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내 최장수 음반 매장 아리랑레코드 40년 역사 속으로
1대 이영태 사장·2대 이선애씨 등 지역과 음악적 공감 나눠

일제 식민지 나라 잃은 설움을 달래줬는가 하면, 포화가 피어오르던 전쟁의 처절함 속에서 삶에 대한 희망을 지켜줬으며, 궁핍한 생활에 다시 일어서자 등을 두드려주던 것이 있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희로애락과 함께 했던 ‘음악’이다.

지금이야 ‘음악을 듣는 게 무슨 대수야’ 할 일이지만 1970년대만 해도 낡은 트랜지스터라디오에 귀를 대는 것 마저 호사였다. 전쟁 후 간신히 자리를 잡아가던 터라 한 푼이라도 보탤 수 있는 일이라면 어른 아이 할 수 없이 아끼고 절약해야했던 시절이었다.

당시 섬에서 ‘음악’을 판다는 것은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걱정 어린 시선을 뒤로하고 매장을 열었던 곳이 몇 군데 있었지만 길어야 5년 정도를 버텼을 뿐이었다. 그 때부터 우직하게 한 길을 걸었던 ‘아리랑레코드’가 40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제주의 ‘마지막 아날로그’가 시대의 뒤안길로 자취를 감추는 일이 녹록치 않다.

음악에 대한 애정 하나로 1세대 이영태 사장(66)으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아 간판을 지켰던 이선애씨(42·여)는 요즘 단골들의 성화에 몸살이 날 지경이다. 가게 임대 현수막을 내걸 때만 더 이상 미련이 커지기 전에 결단을 내리자는 생각뿐이었다.

막상 폐업 소식이 알려지면서 40년 지기 단골부터 중년 고객들이 줄을 섰다. 하나같이 ‘왜’가 아니라 ‘이제’를 묻는다. 추억을 긁어대던 것들에 대한 아쉬움과 마지막 향수를 지키지 못했다는 착잡함 따위가 한꺼번에 밀려든다.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었지만 제주 첫 클래식 음악 감상실 주인장이자 클래식마니아인 진용진씨 등 진짜 음악을 알았던 50·60대 단골 고객의 이름을 늘어놓는 이씨의 눈가에 슬쩍 눈물이 비쳤다.

1973년 제주시 만남의 장소 역할을 했던 아리랑백화점 내 개점 당시 3일 동안 LP판을 나르며 고생했다는 양웅화씨(60)는 매장 안을 빙빙 돌며 마음을 내려놓지 못했다.

양씨는 “정말 많은 일을 한 의미 있는 장소인데 이렇게 사라져야 하는가 생각하니 슬프다”며 함께 기억을 더듬었다.

음악 듣기 힘들었던 시절 발품을 팔아 음반을 수집했고, 이틀에 한 번 꼴로 도 일주를 하며 실어 날랐다. 음악이 좋아서 당시 아리랑백화점 지하 음악다실에서 꼬박 6개월 배고픈 DJ 생활을 했던 이씨는 “이왕이면 음악도 듣고 일도 배우면 좋지 않겠냐”는 이 사장의 권유에 아리랑레코드와 인연을 맺었다. 그 때가 1991년, 이 씨의 나이 스물 한 살 때 일이다. 이후 제주시중앙지하상가 시절을 거쳐 지금의 제주 시청 인근 대학로 자리를 옮기면서 양정원씨나 이정미씨, 사막돌고래 등 제주 출신의 아티스트를 소개하는 창구 역할도 했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이씨는 “일부러 추억이니 의미 따위로 포장할 생각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고집스레 LP를 찾고, CD를 사러 매장에 들르는 고객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지 않지만 더 이상 자리를 지키는 것은 스스로에게도 못할 일 같다”며 “온라인 저가 공세를 이길 재간은 없었다”고 털어놨다.

오랜 단골 고객이 구입한 CD앨범에 이씨의 사인을 받는다. 추억을 지켜준 데 대한 고마움과 지켜주지 못한 미안함을 담은 의식만 같다.

아리랑레코드의 폐업 예정일은 오는 18일이다. 그 때까지 추억을 나눠 갖는 특별한 할인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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