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 - 양조훈 육필기록] <136>뉴욕타임스 4·3 보도

1개면 할애 진실찾기 과정 등 심층보도
"5·10선거 반대가 유혈사태 시발" 지적

뉴욕타임스 4·3 보도

2001년 10월24일 자료 조사차 미국에 파견된 4·3위원회 전문위원 장준갑 박사로부터 국제전화가 걸려왔다. 장 박사는 "오늘 뉴욕타임스에 제주4·3 진상조사와 양 수석 인터뷰 내용이 1개면 전면에 대문짝처럼 보도됐다"고 알려왔다. 다소 흥분된 어조였다.

그날 「연합뉴스」는 워싱턴 강일중 특파원의 기명 기사로 "NYT, 제주4·3사태 진상규명 노력 소개"란 제목 아래 이 내용을 타전했다. 「연합뉴스」의 기사는 이렇게 시작됐다.

"미국의 유력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최근 한국과 미국에서 반세기 전 제주4·3사태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한 노력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24일 소개했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948~49년 당시 제주도 전체 인구의 10%가 넘는 3만여명의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사건의 진실은 지금까지 베일에 가려 있었다'면서 80대 노령인 4·3사태 생존자 김형채씨의 증언과 제주4·3위원회 양조훈 수석전문위원의 견해를 비교적 상세히 보도했다"

이 「연합뉴스」 기사는 「동아일보」 등 국내 언론에 인용, 보도됐다. 이처럼 화제를 모은 「뉴욕타임스」의 4·3 관련 보도기사 제목은 '남한 국민들 1948년 학살의 진실 찾아 나서다(South Koreans Seek Truth About '48 Massacre)'였다.

이에 앞서 그해 8월28일 뉴욕에 본사를 둔 세계적인 통신사인 AP통신이 '남한정부 1948년 학살을 조사하다(South Korea Reviews 1948 Killings'란 제목으로 한국정부 차원의 4·3진상조사가 진행되고 있음을 보도했다. AP통신은 4·3위원회 발족 1주년을 맞아서 그동안의 진상조사 과정을 소개한 것이다.

이 통신은 "생존자들은 미군이 이승만의 당선까지 한반도 남쪽을 지휘했고, 그 후에도 그의 집권을 후원했기 때문에 워싱턴이 제주 탄압에 부분적으로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AP통신의 기사는 국내 언론에 주목을 받지 못했다. 제주도내 신문에도 보도되지 않았던 것으로 볼 때 당시는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AP통신이 뿌린 씨앗이 「뉴욕타임스」에서 열매를 맺어 한국뿐만 아니라 미국사회에도 파장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 「뉴욕타임스」 홈페이지에 실린 제주4·3 관련 보도기사. 타임스는 2001년 10월24일 '남한 국민들 1948년 학살의 진실 찾아 나서다'란 제목으로 심층 보도했다.
「뉴욕타임스」에 보도되기 며칠 전에 이 신문 동북아시아 지국장인 하워드 프렌치 기자가 서울에 있는 4·3위원회 사무실로 찾아왔다. 그는 주로 일본 도쿄에 거주하면서 한국과 중국에 관한 기사도 쓰고 있었다. 그는 제주4·3에 대해 심층적으로 취재하고 싶다면서 필자와 장시간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제주에 내려가 현장 조사도 벌였다.

「뉴욕타임스」에 '김형채(Kim Hyoung choe)'로 소개된 사건 체험자는 실상은 조천읍 선흘리 출신의 김형조이다. 타임스는 그가 4·3 당시 한라산 기슭 동굴로 숨어들어 은신해야 했던 정황과 마을 주민 100여명이 손이 뒤로 묶인 채 학살된 모습을 목격했던 기막힌 사연을 그의 증언을 토대로 전달했다.

타임스는 군경이 해안선에서 3마일을 벗어난 중산간지대를 적지라고 간주하고 무자비한 집단처형과 방화 등을 자행했고, 그 과정에서 여성과 어린이들도 희생되었다고 덧붙였다. 이 신문은 수십 년 동안 남한에서는 이 사건이 북한 공산당과의 연계된 것처럼 교과서에도 기술되어 있었으나 점차적으로 지역 언론, 대학생, 일부 국회의원에 의해 진실규명이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타임스는 필자를 어둠에 갇혔던 4·3의 비극을 여는데 역할을 한 저널리스트이며, 어떤 과정을 거쳐 4·3연구를 시작하게 됐는지 소개했다. 타임스는 또 "요즘 학교에서도 이 사건에 대해 제대로 가르치지 않고 있다. 나의 목표는 국가 전체가 이 역사를 인식하도록 만드는 것이다"는 필자의 소망도 언급했다.

타임스의 기사 중 눈길을 끄는 대목은 초토화의 배후를 암시한 내용이다. 즉, 타임스는 1948년 5월10일 남한에서 실시된 선거가 제주도에서 유일하게 보이콧하자 "남한에 있던 미군 사령관들이 분개해 했고, 그 이후 미군정에 참여했던 남한의 지도자들은 공산주의자 선동가로 여겨지는 섬 주민들을 대상으로 '청소하는 작전(a campaign to cleanse)'을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그러면 '청소하는 작전'이란 무엇인가. 중산간지대를 빗질하듯 쓸어버린 초토화작전을 말함이다.

이 기사에서 지적했듯, 제주도에서의 5·10선거 반대 투쟁은 미군정으로서는 충격적인 일이었다. 미군정의 정책을 정면으로 반대했기 때문이다. 타임스는 제주도에서의 유혈사태 시발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고 지적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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