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 - 양조훈 육필기록] <144> 진상보고서 위원회 심의 ④

   
 
  2003년 3월 29일 고건 국무총리가 4·3위원회 전체회의에 앞서 민간위원들을 총리 집무실로 초치, 진상조사보고서 채택문제를 논의하고 있다.  
 

 '폭동'에서 '국가에 의한 인권유린'으로 규정
  강금실 "보고서 의결이 맞다" 결정적 역할

진상보고서 위원회 심의④
2003년 3월29일, 4·3위원회 제7차 전체회의를 준비한 총리실 참모들이 진상조사보고서 의결조항이 아닌 '관련자료의 수집 및 분석에 관한 사항' 의결로 시나리오를 짠 것은 예상 밖의 일이었다. 그 시나리오는 6개월 동안 시한을 정해 새로운 자료나 증언이 나타나면 보완할 수 있도록 하고, 따라서 그날 회의에서는 진상보고서 확정이 아닌 관련자료의 수집·분석으로 의결한다는 것이었다. 이는 4·3특별법 제3조에 '관련자료의 수집·분석에 관한 사항'과 '진상조사보고서에 관한 사항'을 각각 위원회 의결사항으로 나열한 취지에도 부합된다는 설명까지 달고 있었다.

총리실도 국방부 못지않게 성우회 등 보수단체로부터 심한 압박을 받고 있었다. 보수단체들은 청와대 쪽에 이야기해봐야 말발이 안통하자 비교적 온건 성향의 고건 총리실 쪽으로 보고서 통과 저지를 위한 화력을 쏟고 있었다. 필자는 그런 처지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총리실의 시나리오는 정도(正道)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날 오전 10시부터 정부종합청사 총리실 대회의실에서 열리는 이 회의에 초미의 관심이 모아졌다. 취재진이 장사진을 이루었다. 고건 총리는 회의 시작 전에 민간위원들을 집무실에 따로 불러 티타임을 갖자고 제안했다. 고 총리는 그 자리서 "두가지는 확실하다. 하나는 4·3사건이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로부터 발단됐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 과정에서 무고한 양민들이 희생됐다는 사실"이라면서 이들 양민들의 명예회복이 필요하기 때문에 위원들 간에 원만한 합의를 도출해 줄 것을 당부했다.

예정시간보다 20분 늦게 시작된 회의에서는 여전히 주요 쟁점에 대한 논란이 재연됐다. 일부 용어를 놓고 위원들 사이에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그러다가 신용하 위원 등에 의해 보고서를 채택하되 6개월간 유예기간을 두어 수정의견이 있으면 재논의하자는 조건부 의결안이 제안되자 "된다" "안된다"는 논쟁으로 뜨겁게 이어졌다. 김삼웅·박창욱·서중석·임문철 위원과 강금실 법무장관 등이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논란이 거듭되자 고건 총리가 간곡하게 조건부 의결안을 만장일치로 채택해 줄 것을 요청했다. 어느 정도 분위기가 수그러지자 고 총리는 진상조사보고서 심의에 대한 보도자료 내용을 검토하자고 제안했다. 그 보도자료에 문제의 "'관련자료의 수집·분석에 관한 사항'으로 접수 의결"이라는 문구가 있었다.

이런 내용에 일부 민간위원들의 문제 제기가 있었고, 결정적인 역할은 제주 출신 강금실 법무장관이 해냈다. 지난번 회의에 이어 이날도 4·3특별법에 명시한 기한을 지켜야한다며 6개월 조건부 안에 반대 입장을 보였던 강 장관은 문제의 문구를 발견하곤 "그것은 결정적 오류"라면서 "4·3특별법 제3조제2항제4호 진상조사보고서 작성에 관한 사항으로 의결해야 법 취지에 맞다"고 분명한 선을 그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이날 전체회의에서 논란 끝에 진상조사보고서 안이 의결됐다. 다만 "6개월 이내에 새로운 자료나 증언이 나타나면 위원회의 추가심의를 거쳐 보고서를 수정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비록 조건부 의결이었지만 제주4·3사건을 '국가 공권력에 의한 인권유린'으로 규정한 정부 보고서가 확정된 것이다. 그것은 정부가 공식적으로 제주4·3에 대한 인식을 '폭동'에서 '인권유린'으로 바꾼 것을 의미한다.

한편 이날 회의에서는 진상조사보고서 의결에 이어 이런 보고서의 결론을 토대로 4·3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7개항의 대정부 건의안을 채택했다. 이 건의안은 기획단에서 작성한 보고서 초안에는 '제6장 권고'에 들어 있었다. 그러나 정부위원회가 정부를 상대로 '권고'하는 것이 이상하다는 의견이 제기돼 보고서에선 빼내되 별도의 건의안을 채택하기로 조정된 것이다.

그 7개항의 건의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제주도민, 4·3피해자들에 대한 정부의 사과 ②4·3사건 추모기념일 제정 ③진상조사보고서의 내용을 평화와 인권 교육 자료로 활용 ④4·3평화공원 조성에 대한 적극적 지원 ⑤생활이 어려운 유가족들에게 실질적인 생계비 지원 ⑥집단매장지 및 유적지 발굴 사업 지원 ⑦추가 진상규명 및 기념사업 지속적 지원.

그 중에도 '정부의 사과'가 맨 앞자리에 있었다. 이것은 '법률적 행위'였다. 즉, 4·3특별법 제3조 4·3위원회의 심의사항 중에는 '제주4·3사건에 관한 정부의 입장표명 등에 관한 건의사항'도 있다. 그 법적인 근거에 의해 기획단에서 건의안을 제출했고, 총리가 위원장인 정부위원회에서 그 건의안을 채택한 것이다. 이런 건의에 따라 정부 차원의 4·3 피해자와 유족에 대한 명예회복과 역사의 교훈으로 삼고자하는 다양한 사업이 추진된다. 

☞다음회는 '진상보고서 언론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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