일간지에 실린 4·3특별법 제정 염원 광고문. 2045명의 이름으로 발표되었는데, 서명자들은 1만원씩 갹출, 단비 같은 활동비를 마련해줬다.
서명자마다 만원씩 갹출로 모아진 활동비
도민 총궐기대회·홍보전·상경투쟁 준비

4·3연대회의 활동

1999년 10월28일 출범한 4·3연대회의가 주최한 첫 행사는 4·3특별법 제정 쟁취를 위한 도민대회였다. 연대회의 발족 이틀만인 10월30일 제주시 관덕정 앞에서 열린 이 행사는 '4차 도민대회'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4·3도민연대에서 주최해온 도민대회를 계승한 것이다. 이 행사에서 "여야 정치권은 정쟁을 즉각 중단하고 4·3특별법 제정에 앞장서라"는 내용의 성명이 발표됐다.

4·3연대회의는 또한 전날 추미애 의원이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을 통해 '제주4·3이 과거 정부의 잘못에 의한 대규모 인권유린이고 김대중 대통령의 선언적 사과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 사실을 소개하면서 "4·3문제는 여야 정치권이 책임있게 해결해야 할 과제"라고 역설했다.

앞에서 밝힌 바 있지만, 추 의원은 10월29일 대정부 질문 제한시간 20분 모두를 제주4·3문제만 다루면서 대통령의 사과를 촉구한 것이다. 답변에 나선 김종필 국무총리는 "국민의 정부는 그 진상을 밝히려 노력하고 있고, 특히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 6월 제주도 방문시 특별법 제정의지를 표명한 바 있다"면서 "특별법 제정 이전이라도 추 의원의 요구사항을 전향적으로 검토해 4·3의 아픔을 치유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4·3연대회의는 특별법 제정 분위기를 다지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했다. 그런 가운데 두가지 원칙이 세워졌다. 하나는 제주도민의 의지를 결집하는 일이고, 다른 하나는 그 결집된 의지를 중앙정치권에 알리는 것이었다. 도민 총궐기대회를 비롯해서 상경투쟁과 홍보전, 새천년을 앞두고 반드시 4·3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는 염원을 담은 제주도내 인사 2000명 선언을 위한 서명운동 등을 추진했다. 서울에 있는 4·3범국민위 관계자들과 수시로 연락을 하면서 공동전선을 구축해갔다.

상임공동대표를 맡은 필자는 처음엔 관망하는 자세로 임했다. 27년간 언론계 생활을 했지만, 본격적인 NGO활동은 처음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시민사회단체 활동을 직접 체험하면서 느낀 소감은 그 활동가들이 열정적이고 헌신적이라는 점이었다. 그들의 활동을 보면서 곧잘 성서에 나오는 '빛과 소금'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회의 분위기도 진지했다. 그런데 여러번 회의에 참석하다보니, 회의시간이 예상 밖으로 길고, 실제와는 동떨어진 이상론이 압도한다는 느낌도 와 닿았다. 그래서 점차 나의 발언 기회가 잦아졌다. 어떤 때는 현안에 대해 격론을 벌이기도 했다.

그 하나는, 2000명 인사들로부터 서명을 받을 때 후원금으로 1만원씩 받자는 안에 대해 찬반양론으로 갈린 것이다. 전자는 4·3문제로 주요 인사들의 서명을 받는 일도 쉽지 않은 터인데, 어떻게 돈까지 내라 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고, 후자는 상경 투쟁 등의 활동비가 필요한데 그런 식으로라도 자금을 모아야 한다는 의견이었다. 필자는 후자 쪽을 강하게 주장했다. 

결국 후자 안이 통과되자 분야별로 담당자들이 결정됐다. 필자는 언론계와 학계, 기독교 등을 맡았다. 발 벗고 나설 수밖에 없었다. 필자가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친정집이나 다름없는 제민일보사였다. 취지를 설명했더니 너나없이 서명하고, 1만원씩의 돈을 내주었다. 제민일보 임직원 서명자만 88명에 이르렀다. 편집국 기자들만 아니라 공무국 직원들까지 참여했다.

여러 활동가들의 노력으로 서명 운동은 의외의 성과를 거두었다. 목표치를 넘어 2045명이 서명에 참여했다. 단비 같은 활동비는 이렇게 모아졌다. 12월 초에 「한겨레신문」과 제주지역 일간지 등에 "4·3특별법 제정을 염원하는 제주도민 2천인 선언/여야는 이번 정기국회 내 제주4·3특별법을 반드시 제정하라!"는 광고문이 2045명의 서명자 이름으로 게재됐다. 

그런데 정기국회 막바지에 이르면서 묘한 현상이 벌어졌다. 변정일·양정규·현경대 등 제주출신 국회의원 3명을 축으로 한 한나라당에서 4·3특별법 제정을 위해 법안 시안 발표와 여론수렴 간담회 등을 추진한 반면, 그동안 4·3특별법 제정을 약속해온 국민회의 측이 오히려 특별법 제정은 나중에 하고 우선 국회 4·3특위를 구성하자는 안을 들고 나왔다.

4·3연대회의는 국민회의의 처사에 즉각 반발했다. "4·3특위를 국회에 구성해봐야 제15대 국회가 끝남에 따라 자동 소멸될 터인데, 한두달짜리 특위가 무슨 일을 할 수 있느냐?"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상경 투쟁의 필요성이 더욱 절실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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