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제주파(派)’] <5>전통등 공예가 윤성재

스쿠버다이빙에서 전통등으로 제주와의 눈맞춤 이어가

‘살아있음=신화’ 알아가는 즐거움 중독·신화축제 목표도

 

“착한 아들을 원한다면 먼저 좋은 아빠가 되는 거고, 좋은 아빠를 원한다면 먼저 좋은 아들이 되어야겠지.…간단히 말해서 세상을 바꾸는 단 한 가지 방법은 바로 자신을 바꾸는 거야”(A.G. 로엠메르스의 「어린왕자- 두 번째 이야기」중).

바다가 좋아서 무작정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던 스물다섯 청년은 5년 만에 새 꿈을 찾아 섬을 떠났다. 그리고 다시 제주를 찾았다. 제주가 아니면 이룰 수 없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그냥 ‘제주’라는 단어를 꺼냈을 뿐인데 얼굴 가득 어린아이 같은 미소가 채워진다.

 

# 바다에서 신화로 ‘제주앓이’

 

“군 제대를 하고 나서 무작정 바다를 찾아 나섰을 땐 부모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지금은 제주가 잘 맞는 것 같다고 제일 많이 응원해 주세요”

인터뷰를 위해 잠시 삭풍을 피한 사이에도 윤성재 작가(33)의 정신은 온통 행사장으로 향해 있다. 윤 작가는 올해부터 탐라국 입춘굿놀이의 새로운 신상으로 좌정한 자청비등을 제작했다. 머릿속을 뛰어다니는 물음표는 윤 작가의 이력을 살펴보면 느낌표로 바뀐다. 윤 작가는 ‘철없던’ 20대 후반을 제주와 부대끼는 동안 순식간에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자연경관 보다 제주 사람들이 빚어내는 문화의 독특함에 빠져들었다.

제주의 전설과 신화를 표현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던 중에 진주 유등축제를 알게 됐고 거기서 작은 실마리를 찾았다. 겁 없이 덤빈 등 제작 작업은 6개월을 매달려서야 등을 만드는 재료에 손을 댈 수 있을 만큼 더디고 힘들었다. 하고 싶은 목표가 있다는 것이 윤 작가를 지탱하는 힘이 됐다.

다시 돌아온 제주는 떠날 때와 마찬가지였다. 예술가로 전문 과정을 밟은 것도 아니고 명함을 내밀만큼 자리를 잡지 않은 탓에 당장 머물 곳을 걱정하던 그에게 제주의 지인은 ‘필요한 만큼 쓰라’고 작업실을 내줬다. 지난해 가시리창작스튜디오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가했던 것 역시 윤 작가에게 힘이 됐다.

제주의 신화라는 것은 공부를 하거나 상상력을 한없이 끌어낸다고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윤 작가는 “‘신화’라는 단어에 매달리다 보니 완성형을 이루지 못하는 것에 조바심만 났다”며 “가시리에서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가 신화라는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 “살아가는 것 자체가 신화”

지난해 가시리 레지던시 프로젝트를 마무리한 윤 작가는 서귀포시 예래동에 자리를 잡았다. 이번은 제주 살이를 함께할 ‘짝’과 함께다. 가시리창작스튜디오 로컬푸드식당의 메뉴 개발을 위해 초청됐던 강가자 마크로비오틱 요리전문가와의 인연 역시 제주에서 시작됐다.

제주민예총의 의뢰로 자청비등을 제작한 작업실 역시 가시리 마을 주민이 무상으로 빌려줬다. 한 때 제주시 동문시장에서 과일 배달 아르바이트까지 하며 생활을 했던 때와 달리 이제는 ‘내 집’도 마련했고 ‘반딧불 공작소’라는 간판도 달았다.

앞으로 목표는 ‘그랬더라’하고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닌 만들어가는 신화 작업이다. 가시리에서 배운 것처럼 살아가는 이야기를 고스란히 녹여내고 싶어 한다. 이번 자청비 작업을 위해 많은 얘기를 듣고 답을 찾았다. 그 가운데 1인극 배우·민속학자 심우성 선생으로 들은 말을 잊을 수가 없다. “선생님께서 ‘생각하고 상상하는 대로 만들라’하신 것이 도움이 됐다”며 “옛날 사람들이 살았던 이야기가 신화면, 오늘 우리가 사는 얘기 역시 시간이 지나면서 신화가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이다.

윤 작가는 “내 작업은 이제 제주가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 됐다”며 “과거에서부터 이어져온 것들에 상징성이며 믿음 같은 것을 채운 등을 만들고 싶다”고 강조했다.

제주 생활은 도전의 연속이다. 종이에 감물을 발랐더니 시간이 흐르면서 붉게 변하는 ‘나이를 먹는’ 등이 됐고 현무암도 몇 번 들었다 놨다. 지역과 함께 하는 특별한 시간은 마침표가 없는 여전한 과제다.

윤 작가는 “제주에서 너무 많은 것을 받아서 다 갚기 전에는 떠날 수 없다”며 “제주신화를 테마로 한 등 축제와 이런 기억이며 작업의 흔적을 모은 작은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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