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제주파(派)’] 1세대 포토그래퍼 장영준씨

촬영 인연 2년여전 사계 고구마저장고에 갤러리·카페 문 열어

올레 10코스 명물·지역 사랑방…지역 어르신 영정사진 촬영 등

 

세계 경관이 좋다는 곳이며, 좋은 와인이 있다는 명산지까지 안 가 본데가 없다는 사진작가의 발이 몇 년 전부터 서귀포시 안덕면 사계리에 묶였다. ‘왜’를 묻는 질문에 작가는 ‘사람’을 말한다. 농부며 어부며, 목수까지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친구들 얘기다. 전문 지식으로 똘똘 뭉친 친구들 덕분에 제주에 살 이유가 생겼다. 앞으로를 의지할 든든한 재산이다.

 

# ‘멈칫’하고 그대로 머물러

대한민국 1세대 포토그래퍼이자 상업사진의 대가 장영준씨(65)의 ‘사계교실’은 제주올레 10코스의 명물이다. 문을 연지 이제 2년 남짓한 공간은 원래 고구마저장고였던 곳을 ‘살짝’손을 보면서 오가는 이들의 쉼터이자 마을 사람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장 작가의 제주 인연은 20년이 넘는다. 자동차 광고 사진을 주로 찍던 그의 눈에 바다와 산, 하늘, 거기에 맑은 햇살이 공존하는 공간이 허투루 지나갈리 만무했다.

‘언젠가 머물고 싶다’ 마음을 끄는 곳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사계리에서 고구마저장고를 보는 순간 말 그대로 ‘멈칫’했다. 멀쩡한 곳도 많은데 10년이나 비어있는 공간을 빌리겠다는 ‘외지 사람’에게 의아한 시선을 숨기지 않았던 마을 사람들도 이제는 제집 드나들 듯 한다. 장 작가 스스로도 ‘막연히 좋은 곳’이던 제주 인상이 ‘사람이 좋은 곳’ 바뀌었다.

마을 재산이던 공간을 10년 무상으로 임대한 것도 모자라 머물 곳까지 마련해주겠다는 마을 인심에 다른 곳에서 사는 일은 아예 꿈도 꿔보질 않았다.

작은 갤러리처럼 사용하던 공간을 차도 팔고 시간도 나누는 공간으로 활용하라고 권했던 것도 지역 사람들이다. 오일장을 다녀 온 일도, 인테리어가 조금 바뀐 것도 다 안다.

장씨는 “그런 것이 다 반갑다는 표시란 걸 안다”며 “언제 다 둘러봤는지 답을 해주는 일이 바쁠 정도”라고 너털웃음을 웃었다.

 

# 도움 주고받는 긍정의 공간

‘교실’이란 진부한 이름에도 이유가 있다. 처음 고구마저장고를 개조하면서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한 사진과 와인강좌도 열고, 지역 아이들을 위한 사진 교실이며 작은 사생대회 같은 것을 계획했다. 다 실현하지는 못했지만 어깨너머에서 사진을 배웠던 한 초등학생이 중학교에 진학하자마자 ‘사진반’에 들었다는 귀띔을 한다.

요즘은 개인 작업실을 사계교실로 옮겨오는 작업으로 부산하다. 제주에 와서 2년 정도 ‘말’사진을 찍었다. 하마터면 ‘사계교실’ 대신 ‘교래(해피)교실’이란 이름이 쓰게 했을 지인의 도움으로 말의 생애를 사각 프레임에 담았지만 세상에 내놓지는 못했다. 장 작가는 “제주에서 작업을 하는 작가들에 비교하면 부끄러울 정도”라며 “좋은 경험이 됐다”고 말했다. 사계교실은 그 스스로를 위한 ‘교실’도 되는 셈이다.

조용하게 꾸리는 작은 이벤트 역시 교실을 채우고 있다. 화순리를 시작으로 진행한 영정 사진 촬영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장비를 동원해 지역 어르신들의 숨은 얼굴을 찾아내고 있다. 같이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거나 옛 추억을 떠올리게 말을 건네거나 때로는 깜짝 장난까지 동원해 찾아낸 표정은 어르신은 물론이고 가족들의 마음까지 훔쳤다. “15일쯤 사계리 어르신 20여분과 같이 밥을 먹을 예정”이라는 장씨의 표정이 확하고 밝아진다.

“이제는 사람 때문에 떠날 수 없다”는 말에 신의와 애정이 묻어난다.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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