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 - 양조훈 육필기록] 시행령 둘러싼 파동 ③

2000년 4월22일 제주시청 어울림마당에서 열린 4·3특별법 시행령 개악 저지를 위한 궐기대회. 참여단체의 깃발들도 휘날렸다.

장정언 일행 항의방문 최장관이 수정약속
위원회·조사인력 대폭 수정…시행령 공포

시행령 둘러싼 파동 ③
2000년 4월22일 제주시청 어울림마당에서 4·3특별법 시행령 개악 저지를 위한 범도민 궐기대회가 열렸다. 제주도내 33개 4·3관련단체 및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공동대책회의가 주최한 이 대회에는 4·3유족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등 50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대회는 대통령에게 드리는 호소문, 도민에게 드리는 글 낭독과 결의문 채택 순으로 진행됐다. 대통령에게 드리는 호소문을 통해 "김대중 대통령이 지난 1월11일 청와대에서 있었던 4·3특별법 서명식에서 '4·3특별법은 인권이 그 어느 가치보다 우선되는 사회, 도도히 흐르는 민주화의 도정에 금자탑이 될 것이며, 법 제정의 본래 취지가 잘 반영될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특별히 당부했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상기시켰다. 그리고 "4·3 희생자 문제는 미군정시대, 제1공화국 탄생의 혼란기에 빚어진 사건인데, 그 역사적인 과거문제를 현재 진행형인양 지금의 국방부가 떠맡으려는 저의를 이해할 수 없다"고 전제하고 "이 문제를 풀어줄 분은 대통령이라는 절박한 생각에서 호소문을 올리게 됐다"고 밝혔다.

또한 제주도내 시민사회단체들은 결의문을 통해서 "4·3진상규명과 명예회복에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는 위원회와 기획단에 군사전문가를 참여토록 하려는 것은 4·3특별법 정신을 훼손하고 역사적 대업을 그르치려는 세력의 음해와 방해로 규정한다"고 못박고 "올바른 시행령 제정을 위해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런 제주사회의 동향에 청와대와 여권도 긴밀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행자부의 결정적인 입장 선회는 4월24일 민주당 추미애 의원과 장정언·고진부 국회의원 당선자의 행자부 항의 방문이 기폭제가 됐다. 추 의원은 4·3특별법 입법을 발의한 당사자로, 두 당선자는 제주지역 출신 여당 국회의원 당선자의 신분으로 행자부장관을 찾아간 것이다. 당시 상황을 장정언씨로부터 들어본다.

"국무회의에 시행령을 상정한다는 바로 전날 세사람이 절박한 심정으로 수정안을 들고 행자부장관실로 찾아갔습니다. 사전에 방문 예고를 했는데도 최인기 장관은 부재중이었고, 차관보와 국장급 간부 몇명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왠지 분통이 터졌습니다. 제가 큰소리로 언성을 높이는 상황이 되더군요. 오히려 추 의원이 '이 분은 제주도의회 의장까지 지낸 분인데, 오죽하면 언성을 높이겠느냐'면서 다독거리기도 했지요. 저는 국회가 개원되면 가만있지 않겠다고 분명한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리고 김포공항에 거의 다다를 무렵 최인기 장관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수정 의견을 그대로 반영하겠다고 하더군요"

이같은 최 장관의 약속으로 그동안 논란이 됐던 내용들이 거의 수정됐다. 첫째 위원회에 장관급 1명을 추가하는 방안이 취소됐고, '군사전문가'는 '관련전문가'로 수정됐다. 둘째 기획단 15명 중 간부 공무원은 5명으로 대폭 축소됐다. 셋째 위원회의 사무처리를 위한 간사(지원단장)를 거창사건심의위원회 간사와 겸직하도록 한 규정을 삭제, 4·3위원회 간사를 별도로 두도록 했다. 넷째 당초 시행령에 조사 인력을 '2인 이내의 비상임 전문위원'을 두도록 했던 것을 '약간인의 전문위원을 계약직 공무원'으로 두는 것으로 수정하되, 시행세칙 등을 통해 전문위원 5명과 보좌 조사인력 20명을 채용하는 것으로 정리됐다.

위원회와 기획단, 조사인력 등 핵심적인 인적 구성이 관 주도 성격에서 상당 부분 민간인 쪽으로 이동됐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비상임 전문위원 2명'으로 설정함으로써 진상조사와 보고서 작성도 공무원들이 주도하겠다는 것이냐는 우려를 불러일으켰던 조사인력이 상근 전문위원 5명과 조사요원 20명 채용으로 바뀐 것은 획기적인 조치가 아닐 수 없었다. 이런 수정안이 반영되면서 당초 4월25일 국무회의에 상정하려던 4·3특별법 시행령 심의는 다시 연기됐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은 4·3특별법 시행령은 5월2일 최종 확정됐다. 이날 김대중 대통령 주재로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시행령은 16개 조항과 부칙으로 이뤄졌다. 정부는 5월10일 4·3특별법 시행령을 대통령령 제16803호로 제정 공포함으로써 제주4·3특별법이 실질적인 시행에 들어가게 됐다. 시행령 안 파동으로 당초 시행 예상일보다 한 달 가량 늦어진 것이다.

4·3특별법 제정 이후 시행령 파동이 제1막이었다면 이제 제2막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위원회와 기획단, 조사 인력 등 인적 구성의 문제였다. 여기에서도 여러 차례 회오리가 몰아쳤다.

☞다음 회는 '4·3위원회 구성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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