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심각한 어려움이 우리 사회를 강타하고 있다. 기업, 공공, 노사, 금융 등 모든 부분에서 심각한 위기가 나타나고 있다. 아니 위기 자체가 남미식으로 구조화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수많은 실업자들이 노숙자로 자리를 잡는 모습도 볼 수 있다. 이러한 위기의 진정한 원인은 과연 무엇인가? 그것은 아마도 세계화와 개방화, 부정부패, 정치권의 봉건적인 행태, 사회적으로 만연한 도덕적 해이일 것이다.

 이와 같은 상황은 개선되어야 한다. 이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현실개선 능력을 더욱 강하게 길러야 한다. 다음은 그것을 사회적으로 확산시키고, 동시에 그것을 정치적으로 묶어 세우는 일을 추진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래서 정부의 선택능력은 중요하고, 동시에 선택된 정부는 실패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노력해야 한다. 그렇다. 정부의 선택능력은 참으로 중요한 능력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정치권은 과연 국민의 선택을 받을 수 있을 만큼 노력하고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나의 대답이다.

 그리고 위기의 또 한가지의 원인은 세계화되고 개방화된 현실이 우리에게 강요하는 현실 규정력이 너무 강하다는 것이다. 세계화라고 하는 것이 사람들 사이의 교류와 커뮤니케이션만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세계화가 심각한 빈부격차를 낳고, 심리적 격차를 늘리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은 아예 세계화라는 변화 자체를 반대한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금융자본이 주도하는 20:80의 세계화 대신, 과연 좋은 세계화는 불가능한 것인가?

 오늘은 2001년 1월 1일 새아침, 새로운 세기가 시작되는 첫날이다. '세기'라는 것은 살아있는 개인에게는 가장 긴 시간 단위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작년에 새로운 '천년대(millenium)'를 맞이했다. 천년 단위는 문명의 단위이다. 문명은 여러 세대에 걸쳐 이루어지고, 아울러 다양한 사회의 교류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인 만큼 계획적으로 조성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의미있는 실천단위로는 '세기'가 가장 긴 것이다. 그러나 오늘 하루도 여전히 어제처럼 쉽게 지나가는 날이 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늘 이상과 함께 실천을 이야기해야 한다. 그런데 구상과 토론을 나누는 천년 단위와 실천을 계획하는 세기 단위를 혼돈을 극복하는 것은 쉽지 않다. 천년 단위의 변화에 걸맞는 이야기는 세기적 변화의 시대에는 걸맞지 않다. 그리고 지난 1년간 우리는 허황과 좌절을 동시에 경험했다. 정부에서는 너무나 과감하게 IMF를 극복했다는 선언을 했고, 동시에 우리는 얼마나 실망과 좌절을 경험해야만 했던가? 사실 실패하지 않는 정부의 정책능력을 보고 싶은 것이 우리 모두의 희망이기도 하다.

 물론 희망도 여러 가지다. 하나는 신기루의 희망으로서 희망 자체에 대해 집착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오늘의 어려운 현실을 철저히 분석함으로써 어떻게 하면 보다 희망적인 내일을 만들 수 있는가를 연구하는 것이다. 진정한 희망은 후자의 희망론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희망에는 용기가 필수적인 동반 가치이다. 그리고 다음에는 어려운 현실에 인간의 노력과 지혜를 가미함으로써 얼마나 개선이 가능한가를 탐구해야 한다. 그래서 희망에는 탐구와 동시에 지속적인 노력이 수반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것은 과연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그래서 희망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용기와 함께 탐구정신을 이야기하는 것이다.<김광식·21세기한국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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