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제주파(派)'] 9.유종욱 제주마미술연구소 대표
말 작업 위해 제주행…9년차 섬 사람·지역 작가로 자존감 커

뭔가에 머무는 것이 도통 몸에 맞지 않았다는 젊은 예술가가 바람처럼 섬에 들어왔다. 제주 조랑말을 따라 온 길.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조랑말의 매력은 작가를 고스란히 섬으로 만들었다. 연고 하나 없는 제주에서 벌써 9년째 '말'을 만나고 '말'을 만들어내고 '말'로 소통하고 있지만 아직 모자라다.

△ 제주 사람 닮은 점 매력

주소 하나를 받아들고 찾아간 길 '제주馬미술연구소'란 이름이 반긴다. 그보다 더 반가운 것은 큰 머리에 짧은 다리, 불룩한 배까지 저절로 '조랑말이다'소리가 터져 나오게 하는 말 조형물이다. 과거 저장고로 쓰였던 공간을 개조한 작업실에서 유종욱 작가(44)는 빗소리를 벗 삼아 '말'장난 중이었다.

말이 장난이지 유 작가의 작업은 유난히 손이 많이 간다. 자신이 직접 개발한 마연(磨硏)기법으로 생명을 얻은 말들은 금방이라도 훅하고 숨소리를 쏟아낼 듯 느껴진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바람결 같은 것이 느껴진다. 유 작가가 제주를 떠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유 작가가 말, 그것도 조랑말에 매료된 것은홍익대학교 미술대학원(도예과)에서 '제주 조랑말을 중심으로 말의 상징성을 표현한 도자조형'주제의 논문을 쓰면서부터. 12간지 모두를 가지고 논문 작업을 했지만 끝내 답을 얻지 못하던 상황에 우연히 말 잡지에서 조랑말에 만났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이 '인연'이었다. 파리 유학 중 작업을 위해 귀국했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제주로 들어왔다. 이후 9년 동안 유 작가는 태어나 만날 말을 다 만났다. 처음 '지독하게 한국 사람을 닮았다'는 생각은 조금씩 그 범위를 좁혀 어느 덧 '제주인'이 됐다.

유 작가는 "경주마들만 해도 제대로 돌봐주지 않으면 약간의 기온 변화에도 힘을 못 쓰지만 제주는 말 그대로 말을 방목 한다"며 "흰 눈을 덮어쓰고도, 그 험한 바람을 맞으면서도 강인한 생명력을 감추지 못하는 그것들이 끊임없이 나를 자극한다"고 말했다.

△ 흙·말로 제주와 소통

차 한 잔을 받아들였다. 머그잔에도 말 그림이다. 그의 조랑말 사랑은 여기저기서 확인된다. 흙이 가지고 있는 원시적 질감을 살려 신성성을 지닌 말을 작업하던 그가 바람을 담아내고 최근에는 해학과 사람 사는 이야기를 담은 도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 작품들은 도내 미술관 등에서 적당한 가격에 판매가 되고 있다. 유 작가는 "모 라면 CF처럼 '제주에 왔으면 조랑말 하나 몰고 가세요' 정도의 환경이 만들어져야 하지 않나 싶었다"며 작업의 의미를 설명했다.

웃는 얼굴의 조랑말에는 몇 년 전부터 지역 아이들과 함께 꾸려가는 프로젝트도 녹아있다.

사계절 중 유독 겨울과 말을 연관 지을 '거리'가 없다는 것이 안타깝던 차에 제주마방목장에 형형색색 말 조형물을 만들어 세워보자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몇 번이고 자치단체 문을 두드린 끝에 아이들과 함께 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거기에는 '말의 고장'에 살고 있으면서도 말에 대한 아이들의 관심이 적다는 아쉬움도 보태졌다. 그렇게 2010년부터 제주시 더불어숲지역아동센터와 연동지역아동센터 아이들과 '희망의 제주말(馬)'작업을 진행했다. 올해 역시 또 다른 지역 아이들과 희망의 제주말을 만들 예정이다. '재능나눔'이라는 주변의 평가에 유 작가는 가만히 손사래를 한다. "다들 내가 준다고 하는데 사실 받는 것이 더 많다"며 "나고 자라면서 받았던 혜택을 자신이 가진 능력을 가지고 돌려주는 것은 작가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말했다. 고 미 기자 popmee@je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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