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 - 양조훈 육필기록] <156> 4·3보고서 도민보고회

   
 
  2003년 11월7일 제주도문예회관에서 열린 '4·3진상조사보고서 도민보고회'에 참석한 유족들. 눈물을 흘리는 한 할머니의 모습도 보인다.  
 

1천여명 초청해 4·3보고서 주요골자 설명
지역언론, 보고서 관련 오보엔 끝내 침묵

4·3보고서 도민보고회
2003년 10월31일 노무현 대통령의 제주4·3에 대한 사과 표명으로 제주사회는 들뜬 분위기였다. 제주도와 도의회, 4·3유족회, 4·3관련단체들이 한목소리로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 민주당과 한나라당 등 여야 가리지 않고 환영 입장을 밝혔고, 한발 더 나아가 후속조치의 조속한 이행을 촉구했다. 

이런 분위기에 고무된 우근민 도지사는 대통령 사과 표명 직후 4·3진상조사보고서 내용을 도민들에게 알리는 행사 개최를 지시했다. 그래서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도민보고회' 행사계획이 마련됐다.

11월3일 지역 언론에 일제히 발표된 이 행사 계획을 보면, 11월7일 4·3실무위원회(위원장 도지사) 주최로 제주도문예회관에서 도민 1000여명을 초청해, 4·3사건에 대한 우리 정부의 첫 종합보고서인 4·3보고서의 주요 골자를 설명한다는 것이었다. 오전 10시부터 시작되는 제1부는 풍물굿과 진혼굿 등 예술공연이 40분 동안 진행되며, 이어 4·3위원회 양조훈 수석전문위원이 100분간 보고서 내용을 상세히 소개한다고 보도됐다.

이틀 전 김유선 4·3사업소장이 필자에게 이런 계획을 알리고, 보고서 주요 골자를 설명해 달라고 해서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그런 내용이 언론에 보도된 다음날, 김 소장이 서울에 있는 필자에게 조심스럽게 전화를 걸어와 "보고서 설명을 다른 분이 하면 안 되느냐?"고 타진하는게 아닌가. 내가 어이가 없어서 "윗분의 뜻이냐?"고 물었더니 긍정도 부정도 안했다.

이렇게 무리하게 발표자를 바꾸려 하는데는 사연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더이상 그 이유를 묻지 않았다. 애꿎게 김 소장만 난처한 입장이 될 터이니 말이다. 그러나 그 순간 한사람이 뇌리를 스쳐갔다.

그 무렵 공공연히 4·3진상보고서 통과에 불만을 드러낸 경우회 모 인사였다. 그는 심지어 전문위원 이름까지 거명하며 인신공격한다는 얘기까지 들렸다. 10월28일 경우회제주도지부 등 12개 보수단체 명의로 지역 언론에 대형 광고로 발표된 '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확정에 대한 우리의 입장'이란 성명서에도 "6개월 동안 각계로부터 376건 1033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수정의견이 접수되었는데, 보고서 집필자 한두명이 하루 이틀만에 검토하여 이들의 주관적인 의견을 달아" 소위원회에 회부했다는 주장이 나오는데, 이런 표현도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어쨌든 필자는 그 건을 더이상 문제 삼지 않았다. 필자가 나서지 않는 대신 보고서 통과에 많은 애를 쓴 박원순 지원단장(현 서울시장)이 먼저 간단한 인사를 하고, 보고서 주요내용은 그동안 검토 소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던 김삼웅 위원(독립기념관장 역임)이 발표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해 관철시켰다.
11월7일 제주도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도민보고회에는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가득찼다. '화해의 산을 넘어 평화의 바다로'란 주제로 열린 제1부 문화예술행사는 풍물패 신나락의 풍물굿과 최상돈의 4·3노래, 놀이패 한라산의 진혼굿 등이 이어졌다.

이어서 우근민 지사, 김영훈 도의회 의장, 이성찬 유족회장이 차례로 나와 인사말을 했다. 우 지사는 인사말을 통해 "4·3사건이 남긴 교훈을 승화시켜 도민화합을 통한 미래 번영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제2부는 박원순 지원단장의 인사말과 김삼웅 위원의 보고서 주요내용 설명 순으로 진행됐다. 박 단장은 "어둠에 싸여있던 진실이 밝혀졌다"면서 "4·3진상조사보고서 채택과 대통령의 사과를 보면서 역사 속에 정의의 신이 살아있음을 느꼈다"고 역설했다.

4·3보고서 설명회는 이후 서울과 일본에서도 열렸다. 서울에서는 12월6일 재경4·3유족회 주최로 상록보육원 강당에서 열렸다. 일본에서의 보고대회는 1차 보고서 통과 직후인 2003년 4월과 대통령 사과 이후인 2004년 4월 두차례 열렸는데, 이 행사에는 필자가 참석해 보고서 내용을 직접 설명할 수 있었다.

여기서 잠깐 '언론의 오보'와 그 후속조치에 한마디 하고 싶다. 고건 총리 주재로 4·3보고서 수정안을 확정한 검토소위 회의 직후인 10월8일, 제주도내 주요 언론들은 대문짝만하게 "'무장폭동' 국방부 의견 수용"이란 오보를 날렸다. 거기다 "책임 소재에 대해 미군과 이승만 전 대통령보다 당시 작전지휘관에게 책임이 있다는 국방부의 주장을 받아들였다"고 보도했다.

비공개로 열린 회의 때문에 파생된 문제지만, 사실과 다르다고 설명해도 10월15일 보고서 수정안이 최종 확정될 때까지 이를 바로 잡아준 언론은 드물었다. 필자도 기자 출신이지만, 오보 인정에 인색한 풍토를 재삼 느꼈다. 그런 속에서 「제주투데이」 양김진웅 기자가 기억에 남는다. 10월13일자 취재 여록 '4·3과 오보'를 통해서 그 보도가 사실무근임이 밝혀졌다면서 그런데도 침묵하고 있는 언론을 비판했기 때문이다.  

☞다음회는 '4·3보고서 발간 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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