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을 기리는 오키나와에서] <상>

   
 
  재일의 대표적 시인 김시종이 「잃어버린 계절」특별강연에서 4·3의 소용돌이 속에 일본으로 떠나야했던 시인의 가슴찬 4·3체험과 시를 낭독하고 있다.  
 
1.
하늘거리는 부겐베리아를 오키나와인들은 사랑합니다. 제주섬 협죽도의 붉은 색과 닮은, 언젠가 지중해에서 만났던 꽃. 이 꽃의 계절, 올해도 제주4·3추모의 시작은 저 일본열도의 남단 오키나와에서 시작됩니다. 지난달 24일 오키나와 나하시 교육복지회관에서 열린 2012년 '제주4·3을 기리는 오키나와 집회'. 오키나와·제주도평화교류 실행위원회가 주최한 이날 행사는 '김시종의 「잃어버린 계절」 특별공연과 기도'란 제목으로 진행됐습니다.

 제주바람처럼 남쪽의 바람은 역시 비린내를 풍깁니다. 왜 이 섬에서 제주4·3 기도의 집회가 마련되는건가요. 아름다운 자연의 배경 속에 숨막히는 아픔을 감추고 사는 이 섬의 슬픈 역사와 제주도는 닮았습니다. 아시아 태평양전쟁 막바지 1945년 3월 26일, 미군과 일본 사이에 벌어진 최대 규모 전투 오키나와 전쟁. '현대사 최대비극'이라 할만한 오키나와전과 제주4·3. 이로인해 희생된 오키나와 20만의 죽음. 미군정기, 해방과 분단의 과정에서 국가권력에 의해 무고하게 희생된 제주사람 3만의 죽음. 하여 청옥빛 바다와 아름다운 절경 곳곳에 숨겨진 학살의 흔적이 닮았으며, 미군기지문제가 심각한 오키나와와 강정해군기지로 몸서리치는 지금의 제주도는 너무나 닮았습니다.

 이 제주의 4월을 기리는 일은 헌신적인 일본인들이 있어섭니다. 4·3을 알고나서 행동할 수밖에 없었다던 평화운동가 오사카의 일본인 나가타 이사무(오키나와 제주4·3 한라산회 고문), 오키나와의 우미세토 유타카(오키나와 '한라산회' 회장) 등이 주축이 된 이 행사는 올해로 세 번째. 그들, 2008년부터 매년 4월3일이면 제주를 찾아와 유적지 답사와 각종 추모행사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그들은 제주4·3을 찾습니다.

   
 
  오키나와의 대표적 가수이며 제주 4·3 한라산회 회장인 우미세토 유타카(왼쪽)가 노래를 하고 있다.  
 
2.
오키나와의 대표적 가수이며 제주 4·3 한라산회 회장인 우미세토 유타카의 노래가 울려퍼졌습니다. 제주에서 열리는 4·3무대에 오르기도 했던 유타카는 이날 오키나와 미군기지를 반대하며 시위할 때 부르던 노래와 고향의 노래를 애절하고도 호소력있게 불러 박수를 받았습니다. 그는 "오키나와엔 조왕에 고하는 의례를 한다. 이곳 젊은이들은 많이 떠나지만 어디가든지 제 고향을 잊은 바는 없었다"했습니다. 그리고 "오키나와 미군 점령을 반대하고 또한 4·3의 역사를 가진 제주도에 평화가 오기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그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오광현 오사카 4·3유족회장(왼쪽)과 김시종 시인(오른쪽).  
 
초청받아 참석한 재일동포 2세 오광현 오사카 4·3유족회장. "나는 4·3현장에 없었다. 부모님이 일본에 계셨기 때문에. 그런데 아버지는 셋아버지 제삿날에 울고 있었다"고 말문을 연 그는 "아버지도 4·3의 당사자이며 증거다. 이것이 재일동포의 현실"이라고 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셋아버지가 4·3사건 때문에 돌아가신 것을 알았다는 그가 처음 제주도에 왔을 때였던 1982년. "작은 아버지앞에서 어쩔수 없이 종교는 자유지만 사상은 자유가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 가슴을 쓸어내린 적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오키나와에서 제주도를 떠올렸습니다. "오키나와도 제주도도 관광객들이 많습니다. 제주도는 평화의 섬이면서 편하게 쉴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오키나와 미군기지 문제가 오랫동안 심각해 있는데 제주도 해군기지 문제라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평화는 지키는 게 아니라 창조하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오키나와에 와서 이 자리에서 평화를 생각하고 싶습니다. 같이 평화를 창조합시다."

3.
"사월이여, 먼 날이여" 노시인은  떨리는 음성으로 사월시를 읊어나갔습니다. 재일의 대표적 시인 김시종. 지난해 한국인 최초 대표적인 일본문학상인 다카미준상을 수상한 시집의 제목을 딴 「잃어버린 계절」 특별강연에서 그는 4·3의 소용돌이 속에 일본으로 떠나야했던 가슴찬 4·3체험을 어렵게 꺼냈습니다.
1시간 동안의 강연에서 그는 "늦은 감은 있지만 늦은 의식을 치르는 것 같다. 운좋게 도망간 자신이 50년 만에 겨우 고향을 땅을 밟았고, 이후 굿의식을 치르며 풀었다"며 통한의 세월에 대해 회상했지요. "제나라 뺏길 때도, 돌아올 때도 아무 관여없었던 내가 뉘우쳐 우리나라 운명에 참여했던" 소년 김시종은 그로인해 가장 큰 회한인 외숙부의 처참한 죽음을 들어야했습니다. 시인은 "앎의 의식이 중요한 것. 지식을 개인화 시키지 말고 시민 집회 등을 통해 지식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뇌리에서 잊혀지지 않는 중산간 퉁퉁불은 시신들, 지금도 악몽을 꾼다는 시인은 이젠 관광지가 돼서 그 냄새들이 없어졌지만 제주 4·3은 3만의 학살 그 이상일 것이라고 봤습니다. 미군정하 빨갱이 섬이 된 제주도. 오키나와 미군기지 문제가 있지만, "제주 4·3은 미군정의 책임이 크며 죄악"이라고 했습니다.

4.    

   
 
  제주민요를 부르는 안복자 명창(왼쪽)과 무용가 김희숙의 살풀이.  
 
추모공연. 하얀 고깔을 쓰고 나온 무용가 김희숙(제주아카데미원장)은 살풀이로 영혼들을 위로했습니다. 한편 1477년 제주의 김비의 등이 표류를 기념한 제주도와 요나구니 표류기념 평화교류도 같은 무대에 올려졌습니다.

 제주 민요를 맛깔나게 불러 박수세례를 받은 안복자 명창은 이날 "요나구니 사람들 만나게 한 것은 나가타 이사무씨가 해주었습니다. 1477년 제주도 사람들이 탄 배가 난파되어 요나구니 섬에 표류, 죽을 수 밖에 없던 운명에 처한 제주인들을 구해준 이들이 요나구니분들입니다. 때문에 제주도가 빚을 진 것"이라며 고마움을 전했습니다. 이밖에도 이광훈(애송국학원원장)의 매력적인 대금 선율이 가슴을 적셨습니다.

 타인의 고통이 아니었습니다. 옛 제주인들이 표류하다 닿던 섬, 오키나와. 오키나와 섬을 휘도는 바람은 차가웠지만 제주4·3과 오키나와 전쟁을 기억하게 하는 평화 염원의 노래는 절절하게 하나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오키나와=허영선(시인/전 제민일보 편집부국장) / ysun641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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