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기원전 1028년,목야(牧野)를 향해 출정하는 군대 앞에 허름한 행색의 두 사람이 나타나 길을 막았다.선두에 선 희발(姬發)의 말고삐를 잡고 그들은 “부친이 돌아가셨는데 장례를 치르기도 전에 출정하니,이를 효라고 할 수 있는가? 신하된 이로 군주를 시해하려하니,이를 인이라고 할 수 있는가?”라고 물었다.갈길이 바쁜 장수들이 우루루 몰려와 정신 빠진 두 늙은이를 죽이려고 했다.그러자 희발 옆에 있던 군사(軍師) 여상(呂尙)이 끼어들면서 입을 열었다.“그들은 의인(義人)이다”.

 공자가 그토록 찬양하였던 서주(西周)의 문화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상(商)나라의 마지막 제(帝) 주(紂)를 정벌하기 위해 떠나는 길에서 이후 인구(人口)에 회자(膾炙)처럼 널리 알려진 백이와 숙제,무왕과 강태공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이렇게 만나고 있었다.

 전쟁이 끝난 후 백이와 숙제는 수양산에서 굶어죽었고,무왕과 강태공은 승자의 기쁨을 만끽하고 건국의 토대를 마련하느라 최선을 다하다가 붕어하였다.그들 네 사람은 서로 다른 위치에서 각기 다른 양태의 삶을 살다가 죽었지만 역사는 지금까지 그들을 기억하고 찬양한다.

 그러나 분명 천하의 주인이 된 무왕이나 강태공의 삶에 비해 고죽국(孤竹國)의 왕자들로 알려진 백이와 숙제의 삶은 지극히 불편하고 어려웠으며,죽음조차 초라하기 이를 데 없었을 것이다.오죽했으면 사마천이 백이와 숙제의 죽음에 대해 말하며,‘과연 천도란 것이 있느냐?’라고 개탄했을 것인가!

 2000년의 마지막 날들을 정리하면서 고리타분한 옛 이야기,그것도 자그마치 3000여년 전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요즘 들어 부쩍 ‘산다는 게 뭔지’ 자꾸 생각이 나기 때문이다.아침에 일어나면 욕망의 이면사를 들고 화장실로 가는 것이 상례인데,순통과 경색이 반복되다 정치면에 이를 즈음이면 예외없이 아이가 쳐들어오거나 안사람의 나무라는 소리가 들리기 마련이다.

 그래도 예전에는 좁다란 공간이나마 슬며시 웃음이 감돌기도 하고,감격에 겨워 엉덩이에 쥐가 날 때까지 마냥 앉아 있을 때도 있었는데…. 아,그리운 옛날 이야기로다.어찌 생각하면 그 옛날이라고 별 수 있었겠는가 싶기도 하지만,사람이 현실에 절망할 때 기댈 수 있는 것이 옛날과 미래 이외에 다른 데가 있겠는가!

 보통 사람들의 삶이란 지루한 일상의 반복이다.때로 기복은 있으되 본질은 자연의 흐름이다.그나마 지구에 살고 있는 이들이 이 정도라도 제대로 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은 대체적으로 반복되는 일상의 거룩한 흐름에 동참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속에서 사람들은 상식(常識)을 만들어가고,악악거리는 사회를 구성하며,씩씩거리며 일하고,오손도손 아이를 기르며 살아간다.

 역사는 우리들에게 위대한 삶의 정신과 그 찬란한 역정을 소개하며,형편없는 거시기들의 참혹한 말로를 그려 사필귀정(事必歸正)의 본보기로 삼고,우리들을 격려하고 또한 위협한다.격려와 위협에 격양되거나 떠는 것은 아니지만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것이 사실은 우리 일반 백성들의 상식에 부합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만 ‘산다는 것이 뭔지’라고 되뇌이는 것은 날마다 죄없는 이들을 죽이고,사람의 살을 회쳐서 먹으며,포악한 짓을 밥먹듯이 해도 끝내 부귀영화에 천수(天壽)를 누린 도척(盜 )의 삶이 그럴 듯하게 포장되어 매일 우리들의 밥상에 올라오기 때문이다.같은 위인이라면 백이와 숙제의 삶보다 무공이나 강태공의 삶이 더욱 구미를 당기기 때문이다.욕망과 그 충족을 위해 고군분투해마지 않는 요즘의 삶을 보면서,나는 묻는다.이렇게 사는 것 맞아?<심규호·제주산업정보대학 교수·중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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