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양조훈 육필기록] <112> 4·3특별법 본회의 통과 ①

1999년 12월 16일 오후 3시께 국회 본회의에서 4·3특볍법안을 상정하고 있는 박준규 국회의장. 추미애 의원의 제안 설명과 김용갑 의원의 반대토론이 이어지면서 긴장감이 감돌았다.<KBS-TV 화면>

행자위-법사위 무사통과…본회의에 상정
김용갑 의원 보수대표로 특별법 반대토론

4·3특별법 본회의 통과 ①
1999년 12월13일 국회 행정자치위원회는 산하 법안심사소위가 심의하여 만든 4·3특별법 단일안(행자위 대안)을 일부 조문의 수정 끝에 통과시켰다. 4·3특별법안이 중요한 관문을 또 하나 넘긴 것이다. 이제 4·3특별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의 의결 과정만 남게 됐다.

국회 행자위 심의 과정에서 행자위 수석전문위원(박봉국)은 4·3특별법 발의안에 대해 "지난날 우리 민족이 겪은 아픔의 한 부분을 치유하려는 취지를 가진 것"이라고 평가하고, 이 법안을 심사할 때는 "사건의 진상에 대한 역사의식과 정책의지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이날 행자위 전체회의에서 한 조문이 수정됐는데, 그것은 행자위 대안에 '제주4·3사건 백서 편찬'으로 표현됐던 것을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작성'으로 바꾼 것이다. 즉 정부 차원의 위원회에서 4·3사건에 대한 진상을 규명하게 됨에 따라 '백서 편찬'이란 용어보다는 '진상조사보고서 작성'이란 표현이 더 체계적이고 무게가 있다는 의견이 제기돼 이를 수용한 것이다.

이 수정안을 제기한 사람은 김충조 의원이었다. 전남 여수 출신인 그는 4·3특별법 제정 이후 여순사건 관련 법 제정에도 이 내용이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4·3진영의 설득을 받아들여 이를 관철시켰다는 후일담이 있다.

12월15일 열린 국회 법사위에서도 4·3특별법안은 무난히 통과됐다. 일부 조항에 대한 배열순서 등 가벼운 손질이 있었을 뿐이다. 이제 마지막 관문인 본회의 통과만 남게 되었는데, 당초 18일 개최 예정이던 본회의가 16일로 앞당겨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아울러 불길한 소식도 들려왔다. 보수단체들의 강력한 항의가 한나라당 쪽으로 이어졌고, 보수단체의 입장을 대변해오던 한나라당 김용갑 의원이 4·3특별법안의 본회의 통과 저지를 위해 총대를 멨다는 것이다.

4·3진영은 비상을 걸 수밖에 없었다. 한나라당 소속 제주출신 세 국회의원에게 그 대책을 촉구했다. 그 일에 양정규 의원이 앞장섰다. 당시 한나라당 부총재이던 양 의원은 이부영 원내총무 등과 협의를 거쳐 김용갑 의원을 설득했다. 그러나 김 의원은 자신의 입장도 있기 때문에 본회의에서 반드시 반대토론을 해야 한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 결국 원내대책회의에서 반대토론은 하되 표결은 하지 않는다는 안으로 정리됐다.

운명의 날인 12월16일이 다가왔다. 4·3진영의 시선은 온통 제208회 정기국회 본회의로 쏠렸다. 오후 3시께 박준규 국회의장은 13번째 안건으로 4·3특별법안을 상정했다. 먼저 추미애 의원이 단상에 나와 11개 조문과 부칙으로 구성된 4·3특별법안에 대한 제안 설명을 했다.

"사건 이후 반세기가 넘도록 피해자 규모조차 정확히 알 수 없을 정도로 우리는 그동안 이 사건을 덮어두었습니다. 그러나 죄 없이 죽어가고 억울하게 희생당한 양민피해가 있었다면 이제 이를 조사하여 그들의 넋을 위로하고 명예를 회복해 주는 것이 역사를 승계한 후대의 의무일 것입니다. (중략) 제주도민은 더 이상 기다리기에도 지쳐있는 상태입니다. 제주도민도 과거의 상처를 치유하고 새로운 21세기를 맞을 수 있도록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각 당이 제주도민에게 이 법의 통과를 굳게 약속한 이상 그 신의를 저버리지 않도록 본 의원이 간절히 호소하는 바입니다" 

대구 출신인 추미애 의원은 훗날 이런 회고를 했다. 제주4·3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지 고심하던 자신에게 남편(서성환 변호사)이 절차법을 만드는게 중요하다는 점을 조언해줬다는 것이다. 전북 정읍 출신인 남편은 그 무렵 동학농민운동의 역사적 재조명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가 제주4·3의 진상을 제대로 규명하기 전에는 어떻게 정의할 수 없는 만큼, 그 진실에 다가갈 수 있도록 절차법을 우선 만들고, 국회에서 이념 대립이나 정쟁의 희생물이 되지 않도록 차라리 정부 내에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하는 것이 분위기를 완화할 수 있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거들었다는 것이다. 추미애 의원은 그런 절차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제안한 것이다.

곧이어 예상했던 대로 김용갑 의원이 반대토론을 위해 본회의 단상에 섰다. 국회 본회의장에 나가 있던 4·3단체 관계자들이나 제주도의 4·3연대회의 사무실에서 TV 실황중계를 지켜보던 연대회의 임원들 모두 침이 바짝 마르기는 매한가지였다.

김 의원은 예의 공산폭동론을 앞세웠다. 그는 이어 "4·3의 진압과정에서 억울하게 희생된 제주도민이 있을 수 있지만 4·3사건의 성격을 자의적으로 재규정하는 것은 역사에 대한 범죄"라고 열을 올렸다.

☞다음회는 '4·3특별법 본회의 통과' 제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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