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 - 양조훈 육필기록] <128> 국외 자료 조사 활동

2001년 9월 러시아 국방성 중앙문서보관소를 방문한 조사팀. 왼쪽부터 해외 전문위원으로 위촉한 바르타노프 부소장, 김한욱 지원단장이며, 맨 오른쪽이 박찬식 전문위원.
6개월간 NARA에서 미국자료 집중 조사
해외자료 입수에 현지 전문가들도 활용

국외 자료 조사 활동
국외 자료 조사는 미국, 러시아, 일본 등 3개국을 대상으로 실시됐다. 이들 나라에는 진상조사팀이 직접 출장을 가 조사활동을 폈다. 이때 현지 전문가들을 '해외 전문위원'으로 위촉하여 공동 조사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국외 조사에서 비중을 둔 나라는 역시 미국이었다. 4·3이 미군정 시기에 발생했기 때문이다.

미국 자료 조사는 먼저 국내에 들어온 미국 자료 중 4·3 관련 자료를 발췌, 분석한 다음 조사팀을 미국에 파견하는 수순을 밟았다. 미국에 파견할 조사팀은 제주도와 공동으로 전문위원 3명(장준갑·김창후·양정심)으로 구성됐다. 미국에서의 자료 조사는 2001년 3월부터 두차례에 걸쳐 총 6개월 동안 진행됐다.

자료를 검색한 미국의 주요 문서기관은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NARA), 맥아더기념관, 미 육군군사연구소 등이었다. 미국 자료의 총본산인 NARA는 주미한국대사관의 외교 루트를 통해 협조를 요청한 결과 4·3 조사팀을 위한 전용 테이블을 제공해주었다. 이곳에서 4·3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미국자료 800여건을 발췌, 입수했다.

수집 자료 중에는 미 24군단 작전참모부 작전일지, 미 CIC 자료, 무쵸 대사 보고서, 미 군사고문단장 로버츠 준장 공한철, 20연대장 브라운 대령과 군단 작전참모부 슈 중령의 제주 활동 보고서, 제주에서의 미군정 수뇌회의 참석자 사진 등 새로운 자료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눈길을 끄는 비밀문서는 로버츠 고문단장과 한국군 수뇌부 간에 오고간 공적인 편지였다. 

로버츠 장군은 1948년 12월18일 한국 국방장관 등에게 "(제주도 사령관) 송요찬 연대장이 대단한 지휘력을 발휘했다. 이런 사실을 신문과 방송, 대통령 성명 등에 의하여 대대적으로 선전해야 할 것"이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채병덕 참모총장은 12월21일 "귀하의 제안에 따라 대통령 성명을 발표하도록 추천할 것이며, 송요찬에게 적절한 훈장을 수여하겠다"고 화답했다.

그 시기가 언제인가. 바로 제주도에서 초토화작전의 감행으로 피비린내 나는 유혈사태가 벌어지던 때가 아닌가. 이같은 비밀문서 등을 통해 초토화작전이 미군 수뇌부와 무관하지 않음을 밝혀냈다.

조사 과정에서 4·3과 관련이 있는 28건의 비밀문서로 묶여 있는 목록을 발견했다. 이에 주미한국대사관을 통해 미 육군부 정보보안사령부 등에 비밀해제를 요청했다. 그러나 미국 측은 "해당문서 목록만 있고, 문서는 보유하지 않고 있다"는 회신을 해왔다. 매우 아쉬웠던 대목이다.

어쨌든 여러 경로를 통해 입수한 4·3 관련 미국 자료는 복사한 분량만도 1만 페이지가 넘는 방대한 양이었다. 나중에 입수한 자료를 정리해서 「제주4·3사건자료집」 12권을 펴냈는데, 그 중 5권이 미국자료 편이다. 이 자료들은 미군이 4·3의 실상을 얼마나 잘 알고 있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러시아 자료 조사는 특히 긴밀한 외교루트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이를 위해 김한욱 지원단장이 직접 나섰고, 박찬식 전문위원과 러시아 현대사 전문가인 전현수 교수(경북대)가 조사팀으로 나섰다.

이 조사팀은 러시아 연방기록관리청·대외정책문서보관소·현대사문서보관센터·국방성중앙문서보관소·국립사회정치사문서보관소·국립문서보관소 등 6개 기관에 사전에 공한을 보내 협조를 요청한 뒤 직접 해당 기관을 방문해 자료를 검색하는 절차를 밟았다.

그 결과 '1948년 4월 남조선 정보보고', '남조선 선거 관련 정보보고', '남조선에서의 빨치산 운동에 대한 조사보고' 등 19건의 관련 자료를 입수하였다. 그런데 4·3에 관한 직접적인 자료는 찾지 못했다. 주로 해방 공간의 남한 정세에 관한 자료들이었다.

일본 자료 조사는 필자와 김종민 전문위원이 맡아 3차례에 걸쳐 증언조사와 병행해 실시했다. 이 조사를 통해 '4·3사건을 생각하는 모임' 등 재일동포 4·3연구단체에서 발간한 자료와 일본인 연구자들이 발표한 4·3 관련자료 등 일본어로 쓰인 자료 92건을 입수했다.

앞에서 언급했지만, 국외 자료의 효율적인 발굴을 위해 현지 전문가들을 해외 전문위원으로 위촉해 활용했다. 미국 현지 전문가로는 후지야 가와시마 교수(보울링그린 주립대)와 박명림 박사(하버드대 연구원), 일본 현지 전문가로는 문경수 교수(리츠메이칸대), 러시아 현지 전문가로는 바르타노프 부소장(국방성 중앙문서보관소)이 참여했다.  

한편 해외 과거청산 역사 규명에 대한 사례를 참고하기 위해 외국 진상조사보고서를 입수해 분석했다. 즉 대만 2·28사건 연구보고서, 아르헨티나 국가실종자위원회 조사보고서, 남아프리카공화국 진실과 화해위원회 조사보고서, 스페인 과거사 진상조사보고서 등이 그 대상이었다. 

☞다음회는 '체험자 증언조사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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