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깨비공원관장·들꽃작가 강혜경

23년차 섬 사람…2007년 사별 위기에도 ‘제주 살이’ 선택

풍요로운 자연과 건강한 아이들 위한 작품·사업 등 진행중

 

그에게 제주는 ‘소리’다. 바람 소리며 파도 소리며 자연 속 지천인 소리들 때문에 ‘문화’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강 작가는 “세세하고 작은 것에 흔들리면 견디기 어려운 것이 섬에서의 생활”이라며 “흔히들 말하는 제주 사람들의 무심함이란 특성은 이런 것에서 만들어진 것 같다”고 귀띔했다. ‘살았다’고 인지하고 있는 것들 중 행복했던 시간의 대부분을 보낸 곳을 떠날 수 없었다는 말까지 그의 제주가 궁금해진다.

 

# 낮춰 바라본 것들 서 제주 찾아

도깨비공원·이강도예 대표, 들꽃 공예 작가. 벌써 23년째 제주에서 작업을 하고 있는 강혜경 작가에게 “왜 제주가 좋으냐”고 묻는 것은 사실 바보 같은 일이다. 섬에서 나고 자란 사람만큼 바람을 읽고 주변의 것들과 눈을 맞추는 이다.

제주대학교에 교편을 잡은 남편을 따라 섬에 왔을 때만 해도 30대 초반 그저 주변의 모든 것이 좋아만 보였다. 그동안의 장미 작업을 계속해 이어가며 2001년 서울 인사동에서 장미를 테마로 한 첫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화려함과 우아함의 대명사에 몰입해 있던 그의 눈을 끈 것은 다름 아닌 섬 땅 지천인 들꽃이었다. 이름 따위는 사치일 정도로 바람을 타고 피고 지기를 반복하는 것들, 밟히고 짓눌리면서도 다시 꼿꼿이 허리를 세우는 것들이 눈에 밟혔다. 그 다양함에 작가적 욕심이 발동했다. 들꽃으로 시작한 눈맞춤은 오름 그리고 사람으로 이어졌다.

일반적으로 제주를 찾은 이들이 경치에 취하고 사람과 부대낀 뒤 들꽃처럼 작은 것들을 찾아가는 것과는 사뭇 다른 걸음이다.

그래서 왜 들꽃인지를 물었다. 강 작가는 “쪼그리고 앉아야 볼 수 있는 것들에 제주의 모든 게 담겨있었다”고 말했다. 스쳐보는 것이 아니라 자세히 들여다봐야 속의 것을 내주는 것들이다. 사람들의 기억에 있는 아름다운 풍광 속에서는 크게 도드라지지 않지만 큰 바람이 불거나 비가 내리고 난 뒤 강한 생명력으로 빛나는 것이다. 더군다나 소송 과정을 거쳐 결과물이 나오기까지 성급하게 답을 내릴 수 없는 것까지 섬을 닮았다.

 

# 들꽃 이어 ‘어린이’에 관심

 

“왜 제주냐”는 우문(愚問)을 재차 던진다. 지난 2007년 갑작스럽게 남편을 잃은 그는 지금껏 섬에 남아있다. 아니 떠날 계획이 없다.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행복했던 시간이 전부 제주에 있었다”는 말에 더 이상 질문을 이어갈 수 없다. 쉬웠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최선을 다했고 또 다하고 있다. 할 줄 아는 것이라곤 흙을 만지는 것이 전부인 그에게 턱하고 두 아들을 키우며 또 관광시설을 운영하는 일까지 맡겨진 상황이 행복했을 리 만무하다. 당시 경황이 없었다는 설명은 “그래도 제주가 좋았다”라는 말로 들린다. 계속된 시설 업그레이드며 재투자며 정신이 없는 와중에 작품 활동 역시 꾸준히 이어갔다. 점점 작고 얇아지는 꽃잎은 그를 통해 위안을 받고자하는 마음과 엇갈려 다가온다.

그런 와중에 그의 마음을 뺏은 것은 다름 아닌 아이들이다. 직접 아이를 키운 엄마이기도 하지만 시설을 찾은 아이들과 만나며, 그리고 우연히 알게 된 다문화가정 아이들까지 소담스럽게 쌓였다. 그리고 그것 역시 작품으로 옮겨졌다. 지난해는 제주특별자치도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행복만들기’협약식을 갖고 문화소외 어린이들을 위한 문화 나눔과 그를 통한 이웃 사랑 실천의 뜻을 알리기도 했다.

그는 11일까지 도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 꼬박 10년만의 제주 개인전을 진행하고 있다. 다음 전시는 아이들과 몸짓을 담아내는 작업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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