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물 지경의 수련군락.

◈오빼미물·새미얏물·저가을물·새물(한경면 낙천리)

 한경면 낙천리로 간다.그곳에는 고향마을의 풍경이 있다.추수를 끝낸 들녘의 애잔한 그리움.오름 하나 돌아가면 옹기종기 모여있는 그림같은 마을.오후늦은 햇살,그래서 비껴 내리는 햇살에 금빛 억새가 출렁인다.

 낙천리 지명은 한자말인 ‘낙천(樂泉)’이 의미하듯 숲이 우거져 공기가 맑고 경치가 빼어나며,특히 물이 풍부해 사람 살기에 좋은 곳을 뜻한다고 한다.

 낙천리는 분지형의 마을이다.남쪽은 새신오름,북쪽은 판포악,동쪽은 저지악,서쪽은 당산봉 등 사방 5km이내에 각종 오름이 자리잡고 있다.

 또 낙천리의 중심은 ‘저가을물’이다.낙천리사무소옆에 자리잡고 있는 이 물은 해발 68m에 면적이 500㎡가량 된다.옛날에는 이 일대에 원시림이 울창하고 멧돼지가 떼를 지어 다니던 곳이라고 한다.

 근래에는 마을안길 확장 공사로 인해 면적이 크게 축소됐다.한때 우마급수장으로 활용됐었으나 최근에는 조경공사가 이뤄져 주민들의 쉼터로 자리매김되고 있다.

 새물은 4개의 연못으로 구분돼 있다.이 가운데 2개 연못은 수련으로 가득 차 있다.

 면적은 600㎡가량된다.수량이 풍부해 가장 안쪽의 못에서 넘친 물이 바깥 못을 채우는 식으로 자연스레 흘러간다.이 때문에 겨울의 낮은 하늘이 더욱 낮아져 만져질 것만 같은 분위기다.

 특히 못 주변은 성벽이 있는 대나무 밭이며 곳곳에 골풀군락이 형성돼 있다.성벽은 1920년께 쌓은 것이라고 한다.풍수지리설에 따르면 낙천리는 동강서약(東强西弱)의 형세를 취하고 있다.물도 상대적으로 지대가 낮은 서쪽지경으로 흘러 들어오기 때문에 마을 서쪽 새물주변의 ‘수덕’에 높이 3m,길이 40m의 성벽을 쌓게 됐다.

 못 입구에 서 있는 팽나무는 흔히 ‘새물 폭낭’이라 불리워지고 있고 수령이 500년이 넘은 것이라고 한다.

 나무가 수백년을 한 자리에서 건강하게 살았다면 그 터는 사람이 살아도 분명히 좋은 터다.

 나무 자체의 건강함도 이유이겠지만,수분·양분·공기에서 기(氣)의 흐름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지 않다면 이처럼 거목이 자랄 수 없다.

 낙천리에서 장수하는 노인을 많이 볼수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 아닐까.

 이곳에는 현재 수련·골풀군락을 비롯 마름·말·개기장·피막이·가막사리·빗자루국화·병풀·물방동사니·미나리·부들·사마귀풀 등 습생식물들의 영역싸움이 한창이다.

 또 인적이 뜸해 왜가리와 흰뺨검둥오리가 찾아온다.

 새미얏물은 알동(下洞)에 있다.못은 ‘외통운물’이라고 부르고 있는 음용수통을 비롯 3군데로 돼 있다.이곳에는 3백년 이상된 팽나무가 버티고 서 있고 외통운물 건너편의 못은 주로 우마급수장으로 활용됐다.

 150년전에 판 인공 못이며 면적은 1400㎡가량 된다.

 외통운물 주변은 한때 논 경작지로 자리잡았으나 80년대 중반이후 경제성을 잃어 근래에는 미나리와 가막사리가 자생한다.

 물풀의 왕은 창포.주민들은 창포를 ‘물새’라고 부르며 한때 거적을 만들 때 사용했었다고 한다.  

 이밖에도 여뀌·미꾸리낚시·어리연꽃·사마귀풀·소리쟁이·수련·네가래·골풀·피막이·가래·개구리밥·가막사리·한련초·빗자루국화·개기장·돌피·세모고랭이 등도 눈에 띈다.

 오빼미물은 ‘아홉굿물’이라고도 한다.특히 마음의 벽을 허물고 물 부족 현상을 극복하고자 했던 주민들의 노력이 가득 밴 곳이다.이 물은 1922년께 낙천리 뿐만아니라 조수·청수·저지 등 4개 마을 주민들이 공동작업을 통해 판 것이다.

 물통은 9군데로 구분돼 고여 있을 정도로 비교적 규모가 큰 못이었으며 가뭄때면 물수레로 장관을 이룰 정도였다.

 못 입구에 세워졌던 공덕비는 마을회관 앞으로 옮겨졌다.이 공덕비는 의관 김창오(議官 金昌五)와 훈장 김응석(訓長 金膺錫)의 공을 기린 것이다.

 못 바닥은 진흙이다.물빠짐이 거의 없다.지금도 수량이 풍부해 왜가리·논병아리 등이 찾아온다.

 농로확장으로 인해 못 면적은 600㎡로 예전보다 크게 축소됐다.인적도 뜸하다.

 그러나 근래에는 새들의 쉼터로 새로운 쓰임새를 찾은 셈이다.

 연말이다.춥다.넉넉해야 베푸는 것은 아니다.바닷가 백사장의 모래알은 따로 떨어져 있지 않고 함께 있기에 아름다운 것.그래야 외롭지 않고 그래야 허허롭지 않다는 것을.오빼미물은 서로 마음을 열고 의지하며 사는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보여주고 있다.<글=좌승훈·좌용철 기자·사진=조성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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