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107> 특별법 제정 상경투쟁 ①


 여당 "특위 결과 따라 특별법 제정" 고집
 4·3진영 상경투쟁단 여당 방문 강력 항의

특별법 제정 상경투쟁 ①
1999년 11월17일 국민회의가 난데없이 국회 4·3특위 구성 결의안을 제출하자 분노의 소리가 드높았다. 누가 보더라도 그것은 4·3특별법 제정을 뒤로 내팽개치는 것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그에 앞서 4·3특별법 제정을 장담하고 법안 시안까지 발표했던 국민회의 제주도지부도 당황하기는 매한가지였다.

그날로 국민회의 제주도지부 김창진 위원장과 제주도의회 강신정 의장, 4·3특위 위원들이 급히 상경했다. 국민회의 중앙당사에서 이만섭 총재권한대행과 박상천 원내총무 등을 만나 4·3특위는 실효성이 없다고 지적하고 한나라당과 같이 4·3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박상천 원내총무의 자세는 완강했다. 그는 "한나라당이 특별법안을 제출하는 것은 야당이니까 할 수 있는 일"이라면서 "여당은 정부를 대표하는데 조사도 없이 건성건성 법안을 만들 수 없다"고 못박았다. 그는 이어 "국회 4·3특위의 활동 결과에 따라 4·3특별법 제정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며 특별법 선(先) 제정에 분명한 반대 입장을 드러냈다.

박상천 원내총무는 이 생각을 바로 실천에 옮겼다. 4·3진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11월26일 자신이 위원장을 맡고 있는 국회 운영위원회에 4·3특위 구성 결의안을 상정, 그대로 밀고 나갔다. 이날 운영위에 변정일 의원이 참석해서 4·3특위 무용론을 설명하며 강력한 비판을 했는데도 박 원내총무는 "특위 활동이 앞으로 특별법 제정과 연결될 것"이라고 받아치면서 결의안을 통과시킨 것이다.

4·3연대회의 관계자들은 시시각각 변하는 국회 상황을 점검하면서 강력한 대응만이 이 난국을 헤쳐갈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상경투쟁의 의지를 다졌다. 때마침 11월26일부터 서울에서 전국NGO대회가 예정돼 있어 이에 맞춰 상경 날짜를 정했다. 4·3연대회의 회장단은 상경 하루 전인 25일 도의회에서 '제1차 상경 투쟁 기자회견'을 갖고 항의집회와 여야 정당 대표 방문, 전국시민사회단체와 연대해 4·3특별법 제정의 투쟁목표가 관철될 때까지 끝까지 싸우겠다고 밝혔다.

상경투쟁단은 30여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이 서울에 도착하자 4·3범국민위원회 관계자들과 재경 유족들이 합류했다. 맨 먼저 국민회의 중앙당사를 항의 방문했다. 추운 날씨 속에서도 참석자들은 '15대 정기국회 내에 4·3특별법을 반드시 제정하라!'는 플래카드를 앞세우고 항의 시위를 벌였다. 이어 대표단이 당사로 들어가고 나머지 참석자들은 계속 당사 앞에서 가두시위를 벌였다.  

4·3연대회의 강실·김영훈·박창욱·양조훈·임문철 공동대표와 4·3도민연대 양금석 공동대표, 4·3범국민위 고희범 운영위원장 등으로 구성된 대표단은 임채정 정책위 의장 등을 만났다. 대표단은 "그토록 4·3문제 해결에 앞장서겠다고 공약했던 DJ정부와 여당이 오히려 한나라당보다 못하니 이게 말이 되느냐?"고 강력 항의했다.

4·3특별법 제정에 호의적이었던 임 의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면서도 청와대와의 조율을 거쳐 특별법 제정을 반드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표단은 박상천 원내총무의 처신을 보면서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기가 어려웠다. 임 의장을 향해 재삼재사 다짐하라고 다그칠 수밖에 없었다.    

참석자들은 이어 한나라당으로 옮겨 양정규 부총재, 이부영 원내총무, 변정일 제주도지부장 등을 만났다. 그들은 한결같이 이번 정기국회 회기 내에 4·3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다짐을 했다. 그 무렵에 와서는 변정일 의원 못지않게 양정규 의원도 특별법 제정에 열의를 보였다.

상경투쟁단은 곧이어 전국NGO대회가 열리는 올림픽 파크텔로 자리를 옮겼다. 이 대회에서 임문철 신부는 '4·3특별법 제정에 대해서'라는 주제발표를 하고, 필자는 '제주4·3양민학살의 진상'에 관한 발제를 할 예정이었다. 그리고 4·3특별법 제정을 촉구하는 전국시민단체의 성명서를 채택하는 등 연대운동을 전개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 대회장에서 뜻밖에도 행사에 참석했던 청와대 김성재 민정수석과 4·3상경투쟁단 대표들과의 긴급 면담이 이뤄졌다. 전국NGO대회 관계자들이 주선한 것이다. 이 면담은 4·3특별법 제정의 분수령이 되었으며, 4·3진영으로서는 행운의 만남이었다.
 
☞다음회는 '특별법 제정 상경투쟁' 제2편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