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 - 양조훈 육필기록] <147> 총리 위령제 참석 논란

   
 
  2003년 4·3위령제에 참석한 고건 총리가 김두관 행자부 장관, 우근민 지사와 함께 참배하고 있다. 참석 반대 기습시위가 있은 직후여서 주변에 경호원들이 긴장한 모습으로 서 있다.  
 

추미애 "보고서 조건부 의결은 총리 책임"
총리 우여곡절 속 입장 "4·3마무리에 최선"

총리 위령제 참석 논란
2003년 4·3진상조사보고서가 확정되고, 대통령이 처음으로 4·3위령제에 참석해서 국가차원의 사과를 한다면 그야말로 반세기 이상 맺힌 한을 푸는 역사적 사건이 될 터였다. 그런 꿈같은 이야기가 바짝 현실로 다가왔다. 4·3유족은 물론이거니와 제주 도민사회는 설레는 마음으로 그 진행상황을 지켜봤다. 제주도는 이런 고무된 분위기를 극대화하기 위해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제주시 봉개동에 마련된 제주4·3평화공원 조성예정 부지에서 기공식을 갖는다는 계획도 세웠다.

그런데 진상조사보고서 조건부 의결과 대통령의 위령제 참석이 1년 연기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실망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노무현 대통령은 이를 의식한 듯, 4월 2일 4·3위원회 민간인 위원들을 청와대로 초대해서 위로의 회동을 갖는 한편 위령제에는 정부를 대표해서 고건 국무총리와 김두관 행정자치부장관이 참석하도록 조치했다.

1989년부터 4·3위령제가 거행됐지만 국무총리와 장관 등 정부 측 고위인사가 참석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러나 대통령 참석에 대한 기대가 컸던 만큼 이런 조치에도 분위기는 싸늘했다. 4·3유족회를 비롯한 시민사회단체 뿐만 아니라 여야 정치인, 도의회 등에서 불만스런 성명이 잇달아 발표됐다.

4·3유족회 등 제주도내 26개 시민사회단체는 "제주4·3 진상조사보고서에서 드러났듯이 4·3사건은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국가권력에 의한 민간인학살사건"이라면서 "국무총리가 참석하더라도 정부가 공식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제주출신 국회의원 고진부 의원(민주당)과 양정규·현경대 의원(한나라당)도 여야를 떠나 "진상조사 결과 국가기관의 잘못이 밝혀질 경우 대통령 신분으로 직접 사과하겠다던 제주도민과의 약속을 지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제주도의회는 김영훈 의장과 강원철 4·3특위 위원장이 기자회견을 갖고 "정부 차원의 공식 입장 표명과 대통령의 위령제 참석이 유보된데 대해 실망감을 감출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그 다음 일어났다. 추미애 의원 등이 이런 사태가 빚어진 책임이 고건 총리에게 있다고 직접 공격했기 때문이다. 4·3특별법 제정의 산파역할을 했던 추미애 의원은 4월1일 발표한 성명을 통해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의 결론을 왜곡하는 듯한 국무총리의 태도와 이에 따른 청와대의 사과 재검토를 비판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추 의원은 "총리의 보고서 작성 시한 연장조치는 진상규명 작업이 미흡하다고 판단한 결과라기보다는 보고서 채택과정에서 군경측 일부 위원의 반발을 의식한 결과라고 본다"며 "이는 4·3특별법의 입법 취지와 법에 정해진 기간을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4·3특별법 제정운동에 앞장섰던 제주참여환경연대 이지훈 대표도 「한겨레신문」 4월3일자에 실린 "제주4·3 사과 유보라니"란 제목의 기고를 통해 "4·3특별법은 여야 의원들이 함께 발의해 통과시킨 인권법이다. 감히 총리가 자의적으로 훼손할 수 있는 법이 아니다. 도민들은 이제 실망을 넘어 분노하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이에 앞서 4월2일 제주참여환경연대·제주환경운동연합·제주여민회 등 3개 단체는 "정부 차원의 공식사과 유보를 사실상 조장하고 제주4·3 진상규명에 찬물을 끼얹은 고건 총리의 위령제 참석을 반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뜻하지 않은 공격을 받은 총리실은 당황한 빛을 보이며 반론에 나섰다. 즉 "6개월 시한부 수정의견은 군경측 입장을 대변하는 위원들의 수정 제의 등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위원 전원 동의하에 전원일치의 의결로 이뤄진 것이고 진상조사보고서가 6개월 뒤 최종 확정되면 적절한 시점에 정부의 공식입장이 표명될 것"이라고 해명했다. 또한 "총리는 위원장으로서 위원들과 각계각층의 의견을 수렴, 위원회를 원만히 운영하고자 노력했다"고 덧붙였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4·3위령제 행사장엔 긴장감이 돌았다. 서울에서 내려온 고건 총리와 김두관 장관 등은 같은 버스에 탑승해 행사장으로 향했다. 일부 시민단체 회원들이 계란을 던질지 모른다는 정보가 입수돼 경호원들은 우산을 준비하기도 했다. 고건 총리 일행이 평화공원 조성 예정지 입구에 도착해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참여환경연대 등 일부 단체 회원들이 '4·3 해결에 찬물을 끼얹는 고건 국무총리 규탄한다'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펼치고 입장을 저지하는 기습 시위를 벌였다. 경호원들과 실랑이가 벌어지자 일부 시민단체 회원들은 땅바닥에 드러눕기도 했다. 이 바람에 추모행사 시작이 10여분간 지연됐다.

어쨌든 우여곡절 끝에 위령제에 참석한 고건 총리는 정부의 입장 표명시기가 늦어진데 대해 양해를 구하고, "4·3위원장으로서, 또 총리로서 제주4·3사건을 마무리 짓는데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을 다짐한다"고 밝혔다. 이날 권영길 민노당 대표, 김원웅 개혁당 대표, 민주당 정동영·추미애 의원, 한나라당 이부영 의원 등 중앙 정치인들도 대거 참석한 가운데 위령제에 이어 평화공원 조성 기공식도 거행됐다.

☞다음회는 '보고서 수정의견 심의'

저작권자 © 제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