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105> 범국민위 특별법 공청회


  4·3범국민위, 자체 작성한 법률 시안 공개
 '국가공권력 인권침해'…배상 규정도 상정

범국민위 특별법 공청회
4·3특별법 제정운동의 가속도가 붙던 1999년 11월1일 국회 의원회관 소강당에서 '제주4·3 피해배상 등에 관한 특별법안 공청회'가 열렸다. 4·3특별법 제정의 기치를 내세워 대규모 촉구대회와 범국민 서명운동을 벌여온 제주4·3범국민위원회가 주최한 공청회였다. 4·3범국민위에서 자체적으로 만든 4·3특별법안을 공개하고, 여야 정당 대표와 법률 전문가를 초치, 토론하는 장을 마련한 것이다.

장명봉 교수(국민대)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공청회에서 4·3범국민위 법률특위 위원장인 김순태 교수(방송대)가 주제발표를 하고, 정치권에서 변정일(한나라당)·추미애(국민회의) 의원, 법률전문가로 장완익 변호사·한인섭 교수(서울대)·홍준형 교수(서울대 행정대학원), 유족 대표로 강종호 재경4·3유족회장이 토론자로 참석, 열띤 토론을 벌였다.

총 18개 조문으로 짜여진 4·3범국민위의 4·3특별법 시안은 진상규명-국가  사과-명예회복-피해배상 등 이른바 과거사 청산의 기본원칙을 바탕으로 작성됐다. 즉, 제주4·3의 성격을 '국가공권력에 의한 대규모 인권 침해'란 전제 아래 국가가 그 잘못을 인정해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고 배상하는 원칙을 제시한 것이다. 따라서 이미 발표된 한나라당의 4·3특별법안보다는 훨씬 수위가 높아지는 등 현격한 차이를 드러냈다. 두 안의 주요한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제주4·3의 용어 정의에서부터 달랐다. 한나라당 안이 사건의 정의를 간단히 정리한 반면, 범국민위 안은 가해 집단을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특히 사건의 시점을 한나라당 안은 '1948년 4월3일'로, 범국민위 안은 '1947년 3월1일'로 제시했다.

둘째, 피해배상에 관한 사항이다. 한나라당 안은 '생계 곤란자에 대한 생활지원금 등의 지급' 등을 규정한 반면, 범국민위 안은 바로 '피해자에 대한 국가배상' 규정을 상정했다.

셋째, 조직에 관한 내용이다. 한나라당 안은 진상규명과 명예회복 절차를 국무총리를 위원장으로 하는 특별위원회에서 하도록 규정했는데 반해 범국민위 안은 피해배상은 대통령 산하의 위원회에서, 진상규명은 '제주4·3문화재단'이란 민간기구에 맡기는 것으로 조직의 이원화 안을 제시했다. 

이렇게 한나라당과 범국민위의 법률 시안이 차이가 있음에도,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그것은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도록 법안이 구성됐다는 점이다. 이는 "우선 국회 특위를 구성해 진상규명을 한 뒤 이를 토대로 명예회복을 위한 특별법을 만든다"는 국민회의의 방침과는 배치되는 것이었다.

이날 공청회에서는 이런 범국민위 안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높았다. 특히 정치권에서는 4·3특별법의 입법 자체도 만만치 않은데 배상문제까지 들고 나오면 입법 충돌의 소지가 있다고 염려했다. 전문 학자들도 배상보다는 진상규명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드러냈다. 즉, 이 시안을 보면 4·3의 진상이 마치 정리된 것 같은 인상을 주고 있는데, 국가적으로 진상조사를 한 적이 없기 때문에 우선 국가 차원의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날 공청회는 특별법 제정의 필요성과 당위성을 뛰어넘어 과연 어떤 원칙 아래 어떤 내용을 특별법에 담을 것인가를 공론화하는 계기가 됐다. 특히 사건 시점 등은 그 후 주요쟁점으로 부각시켰다. 또한 4·3범국민위 측에서는 20세기를 넘기기 전에 국회 특위 구성보다는 특별법 제정으로 직행해야 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드러냈다.

한편 제주4·3연구소는 창립 10주년을 맞아 그해 11월 21일 제주시내 파라다이스회관에서 '냉전시대 동아시아 양민학살의 역사'란 주제 아래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했다. 이 학술대회는 냉전체제의 큰 피해지역인 동아시아지역의 인권학살 사례를 살피는데 주안을 두었는데, 궁극적으론 4·3범국민위의 법률 시안처럼 제주4·3을 '국가공권력에 의한 대규모 인권침해'로 규정하고 입증하는데 그 뜻이 있었다.

학술대회 제1부 '양민학살의 역사'에서는 문경수 교수(일본 리츠메이칸대)의 '4·3사건과 재일한국인'과 김영범 교수(대구대)의 '양민학살과 집단 기억의 역사' 등이, 제2부 '국내 양민학살의 실상'에서는 박찬식(4·3연구소 연구실장)의 '수형인 명부를 통해 본 제주4·3양민학살의 실상'을 비롯해서 여순·노근리의 양민학살 사례가 발표됐다. 제3부 '각국 양민학살의 실상과 역사보전'에서는 대만 2·28사건과 오키나와 양민학살 실태와 명예회복 사례 등이 각각 소개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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