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경실련이 공천부적격자 명단을 전격 발표한 데 이어 국회의원별 국회본회의 출·결석현황을 발표했고 총선시민연대도 조만간 공천반대명단을 발표키로 하였다. 이에 더 나아가 시민단체들은 앞으로 부적격자 국회의원후보들에 대한 낙선(落選)운동 또는 적격자 당선운동을 전개할 것을 천명하고 나섰다. 대학의 총학생회에서도 시민단체들의 움직임에 적극 가세할 뜻을 밝혔다. 87년 6월 민주항쟁이 군사독재를 종식시켰듯이 시민단체들로부터 시작된 이러한 집합적 운동은 시민불복종운동으로 전개될 양상이다.

낙천(落薦), 낙선운동을 두고 정치권에서는 시민단체가 선거법(제58조와 제87조)을 위반하고 있다고 연일 비난하다가 국민들이 시민단체의 발표에 뜨거운 지지를 보내자 문제의 선거법 조항을 손질하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얼마후면 선거법이 낙천·낙선운동의 합법성을 보장하는 쪽으로 바뀌게 될 가능성이 크다. 이같은 일련의 상황들은 우리들로 하여금 시민운동단체가 왜 이 시점에서 이 운동을 전개하고 있는가, 그 메시지는 무엇인가에 대해 성찰해볼 것을 요구한다.

수많은 사회조사가 밝히고 있듯이 우리나라 정치권은 부정부패, 이기주의의 온상으로 각인되고 있으며, 시대와 민의의 흐름을 바르게 읽어내기는 커녕 시계의 바늘을 거꾸로 돌리고 있는 반역사적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온갖 수사(修辭)로 국민과 국가를 외치고 있지만 행동으로는 국민과 국가는 안중에도 없다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이다. 무릇 정치는 국민복리를 추구하고 국가와 사회의 공통의 보편적 목표를 설정하며 사회통합을 견인하는 기능을 갖는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정치권은 이 기능을 다하는 데 힘을 쏟기는커녕, 개인적, 당파적 이익에만 골몰하고 있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 그래서 국회와 정치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과 분노가 관용한계를 넘어서고 있는 것이다. 시민단체는 이같은 국민의 여망과 목소리에 힘입어 칼의 힘이 아닌 논리의 힘으로, 개인의 무력함이 아닌 시민과 집단의 힘으로 정치 바꾸기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시민단체 움직임이 실질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중에는 우려의 목소리가 없지 않을 것이다. 혹시 시민단체가 단순히 국민들의 이목을 끌기 위한 책략은 아닌지, 또 하나의 정치세력화를 꿈꾸는 이름만 바꾼 정치지향성의 얼굴은 아닌지 하는 것들이 그것이다. 있을지도 모를 이러한 우려와 염려를 불식시키기 위해서 시민단체는 목적의 순수성, 정보와 자료의 정확성, 낙천·낙선자 가리기의 객관성, 사고와 판단의 합리성 등의 전제를 시종 견지할 필요가 있다. 이런 것들이 최대한 유지되어야 또 하나의 자의성과 독선을 극복할 수 있다. 이의 준수여부는 향후 시민단체의 성패를 결정하는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이런 전제가 지켜진다면 국민은 앞으로도 시민단체를 지지하는 데 주저함이 없을 것이다. 시민단체가 시민의 힘으로 정치를 바꾸고자 하고 있고, 그 움직임이 바른 길로 가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민단체는 그동안 사회의 각 방면, 특히 정치부문에 대해 감시자의 역할을 해왔고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데 상당히 성공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민단체는 자신들을 눈여겨보는 감시자로서의 국민의 시선이 또한 있음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시민단체가 스스로를 주목해야 하고, 국민들이 시민단체들을 주목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할 것이다. <김진영·제주대교수·사회학><<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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