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시왓 지경의 갈대 숲은 바람에 일고 바람에 진다. 그 모습이 장관이다. 도내 최대 규모. 지금은 철새들의 보금자리가 되고 있다.

◈개시왓 갈대숲(구좌읍 종달리)

 구좌읍 종달리 개시왓에 자리잡은 갈대 숲을 본다.갈대는 살아있는 동안 푸르른 기쁨의 시절이 없다.

 뿌리를 박은 땅과 바람에 떠도는 씨앗의 하늘 사이에서 갈대는 쓰러지고 일어선다.모든 씨앗들이 허공으로 흩어진 뒤,묵은 갈대숲은 빈 껍데기로 남아서 그 껍데기까지도 불려간다.

 바다로 간 씨앗들은 다 죽고,갯벌위에 떨어진 씨앗에서 어린 갈대 싹들이 돋아나 다시 바람에 포개졌다.

 개시왓의 갈대 숲은 넓다.도내 최대 규모라고 한다.원래 이 일대는 대정(大靜)사람,채귀석(蔡龜錫)판관이 1900년께 갯벌이던 둑을 쌓아 논으로 조성한 것.종달리 제1수답에 해당된다.

 그러나 공사가 잘못된 탓인지 바닷물 유입이 잦아 이후 ‘송구래’라는 사람이 다시 둑을 이중으로 쌓아 국도변은 농경지로,바다쪽은 양어장으로 활용했다.

 이 때문에 개시왓의 어원을 놓고 ‘왓’은 제주말인 ‘밭’을 의미하며 개시는 한자말로 ‘開始’라고 해석하는 사람들도 있다. 

 한때 10a당 225㎏의 쌀을 생산했던 개시왓은 논농사가 쇠락함에 따라 갈대숲으로 변모된다.

 제2수답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옹지못’지경의 제2수답은 지난 57년부터 6년에 걸쳐 바닷물을 막아 조성한 것.경제성을 잃은 탓에 논동사가 매년 줄고 있다. 

 지금 개시왓의 주인은 철새다.98년 8월 제주생태사진연구회의 김기삼씨(46)는 갈대 숲에 숨어있는 물꿩을 촬영했다.물꿩은 지난 93년 경남 주남저수지에서 처음 관찰됐을 뿐 국내 조류도감에도 올라있지 않은 희귀조다.

 희귀식물 ‘남방개’군락지가 98년 발견됐다.남방개는 얕은 물속에 자라는 사초과의 다년초다.남방개가 군락지로 자생생태가 확인 된 것은 당시 국내에선 처음이다.

 이곳에는 또 환경부 보호종인 맹꽁이가 있다.예전에는 논두렁을 지날때면 스무마리이상 뛰어 올랐는데 최근에는 한 두 마리조차 보기 힘들다고 한다.

 농약사용에 따른 환경오염과 도로개발에 따른 매립사업으로 개체수가 크게 줄고 있는 상태.먹이사슬의 중간단계인 맹꽁이나 뱀이 사라지면 그 것을 먹이로 하는 새들의 생존이 위협 받거나 해충의 이상증식이 일어나게 된다.생태계의 균형이 깨질 수밖에 없다.

 개시왓 건너편에 자리잡은 웃개곳물과 알개곳물은 개발바람이 할퀸 자국으로 생태계의 균형을 잃은 상태.조천읍 함덕리에서 성산읍으로 이어지는 도로공사 때문에 매립사업이 계속되고 있다.

 취재팀이 개곳물의 생태에 주목하고 있는 것은 이 일대가 종달리 포구인 두문이개와 이어진다는 점이다.해발이 고작 4m에 두문이개와의 거리는 약 1.5㎞.개시왓 갈대 숲과 연결돼 물 흐름이 이곳까지 이어진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예전에는 이곳까지 숭어가 올라 왔었다고 한다.

 현재 알개곳물은 5000평 규모.1200평 가량이 매립됐다.무성하던 갈대숲이 개발바람에 밀려 수난을 당하고 있는 것.웃개곳물도 도로개설에 따른 매립공사 때문에 500평 규모로 축소됐다.   

 길 안내를 했던 김병주 종달리 노인회장이 개곳물을 보고 대뜸 내뱉은 말.

 “나도 오랜만에 찾았지만,정말 지독하게 매립됐네”

 알개구물의 생태를 좀더 자세하게 살펴보기 위해 갈대숲을 헤쳐 나아가자 이름 모를 새 한 마리가 갑자기 날아 올랐다.김 회장은 ‘참매’라고 했다.망원렌즈와 쌍안경으로 그 녀석을 끌어 당겨 봤다.

 어떻게든 그들과 한데 어우러져 있는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고 위안을 얻고 싶은 것이었다.<글=좌승훈·좌용철 기자·사진=김영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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