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109> 4·3특별법 심의 진통 ①

4·3특별법안에 관해 협의하고 있는 한나라당 소속 제주출신 국회의원들. 오른쪽에 변정일·양정규 의원이, 왼쪽에 현경대 의원이 앉아 있다.

국회, 특별법안 심사소위에서 조정키로
심사소위 '4·3 기점'에서부터 발목 잡혀

4·3특별법 심의 진통 ①
1999년 12월 1일 극적으로 국회에 제출된 국민회의의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안'은 13개 조항으로 짜여졌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4·3사건에 대한 정의' 규정이다. "1947년 3월1부터 1954년 9월21일까지 제주도에서 빚어진 무력충돌 및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정리되어 있었다. 4·3연대회의 등의 주장을 대폭 수용한 것이다.

4·3특별법안은 또 국무총리 소속하에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위원회'를 두고 이 위원회의 의결사항을 실행하기 위해 제주도지사 소속하에 실무위원회를 두도록 했다. 이밖에 4·3희생자와 유족에 대한 불이익 처우금지와 4·3백서 편찬, 위령사업 지원, 제주4·3평화인권재단 설립, 의료지원금 및 생활지원금 지급 등을 규정했다.

이는 11월18일 국회에 제출된 한나라당의 4·3특별법안(15개 조항)과 유사한 점이 많았다. 다만 몇 가지 사항이 달랐는데, 그 차이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4·3사건 정의 규정에 나오는 '기점'이다. 국민회의 안은 '1947년 3월1일'로, 한나라당 안은 '1948년 4월3일'로 정리했다.

둘째, 국민회의 안에는 한나라당 안에 없었던 4·3평화인권재단 설립과 정부의 지원 근거가 포함됐다.

셋째, 한나라당 안에 포함됐던 4월3일을 국가추념일로 제정하는 조항과 부당한 유죄 판결 선고 받은 자에 대한 재심 규정이 국민회의 안에는 누락됐다.

4·3연대회의는 이 두가지 특별법안을 비교 분석해 연대회의의 입장을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즉 4·3의 기점에 대해서는 경찰 발포가 있었던 1947년 3월1일로 정한 국민회의 안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또 국민회의 안에 포함된 4·3평화인권재단 설립 등의 규정과 한나라당 안에 포함된 국가추념일 제정, 재심 규정 등도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 행정자치위원회는 이 두가지 법안을 병합 심의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법안 조문을 조정하기 위해 법안심사소위원회에 회부했다. 법안심사소위는 국민회의 이상수(소위원장)·유선호·홍문종 의원, 한나라당 이해봉·김광원·정문화 의원, 자민련 김학원 의원 등 7명으로 구성돼 있었다. 이 법안소위가 12월 6일 열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여야 양당이 4·3특별법 제정을 당론으로 정했기 때문에 청신호가 켜진 것은 사실이지만, 워낙 시일이 촉박했기 때문에 안심할 수만은 없는 상황이었다. 만에 하나 법조문 다툼으로 법안심사소위에서 시간을 끌다가는 아차 하는 순간 정기국회 회기를 넘길 개연성은 얼마든지 있었다.

4·3특별법 제정에 최대 고비가 될 행자위 법안심사소위 개최를 앞두고 4·3연대회의는 제2차 상경대표단을 파견하기로 했다. 2차 상경대표단은 박창욱·양조훈·임문철 상임공동대표와 정책기획단 양동윤 단장, 이지훈 부단장 등으로 구성했다. 서울에서 4·3범국민위원회 고희범 운영위원장 등이 합류했다.

상경대표단은 6일 아침부터 국회에 들어가 이상수 소위원장 등 소위 위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4·3특별법 제정의 중요성과 반드시 반영해야할 조문 등을 설명했다.

이렇게 의원들을 만나는 과정에서 양정규 의원의 도움이 컸다. 당시 국회 안에서 양 의원의 위상은 대단했다. 5선 의원으로 한나라당 부총재인 그를 두고 일부 의원들은 '두목'으로 불렀다. 그는 여야를 넘나들면서 폭넓은 인간관계를 맺고 있었다. 양 의원은 법안심사소위가 열리는 동안 상경대표단이 국회 행자위 위원장실에 머물 수 있도록 주선했다. 심사소위는 위원장실 바로 옆 소회의실에서 열렸다.

여담이지만 국회 회기 중에 NGO대표들이 상임위원장실에서 차를 마시며 대기한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국회를 다녀본 공무원들은 얼른 이 말을 이해할 것이다. 상임위가 열릴 때에는 앉을 자리도 없어서 국회 복도에서 서성대는게 보통이기 때문이다.

4·3특별법안을 다룬 행자위 심사소위는 비공개로 진행됐다. 4·3특별법안 발의를 주도한 한나라당 변정일 의원과 국민회의 추미애 의원이 참고인 자격으로 참석해 각각 제출한 법안의 요지를 설명한 뒤 축조심의를 벌였다.

상경대표단은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추미애 의원이 위원장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매우 상기된 모습이었다. 추 의원은 대뜸 "어떻게 된 것이냐?"고 오히려 우리에게 따지듯 물었다. 기점 문제에 발목이 잡혀 한발짝도 못 나가고 있다면서….

☞다음회는 '4·3특별법 심의 진통' 제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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