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4·3평화공원·기념관, 제주4·3 64주년 되새기는 공간으로
제민일보 4·3보도기획전, 사진·미술·시화전 등 학습 효과 커

수급불류월(水急不流月). '급히 흐르는 여울이라도 그 속에 비친 달은 떠내려가게 하지 못한다'고 했다. 제주4·3을 바라보는 세상의 시각도 그러한 것 같다. 60년 넘게 시간이 흘렀고 정권도 몇 번을 바뀌었으니 과거 불편했던 기억들을 내려놓는 것이 어떻겠냐고. 하지만 그렇게는 못한다. 아직 해원하지 못한 이들이 남았고,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화해와 상생'이란 단어의 답도 아직 찾지 못했다. 그렇다고 잊을 수는 없다. 제주4·3평화공원과 평화기념관이 4·3과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의 문'으로 제주 섬에서 벌어졌던 비극적 사실을 공유하고 다독일 수 있는 자리로 안내한다.

# 살아 숨 쉬는 역사문화전시장

4·3평화공원에 대한 거리감이 조금씩 좁아지는 만큼 '제주4·3'역시 가까워지고 있다. 제주4·3 제64주기를 기념하는 행사들이 제주도 곳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글과 그림, 영상, 보도 기록을 담은 전시가 한 곳, 4·3평화공원·평화기념관(이하 공원, 기념관)을 채운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그래서 가슴 시리도록 슬픈 제주의 4월을 알기 원하는 이들에게는 천금과 같은 기회다.

가장 먼저 테이프를 끊는 것은 ㈔탐라사진가협회(회장 이병철·이하 탐사협)이다. 탐사협은 기념관 기획전시실에서 '4·3 후유 장애인들의 아픔을 다시 듣다'와 야외전시실 '4·3 남겨진 자들의 슬픔'주제 전시를 동시에 전개한다.

제주4·3의 실질적인 피해자인 이들 후유장애인과 유족들의 흔적에는 '살아있는 동안'이란 조급함이 맺혀있다. 너무도 아파고 끔찍했던 기억들에 그냥 다물어버린 입을 열고, 오랜 시간 숨겼던 상처를 꺼내게 하는 과정은 말로 다 헤아릴 수 없다. 이들 전시의 키워드는 '다시'. 적어도 몇 번을 들춰냈던 상처는 아직 아물지 않았다. 사각 프레임 안 시간은 아직도 60여 년 전 그 때에 멈춰있다. 그들의 몸에는 여전히 '4·3'이 각인돼 있다. 과거에 대한 인정 없이 그저 '희생자 신고서'가 부실하고, '불인정 판정'이란 불편한 사각 도장으로 남아있는 이들의 현실은 아직 다 풀지 못한 그것과 맞닿아 있다. 전시문의=010-5697-1839.

▲ 제민일보 4.3보도기획전 모습.
# 문화예술의 사회적 책무

시대를 더듬어 살펴보면 차마 드러내지 못한 역사적 사실을 세상에 드러내는데 반드시 '문화예술'이 있었다.

파블로 피카소의 '게르니카'는 공포와 처형, 보복의 무대로 이념의 (狂氣)가 점철된 스페인 내전(La Guerra Civil Espanola·1936~39)의 참상과 비극을 담고 있는 대작이다. 지난해 영화와 함께 번역본이 국내에 출간되며 화제를 모았던 프랑스 작가 타티아나 드 로즈네이의 「사라의 열쇠」는 그동안 역사가 외면해온 '프랑스 유대인 집단 체포사건'을 다루며 적잖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제주4·3'이란 이름을 위해 붓을 잡았던 이들의 전시 역시 공원과 전시관에서 펼쳐진다.

㈔탐라미술인협회(회장 송맹석)의 제19회 4·3미술제는 어딘지 부산스럽다. 요란스럽게 법석을 떠는 모양새가 아니라 달그락 숟가락 부딪히는 소리며 벅벅 낭푼 바닥을 긁는 소리 같은 삶의 더께가 금방이라도 털털 떨어져 내릴 것 같은 모양새다. 그래서 주제가 '식구(食口)'다. 기존 작품과 새로운 작품을 아울러 4월 1일부터 30일까지 기념관 2층 전시실을 채운다.

끼니를 같이 하는 사람들은 단순한 가족 이상의 끈끈한 것들로 맺어져 있다. 선거 때면 고개를 드는 혈연·지연·학연이 아니라 생각만으로도 배가 부른 밥연(緣)이다. 목숨줄이라도 붙들 요량에 저절로 손을 잡았고, "살다 보민 살아진다"는 말에 슬픔이며 고통, 억울함 따위로 꽉 막힌 목구멍 깊숙이 곡기를 밀어 넣었다. '4·3'이란 필터를 통해 들여다본 식구들의 톤 낮은 귀엣말을 따라 몸을 기울여도 무방하다. 식구라는 카테고리 안에 다시 '트라우마' 같은 소주제로 무리가 지어지고 새로 출품되는 작품을 위해 전시 공간을 내주는 살아있는 전시로 눈길을 끈다. 전시문의=010-2886-3850.

제주작가회의(회장 김창집)의 '사색의 우물'을 마르지 않는다. 4·3과 제주어를 관통하면서 그 깊이가 더해지고 그만큼 농익은 감정 선에 저절로 가슴이 떨린다. 이맘 때 공원 정문 '시간의 벽'전시공간에서 자리를 만들고 한해를 마무리할 때 까지 공원·기념관을 찾은 이들에게 '제주4·3'을 알리는 일을 올해라고 쉴 리 만무하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기억의 조각들이 알알이 글자가 되어 뇌리에 박힌다.

▲ 정용성 작 ‘두건쓰는 사람’
# '기록'으로 그날을 기억하다

다랑쉬굴 유해 발굴 20주년을 맞는 올해 4·3 행사들에선 유독 '강요된 침묵'에 대한 증언이 잇따르고 있다. 굿의 사설처럼 속엣 것을 주절주절 풀어내면서 조금씩 후련해지는 표정을 한다. 기록도 마찬가지다. 그들의 목소리를 활자로 남겼고, 그 기록들은 거센 물살에도 흔들림 없는 달그림자처럼 시대를 지킨다.

살아있으나, 또는 살아있었으나 역사 속에 존재하지 않았을 기억을 사실로 확인하고 세상에 알리는 언론의 시대적 소명을 확인하는 자리가 공원 야외전시장 북쪽 타임캡슐 주변에서 진행된다.

지난해 실내 전시에 이어 올해 야외 전시로 만나게 되는 '제주4·3보도기획전'이다.

'4·3을 말한다' 등 그동안 제민일보가 진행해온 제주 4·3기획보도와 관련 기사들을 추려 한꺼번에 '64년'이란 시간을 만날 수 있는 특별한 자리로 의미가 있다. '역사'라는 포장 아래 떠돌던 '망자(亡子)'의 존재가 신문을 통해 드러났다. 구천을 맴돌던 희생자들에게 '존재'를 확인하는 것만큼 진정한 구원은 없다. 다시 듣고, 다시 묻는다. 그렇게 역사는 계속된다. 전시문의=741-3111. 고 미 기자 popmee@jemin.com

30·4월1일 4·3행사

▲30일
△제주4·3 사진전-4·3평화기념관

▲4월1일
△제64주기 4·3해원 방사탑제-오전 10시 제주시 신산공원
△어린이 4·3이야기 한마당-오후 1시 4·3평화기념관
△제19회 4·3미술제-4·3평화기념관
△제주4·3보도기획전-4·3평화공원
△제주4·3 64주년 추념 시화전-4·3평화공원
△거리전시전-제주시청광장 일대
△전야제사전 거리홍보공연-오후 5시 제주시청 어울림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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