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컬러스 색슨 지음·이유영 옮김

과거 '보물섬'은 해적들이 숨겨놓은 금은보화를 찾아내 내 것으로 만드는 묘미라도 있었다. "가자 가자 어서 가자"를 외치며 럼주를 들이키는 뱃사람 이미지도 겹쳐지는 등 생각만으로도 흥미진진했다. 지금은 어떠한가. 냉정하게 오늘의 보물섬은 세상 어떤 지도에도 표시되지 않는다. 오직 가진 자들에게만 보인다. 이름도 달라졌다. '조세 피난처(tax haven)'다.

자국의 규제 체제와 명확하게 대비되는 '역외 비즈니스를 제공하는 비밀주의 사법 체제'인 조세 피난처는 지금 글로벌 경제의 중핵을 이루고 있다.

이는 글로벌 금융 위기의 핵심 요소이기도 하다. 역외 체제 규모는 전체 산업 총자산의 2분의 1, 전 세계 외국인 투자액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글로벌 경제·정치 분야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신탁회사를 이용한 다국적 기업 탈세 전략의 시초였던 영국 베스티 형제의 사례부터, 2차 세계 대전 당시 금융 비밀주의 국가로 급성장한 스위스, 역외 유로마켓의 탄생, 영국의 역외 네트워크 구축, 미국의 역외 시장 진출 등을 살펴본다. 또 역외 체제가 가져온 가난의 참상과 역외 지지자들의 논리, 영국 금융가의 핵심인 런던시티공사의 무소불위 권력 등을 파헤친다.

조세 피난처를 중심으로 역외 체제의 지난 100년을 되짚어 보며 이 체제가 전 세계에 걸쳐 끼친 해악을 드러내는 과정은 전문 지식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낮고 딱딱한 빨래 의자에 오래 앉은 느낌으로 불편하다.

국제 무대에서 리서치 애널리스트와 경제 컨설턴트로 활동하다 현재 공공 싱크탱크 초빙연구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유영씨의 군더더기 없는 번역이 큰 위안이 된다. 부·키. 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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