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 - 양조훈 육필기록] <119>「월간조선」 기고문 파문

이진우·이현희, 소련 사주설 등 궤변 되풀이
조갑제 "공산폭동 동의해야" 반론게재 묵살

「월간조선」 기고문 파문

제주4·3특별법의 제정은 극우 보수진영에겐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대 사건이었다. 23개 보수단체가 4·3특별법의 국회 본회의 통과 직전에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특별법의 폐기를 주장했지만 타이밍을 놓치는 바람에 허공에 날린 빈주먹과 다름없었다. 4·3특별법 제정 직후 그들은 또 다른 반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 첫 시도가 여론 조성을 위한 「월간조선」의 기고문 발표였다.

조선일보사에서 발행하는 시사 월간지 「월간조선」 2000년 2월호는 기고문의 표지 제목을 "국군을 배신한 국회-공산게릴라들에겐 면죄부를 주고 국군을 학살범으로 정죄(定罪)한 4·3특별법"이라고 매우 선정적으로 달았다. 「월간조선」은 4·3특별법 제정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이진우 변호사의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특별법의 국회 통과를 개탄한다'와 이현희 교수(성신여대)의 '제주4·3사건의 본질을 다시 말한다'는 기고문 두 편을 동시에 실은 것이다.

▲ 「월간조선」에 실린 '국군을 배신한 대한민국 국회'란 제목을 단 이진우 변호사 기고문(위)
이진우 변호사의 글은 섬뜩함이 느껴질 정도로 과격했다. 즉 "4·3특별법은 공산폭도들에게 면죄부와 함께 사랑의 꽃다발을 안겨주었고, 반면 이들의 폭동을 진압하기 위해 피와 땀, 그리고 생명을 바친 대한민국 국군, 경찰관들에게는 '무차별 양민 대량학살'이라는 유죄판결을 내렸다"는 게 그의 논지였다.

이현희 교수의 글은 왜곡 그 자체였다. "4·3은 소련 지령 하에 대한민국 건국을 저지하기 위한 유혈폭동"이라고 당당히 규정하는가 하면 "4·3사건은 우리 민족의 현대사에서 동족이 벌인 공산당의 광란의 살육으로는 가장 처참한 사건으로서 많은 희생자를 냈다"는 주장까지 폈다.

그들의 글만을 읽은 독자들은 '도대체 대한민국 국회가 어쩌다가 이런 큰 실책을 했단 말인가?'라는 우려와 의문을 던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소련의 지령을 받은 공산당이 광란의 살육극을 벌여 수많은 희생자를 발생시켰다고 주장하는 판국이니 더 말해서 무엇하랴.

그동안 4·3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해온 「제민일보」 4·3취재반으로서는 이런 얼토당토아니한 궤변의 주장을 그대로 묵과할 수 없었다. 하필 4·3취재반과 두 사람 사이에는 악연이 있었다. 즉 이승만 양자가 '불법 4·3계엄령'을 보도한 제민일보를 상대로 제기한 3억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측의 대표 변론을 맡은 이가 바로 이진우 변호사였다. 또 고등학교 교과서에 4·3과 관련해 근거 없이 '북한의 사주'라는 표현을 썼다가 10여년 전에 4·3취재반으로부터 호되게 추궁당한 이가 바로 이현희 교수였다.    4·3취재반 김종민 기자는 「월간조선」 조갑제 편집장에게 전화를 걸어 두 사람의 글이 역사적 사실관계를 무시한 채 억측으로 점철된 궤변이라고 지적하고 반론 게재를 요청했다. 이에 조 편집장은 "4·3을 공산폭동으로 보느냐, 그렇지 않다고 보느냐. 그것부터 밝혀라"고 다그치고는, "4·3이 '공산폭동'이라는 사실에 동의하지 않으면 지면을 줄 수 없다"며 반론 게재 요청을 거절했다.

▲ 「한겨레21」에 실린 '4·3이 공산폭동이라니' 제하의 김종민 기자 반론문.
결국 김종민 기자의 반론은 한겨레신문사에서 발행하는 시사주간지 「한겨레21」(2000년 2월 24일자)에 "4·3이 공산폭동이라니"란 제목을 달고 실렸다. 김 기자는 먼저 이 변호사의 주장에 대해 "4·3특별법 그 어디에도 '대한민국 국회가 공산 게릴라들에게 면죄부를 주고 국군과 경찰을 양민 대량 학살범으로 정죄한' 내용은 없다. 다만 진상을 규명하고 억울한 희생자의 명예를 회복시킨다는 대의명분이 있을 뿐이다"고 지적했다.

김 기자의 반론은 또한 6쪽에 불과한 이현희 교수의 짧은 글에서 무려 20여군데의 오류가 발견되었다면서 그 허구성을 조목조목 따졌다. 특히 논란이 됐던 '소련 사주설'의 진위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이현희씨의 이번 주장은 남로당 중앙당 수준을 넘어, 북한·소련이 사주해 4·3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이니, 그게 사실이라면 매우 중요한 내용이 아닐 수 없다. 이씨는 그 근거로 '1946년 당시 소련은 김일성·박헌영 등에게 폭동의 시기와 전략적 지침의 하달은 물론 준비 및 진행자금까지 제공한 사실에 관한 소련의 비밀문건이 최근 한국의 일간신문사 조사취재팀에 의해 발굴된 바 있다'고 밝혔다. 1946년에 있었다는 전반적인 내용의 소련의 지침과 구체적으로 1948년에 발발한 제주4·3사건을 바로 연관 짓는 건 난센스지만, 매우 궁금한 대목이 아닐 수 없어 이씨에게 전화를 걸어 물어 보았다. 이씨는 머뭇거리다가 '「중앙일보」 현대사연구팀이 발굴한 자료에서 비슷한 내용을 본 것 같다'는 어처구니없는 답변을 했다. 논쟁을 벼르며 전화했지만 10년전과 마찬가지로 오류 지적에 대해 하나도 제대로 답변을 못하니 허탈할 지경이었다"   

☞다음회는 '보수진영의 헌소 제기'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