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 - 양조훈 육필기록] <146> 진상보고서 대통령 반응

   
 
  2003년 4월 2일 노무현 대통령이 4·3위원회 민간인 위원들을 청와대로 초청, 오찬 회동을 가졌다. 왼쪽부터 한광덕 위원, 노 대통령, 강만길·박창욱·김삼웅 위원.  
 

"진상보고서 마무리되면 국가 입장 표명"
 4·3위원들 초청해 과거사정리 의지 피력

진상보고서 대통령 반응
2003년 3월 29일 4·3위원회에서 진상조사보고서를 조건부 의결한 상황을 청와대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노무현 대통령은 그해 4월3일 일정을 비워놓았다. 이를 두고 역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4·3위령제에 참석하는 것이냐는 관측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앞서 전국 대학교수 255명, 문화예술인 258명, 천주교 제주교구 정의구현사제단, 제주도내 28개 시민사회단체가 공동 기자회견을 갖고 노무현 대통령의 4·3위령제 참석을 공식 요청했다.

필자는 참여정부 말기인 2007년 청와대 과거사정리정책보고서T/F가 추진한 「과거사정리정책보고서」 작성 작업에 감수위원으로 참여한 바 있다. 정권 말기에 보수언론으로부터 집중포화를 받던 노무현 대통령은 "우리가 했던 일을 역사적으로 평가를 받자"면서 백서 발간을 지시했다. 「과거사정리정책보고서」 작성도 그 일환으로 추진됐다. 필자는 그때 제주4·3뿐만 아니라 과거사에 관련된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록을 모두 볼 수 있었다. 노 대통령은 집권 초기부터 과거사 청산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고, 그 맨 앞자리에 제주4·3이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제주4·3에 대한 정부 입장 표명의 뜻을 구체적으로 밝힌 것은 진상조사보고서 채택 이전인 2003년 3월21일 열린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였다. 참여정부가 출범한지 한 달도 채 안된 시점이었다. 대통령의 어록을 보면, 그 이전에 시민사회 대표들과의 면담 때, 개별적으로 만난 원로 역사학자(강만길 상지대 총장 등)에게 제주4·3에 대한 정부 입장을 어느 수준에서 표명하는 것이 좋은지 판단해 달라고 자문을 구했다고 한다.

노 대통령은 이날 회의에서는 청와대 참모들에게 "(그 표명이) 내 개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국민을 대리해서 의사 표시하는 것이기 때문에 역사적 맥락에서 법적 성격 등을 잘 판단할 것"을 지시하고 "4·3위원회의 판단 결과에 따라 공식적인 입장으로 표명할 수 있도록 준비해 줄 것"을 주문했던 것이다.

노 대통령은 대선 공약을 지키기 위해 4·3위원회가 진상조사보고서를 채택하면 그 결과에 따라 그해 4월3일 제55주년 4·3희생자 위령제에 참석해 정부의 입장을 표명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그 계획은 진상조사보고서가 6개월의 시한을 둔 조건부로 통과되면서 무산됐다.

노 대통령은 3월31일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위령제 참석문제를 논의했다. 노 대통령은 유인태 정무수석으로부터 4·3위원회가 6개월 이내에 새로운 사실이 발견되면 보고서를 수정한다는 것을 전제로 진상보고서를 채택했다는 보고를 받고 "다른 어떤 사건보다 무거운 사안이고 역사적 평가인 만큼 보고서를 통해 사실을 재확인하고 의미를 재평가할 시간적 여유가 필요하다"면서 "국가차원의 입장 표명은 내년 4·3사건 추모식에 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회의 결과는 송경희 청와대 대변인에 의해 공식 발표됐다.

노 대통령은 그해 위령제에 참석할 수 없게 되자 4월2일 4·3위원회 민간인 위원들을 청와대로 초청, 오찬 회동을 갖고 위로의 뜻을 밝혔다. 그 자리에 동석했던 고건 총리가 4·3위원회에서 의견을 조정해서 진상조사보고서를 만장일치로 조건부 의결했다고 보고하자 노 대통령은 "위원들 간 견해와 관점이 달라 결론내기 어려웠을 텐데 만장일치로 합의를 이끌어낸 것도 역사적 성과"라고 평가하면서도 "민주주의 국가에서 만장일치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라며 고건 총리를 우회적으로 질책했다.

그 자리서 유족 대표인 박창욱 위원은 "4·3유족들은 대통령님의 위령제 참석을 학수고대하고 있다"고 재차 참석을 요청했고, 김삼웅 위원은 "정부 입장 표명을 내년 4·3위령제 때 하는 계획은 바로 총선과 맞물려 정치적인 논쟁에 휘말릴 우려가 있다"면서 "서양 속담에 선행은 하루라도 빨리 하는게 좋다는 말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노 대통령은 "미처 총선은 생각하지 못했다"면서 "내년 4월3일에는 반드시 제주를 방문할 것이며 그 이전에라도 진상보고서가 마무리 되는대로 국가적 입장을 표명할 것"이라고 수정의견을 밝혔다.

그날 노무현 대통령은 과거사 정리의 의지를 확고하게 밝혔다. 그는 우리 현대사에서 4·3과 유사한 비극적인 사건이 많은데, 임기 5년 동안 끝내지 못하더라도 우리가 시작해야 되지 않겠냐하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언급했다. 대통령은 "기왕에 총리실에 기구가 있으니까 4·3 진상규명이 마무리 되는대로 총리와 4·3지원단에서 다른 과거사 정리를 어떻게 풀 것인지에 대해서 구상의 초안을 만들어 달라"고 주문했다. 그러나 총리실 등에선 이 발언을 간과한 것 같다. 우리 전문위원실에도 이와 관련된 아무런 시달이 없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그로부터 1년 4개월 뒤인 2004년 8월17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앞서 지시한 내용을 상기시키면서 그 뒤 아무런 보고가 없었다고 지적한 것이다. 그때는 국무총리가 고건에서 이해찬 총리로 바뀐 때였다. 

☞다음회는 '총리 위령제 참석 논란'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