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도서관 3월5일까지 ‘방석(榜石) 임도현 일대기’전
조카 의한 자료 발굴 불구 국가유공자 서훈 받지 못해

▲ 2009년 고 임도현씨 유해 발굴 현장 모습. 가족들을 중심으로 국가유공자 서훈을 위해 유해 발굴 작업까지 실시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31년 일본 다치카와 비행학교에서 비행훈련을 받던 중 동료들을 설득, 훈련 비행기를 몰고 중국 상하이로 탈출했다.….중국군 중위로 쓰촨성 중경중앙군사정부 직속부대에서 실전에 참가했다.….소련·만주 국경 전투 당시 머리에 총상을 입고 숨어있는 것을 조선 사람이 밀고해 본국으로 송환돼 옥살이를 했다’

일제시대 우리나라 항일 투사들의 무용담 속에서나 읽었음직한 이야기는 불에 그슬려 일부만 확인할 수 있는 낡은 종이 서류에서 찾아낸 것들이다.

1909년 현재 제주도 제주시 조천읍 와흘리에서 태어난 고 임도현씨가 1940년 쯤 귀향한 뒤 자필로 남긴 이력서다.

평탄치 않았던 시대 상황 속에 강제 징집을 피할 수 없었지만 시키는 대로 전쟁터에서 아까운 목숨을 잃을 수는 없었다.

간신히 고향 땅을 밟은 뒤 직접 남긴 글 외에도 ‘1936년 5월 조선총독부 광주지방법원 제주지소 재판기록’과 요주의 인물로 일본 경찰의 집중 감시를 받았다는 일본 경시청의 비밀문서, 중국 광시 항공학교 인터넷 사이트에 게재된 1939년 촬영된 사진 등 임씨의 흔적은 여기저기에 남아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임씨의 항일 투쟁은 ‘혼자만의 싸움’으로 남아있다. 2005년과 2008년 두 차례의 국가유공자 서훈 신청과 이후 국가보훈처를 상대로 한 행정소송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적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극히 미미하다.

한라도서관(관장 김대훈)이 이런 임씨의 흔적을 세상에 꺼내놓아 눈길을 끌고 있다. 3월 5일까지 진행되는 ‘방석(榜石) 임도현 일대기’전이다.

3·1절을 앞두고 마련된 이번 전시는 ‘항일 운동’에 대한 기록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관련 활동들에 대한 자료를 평가받지 못하며 ‘알려지지 않은’ 항일 운동가(제민일보 2009년 6월 15일자 사회면)에 대한 지역적 관심 환기를 목적으로 한다.

임씨와 관련된 자료는 조카인 임정범씨(56)에 의해 발굴됐다. 해방 이후 생활계몽운동을 펼치다 고문 후유증으로 42살의 나이에 생을 마감한 숨은 ‘애국지사’인 백부의 사연을 알리기 위해 유해 발굴 작업까지 진행했지만 아직 국가 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했다. 임씨는 이런 아쉬움을 담아 와흘리에 사설 전시관을 만들었고 지금은 마을을 오가는 사람들의 입을 통해 관련 사실이 세상에 전해지고 있다.

한라 도서관은 “알려지지 않았을 뿐 나라를 지키기 위한 지역 애국 지사가 있었다는 점과 그 공로를 인정해야 한다는 생각에 전시를 준비했다”며 “앞으로 이런 사례들을 계속해 발굴해 지역사회에 알리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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