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 - 양조훈 육필기록] <121> 시행령 둘러싼 파동 ①

2000년 4월7일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4·3관련단체 및 시민사회단체 합동으로 열린 4·3특별법 시행령안 개악에 따른 긴급 기자회견. 이 항의 운동에 도내 33개 단체가 참여했다.

군사전문가·공무원 증원 국방부가 작용
진상조사 전문위원 '비상임 2명'으로 격하

시행령 둘러싼 파동 ①
"우리는 이번 정기국회에서 제정된 4·3특별법은 4·3 진상규명을 향한 도정에서 첫 단추만 꿰맨 것이지 어떠한 낙관도 금물이라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향후 진행될 여러 후속조치, 즉 시행령과 조례 등 관련 하위법령의 제정 및 법안에 명시된 진상규명특별위원회의 구성 등이 도민의 염원과 민족적 양심에 부응하여 '시급히' 그리고 '공정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꾸준히 감시하고 촉구할 과제가 주어져 있다고 우리는 판단한다.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특별법이 제정된 오늘을 4·3 진상규명을 위한 제2단계 투쟁의 시발점으로 삼고자 한다"

위의 내용은 4·3특별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던 1999년 12월16일 '4·3특별법 쟁취를 위한 연대회의' 등이 발표한 공동성명에 나오는 글이다. 4·3연대회의는 '특별법 제정은 제주도민의 위대한 승리'라고 평가하면서도 앞으로 있을 후속조치를 주시하고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시행령 제정을 위한 초안 작성에서부터 진상규명 기구 구성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가 험난한 산을 넘듯이 요동쳤다. 맨 먼저 닥친 문제가 '시행령 파동'이었다.

특별법 조문은 추상적이고 선언적인 내용이 주를 이룬다. 그 특별법 운용의 실질적인 내용은 시행령에서 구체적으로 담아낸다. 따라서 4·3특별법이 4·3의 진상을 어떤 방법으로 규명하고 희생자들의 명예를 어떤 형식으로 풀어갈 것인지, 그리고 위원회의 위상과 힘을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등 주요한 방향이 시행령에서 판가름 난다.

4·3특별법 부칙에는 '이 법은 공포 후 3개월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한다'는 규정이 있다. 4·3특별법은 2000년 1월12일 공포되었기 때문에 그해 4월13일부터 시행하게 됐다. 이렇게 특별법이 시행되기 위해서는 시행령 제정이 필요했다.

4·3특별법 시행령안 작성 작업은 행정자치부가 주도했다. 행자부 자치행정국 산하 특수정책담당이 실무 작업을 맡았다. 실무팀은 시행령 초안을 만들고 3월4일 입법예고했다. 3월23일까지 20일간 이에 따른 의견을 받았다.

이에 따라 4·3범국민위, 4·3도민연대, 4·3유족회 등 4·3관련단체와 제주시민사회단체협의회가 각각 의견서를 제출했다. 내용인즉 진상규명을 담당할 위원회나 진상조사보고서작성기획단의 구성이 너무 관 위주로 치우쳤다고 지적하고 "공무원 수를 줄이고 민간 전문가들의 참여 폭을 넓혀 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그런데 4월초 행자부가 법제처에 제출한 시행령 최종안은 이런 4·3진영의 의견이 깡그리 무시된 채 오히려 '개악'된 것으로 밝혀졌다. 즉 4·3위원회 위원 20명 구성안이 초안에는 장관급 공무원 8명으로 되어 있었으나, 최종안에는 한명이 더 늘어 9명으로 수정됐고, 여기에다 종전에 없었던 '군사(軍史)전문가'가 당연직으로 추가된 것이다. 덩달아 진상조사보고서작성기획단의 구성도 15명 중 간부 공무원 8명과 군사전문가가 포함되는 체제로 수정된 것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실질적으로 진상조사와 보고서 작성을 맡을 전문위원은 '비상임 2명'으로 격하시켰다. 한마디로 진상조사와 보고서 작성도 공무원 중심으로 추진하겠다는 의도가 다분히 내포돼 있었던 것이다. 누가 보더라도 국방부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됐음이 감지됐다.

여기에다 4·3진영을 분노하게 만든 것은 행자부의 의결안에 "시행령안 입법예고 결과, 특기사항이 없다"고 명시한 점이다. 4·3진영이 제기한 의견을  완전히 묵살해버린 것이다.

이에 4·3유족회, 4·3행방불명인유족회, 재경4·3유족회, 4·3범국민위, 4·3도민연대, 4·3연구소 등 6개 4·3관련단체가 4월5일 공동성명을 발표하고 "진상규명의 입법 취지에 맞도록 시행령을 만들어야 한다는 제주도내 4·3관련단체, 학계, 시민단체의 의견을 무시하고 잘못된 보고서를 작성한 책임자를 문책하라"고 주장했다. 또한 "정부의 시행령안이 도민의 의견에 반하는 내용으로 개악되도록 방치한 제주도 당국에도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고 성토했다.

4월6일에는 제주시민사회단체협의회가 잇따라 항의 성명을 발표했다. 또한 제16대 총선에 출마한 제주지역 여야 후보자 10명 전원의 공동 이름으로 "시행령안에 제주도민의 의견을 즉각 반영할 것을 촉구한다"는 내용의 성명이 발표됐다. 이날 4·3관련단체와 시민사회단체가 합동으로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고, 다음날인 4월7일에는 제주도내 33개 단체 대표의 기자회견이 개최되는 등 긴박하게 돌아갔다. 

☞다음회는 '시행령 둘러싼 파동' 제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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