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 - 양조훈 육필기록] <137> 전문가 초청 특강

   
 
  2001년 3월2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남아공 진실화해위원회 란데라 위원 초청 간담회. 사진 왼쪽부터 박원순 4·3보고서작성기획단장 옆에 란데라 박사가 앉아있다.  
 

남아공 진실화해위 란데라 박사 초청 강연
현대사 전문학자·장성 출신 특강도 이어져

전문가 초청 특강
제주4·3위원회는 본격적인 진상조사에 앞서 전문적인 교육이 필요하다고 여겨 각계 전문가 초청 특강을 실시했다. 이 프로그램에 중앙위원이나 기획단 단원이 참석할 때도 있었지만 주로 전문위원과 조사요원 등 실무 진상조사팀을 대상으로 진행했다.

진상조사팀 구성원들은 나름대로 4·3진상조사의 경험이나 노하우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자칫 자만의 늪에 빠져 구성원들의 진상조사의 폭이 좁아질 우려도 있었다. 따라서 이런 특강을 구상한 것은 진상조사의 범위를 높고 멀리 보기 위해서는 외부 수혈에 의한 자기 성찰이 필요하고, 머리를 비울수록 외부로부터 좋은 조언이 들어올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중에도 기억에 남는 것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진실과 화해위원회(TRC)' 위원인 파즐 란데라 박사 초청 간담회였다. 란데라 박사는 4·3위원회와 비슷한 시기에 출범한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했는데, 그 소식을 듣고 4·3위원회에서도 초청 간담회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남아공은 백인과 흑인과의 인종 차별이 유독 심한 나라였다. 과거 백인정권 시절의 인종 분리 정책의 영향으로 흑인에 대한 인권유린과 범죄행위가 많았다. 1994년 흑인 인권운동가인 넬슨 만델라가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이런 인권피해 실태를 조사하기 위한 특별위원회가 설치됐다. 위원장은 노벨평화상 수상으로 유명한 투투 대주교가 맡았다.

란데라 박사 초청 간담회는 2001년 3월27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의사인 그는 경찰이 쏜 총에 맞고 병원에 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인권의식이 생겨 인권운동에 참여했다고 털어놨다. 이 자리에는 4·3진상조사보고서작성기획단 박원순 단장과 몇몇 중앙위원들도 참석했다.

란데라 박사는 "진실규명은 궁극적으로는 화해를 위한 것이며, 대립과 반목을 해결하는 길은 용서뿐"이라고 역설했다. 그는 이어 "국가에 의해 조직적으로 파기된 과거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진실을 증언하는 사람들을 사면했고 이를 통해 가해자와 피해자의 화해를 꾀할 수 있었다"면서 "비록 진실을 다 밝혀내지 못해 우리 활동에 한계가 있었지만 이를 통해 일반인들이 과거의 어두웠던 역사와 사실들을 널리 받아들이고 화해하는 방법을 실천하게 됐다"고 증언했다.

남아공의 이런 과거 청산 작업은 흑인 분리 정책에 반대 투쟁을 벌였던 만델라가 대통령으로 당선돼 단결과 화합을 강조함으로써 가능한 일이었다. 만델라 대통령은 보복 대신에 가해자들의 진실 고백과 참회를 유도했다. 이를 위해 특별위원회에 사면권을 부여했다. 이에 따라 가해자가 진상을 공개하고 참회하는 사례가 많았다. 이것은 가해자들이 침묵을 지키거나 오히려 이념논쟁으로 몰고 가면서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우리의 상황과는 대비되는 내용이었다.

그럼에도 남아공의 과거 청산에도 불만이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가령 흑인 강경파들은 가해자들의 진정한 사과 표명이 부족하고, 사면권을 남발하고 있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일부 백인들은 피해자 측의 자의적인 주장에 누구라도 조사대상이 될 수 있는 마녀사냥식 조사가 이뤄지고 있다고 불만을 터뜨렸다는 것이다.

란데라 박사는 한국을 떠나는 날인 4월1일 4·3범국민위원회와 재경4·3유족회 공동 주최로 성균관대학교에서 열린 제53주기 4·3추모제에 참석해서 인사하는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

한편 4·3진상조사팀을 대상으로 한 특강은 주로 전문 학자들을 초청해 이뤄졌다. 서중석(성균관대 교수)의 '4·3에 대한 역사적 이해', 안종철(민주화보상위원회 전문위원)의 '광주5·18 관련사업 추진현황과 제주4·3', 정병준(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의 '한국현대사 자료 수집 분석방법', 박명림(미 하버드대학 엔칭연구소 연구위원)의 '4·3과 미군정과의 관계', 김광운(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의 '북한의 남한 내 유격전과 4·3에 대한 인식', 전현수(경북대 교수)의 '러시아자료 수집방안', 정혜경(한국국가기록연구원 연구기획국장)의 '증언채록의 방법론과 4·3진상조사 증언의 활용' 등이었다.

4·3을 직접 경험했던 군 장성들의 체험담과 특강도 있었다. 김점곤(예비역 육군 소장·전 경희대 부총장)의 '4·3사건의 기본성격과 현재적인 해결방안', 채명신(예비역 육군 중장·초대 주월 한국군사령관)의 '내가 겪은 제주4·3사건'이 바로 그것이다. 4·3 당시 소령으로 육군본부에 근무했던 김 장군은 군 장성 출신으로서는 4·3에 대해 비교적 유연한 입장을 보였다. 이에 반해 1948년 소위에 임관하자마자 제주에 배속됐던 채 장군은 매우 보수적인 태도를 보였다. 나의 중학 시절, 주월 한국군사령관으로 이름을 날리며 언론에 비쳐졌던 그의 부드러운 인상과는 사뭇 달랐다. 

☞다음회는 '미군 고문관 증언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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