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 - 양조훈 육필기록] <159> '4·3폭동' 공문 파문

"수정공문 시달, 재발방지 약속" 일단락
 이후 전국 2천여 고교에 4·3보고서 배포

'4·3폭동' 공문 파문

   
 
  2005년에 개정된 국정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 등장한 4·3에 대한 짧은 설명문(왼쪽 밑줄친 부분).  
 

2004년 3월18일 제주지역 언론이 "교육부, 전달 공문서에 '4·3폭동·폭도' 표현으로 말썽"이란 제하의 기사를 크게 보도했다. 제주4·3사건 피해자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까지 있었는데, 교육인적자원부가 여전히 수구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제주4·3을 '폭동·폭도'로 매도했다는 것이다.

내용을 알아본즉, 교육부는 3월10일자로 전국 16개 시·도 교육청에 '적기가(赤旗歌) 확산차단 교육 실시 요청'이란 제목의 공문을 발송했다. 공문의 취지는 영화 「실미도」에 삽입된 '적기가'가 초·중학교 학생들 사이에 휴대전화 벨소리나 MP3 파일 등을 통해 널리 유포돼 '대북 경각심 이완'을 초래하고 있으니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교육해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교육부는 적기가의 유래를 설명하면서 " '적기가'는 원산 총파업 시 노동자, 제주4·3폭동 시 폭도, 6·25전쟁 시 인민군 빨치산 등이 불렀던 공산혁명 선동가요"라는 표현을 쓰고 말았다.

"높이 들어라 붉은 깃발을…"이란 가사로 유명한 적기가는 독일 민요와 영국의 노동가요에서 출발했고, 1930년대 일본을 통해 한반도에 들어왔다. 일제 때는 일제에 저항하기 위한 항일투쟁가요로 애창됐고, 해방 후에는 좌파 쪽에서 즐겨 불렀다. 이 적기가는 1948년 남한 정부에 의해 금지곡이 된 반면, 북한에서는 공식적인 혁명가요가 되기도 했다. 4·3을 전후해서도 종종 불렸다는 증언들이 있다.

그럼에도 교육부의 적기가에 대한 설명은 적절치 못했고, 특히 4·3을 언급하며 '폭동·폭도'란 표현을 쓴 것이 논란이 됐다. 종전 같으면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사안이었지만,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보고서가 나오고 대통령의 사과까지 나온 마당이어서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 공문을 받아든 제주도교육청 관계자들이 먼저 화들짝했다. 교육부에 공문 내용에 문제가 있다고 제기하는 과정에서 언론이 감지, 크게 보도하게 된 것이다. 문제된 내용에 대한 보도가 나오자 제주4·3도민연대와 4·3연구소 등 4·3 관련단체가 교육부의 즉각적인 사과와 관계자의 문책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서울에 있는 4·3위원회에 근무하던 필자는 이 소식을 듣고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법정보고서'라고 자부하던 4·3진상조사보고서가 확정된 이후 처음으로 정부 기관에 의한 4·3 표현이 문제가 됐기 때문이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는 생각에 이를 반박하기 위한 여러 자료들을 챙겼다.

문제 보도가 나온 바로 그날 오후에 강택상 지원단장과 필자는 광화문 정부종합청사에 있는 교육부를 항의 방문했다. 교육부 이수일 학교정책실장 등을 만나 단단히 따지려고 했는데, 이 실장이 먼저 꼬리를 내렸다. 이 실장 말인즉, "새로 업무를 맡은 교육연구관이 '적기가' 확산 차단 교육 공문을 만드는 과정에서 기존의 자료를 인용하다보니 본의 아닌 실수를 범했다"면서 문제의 공문을 회수해서 새로 수정된 공문을 시달하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 실장은 더 나아가 "교육부 간부와 직원들에게 이같은 사실을 알려 4·3으로 인한 문제가 재발되지 않도록 조치하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이같이 교육부 관계관이 적극적 시정을 약속하는 바람에 더이상 따질 수가 없었다. 다만 전국 고등학교에 4·3진상조사보고서 배포에 대해 협조할 것과 교과서 개정 등의 후속조치에 교육부가 성의를 가져줄 것을 촉구하는 수준에서 면담을 끝냈다.

당시 전국의 고등학교는 2002개였다. 처음 4·3진상조사보고서를 4000권 발간했기 때문에 전국 고교에 배포할 수 있는 여력이 없었다. 그런데 이 공문 파동이 계기가 되어 4·3진상조사보고서의 추가 발간 필요성이 제기됐고, 강택상 지원단장이 흔쾌히 이를 받아들였다. 그래서 2500권을 추가로 만들어 전국 고교에 진상조사보고서를 발송할 수 있었다.  

교육부는 2005년 교육과정 부분 개정 때 국정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 제주4·3사건에 대한 설명 항목을 신설했다. 즉 "제주도 4·3사건(1948년)-제주도에서 벌어진 단독선거 반대 시위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수만 명의 인명 피해가 일어난 사건"이란 내용이었다. 비록 짧은 글이었지만, 과거 교과서에 나오는 "북한 공산당의 사주아래 제주도에서 일어난 폭동…"이란 표현과는 사뭇 다른 내용이었다.

또한 검정 고등학교 「한국근현대사」 교과서에는 더욱 구체적으로 사건의 배경과 피해 상황 등을 언급하는 책들이 나왔다. 4·3의 비극을 다룬 현기영의 소설 「순이삼촌」을 소개한 교과서도 있다.

그러나 4·3관련 교과서 개정문제는 이후 정권이 바뀌면서 더이상 진전이 없는 상태다. 교과서 개정도 어떤 성향의 정부가 출범하느냐에 따라 연동되는 것 같다. 그 어느 때라 할지라도 4·3에 관한 교과서 수정내용은 '법정보고서'의 지위를 갖고 있는 4·3진상조사보고서가 기준이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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