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 - 양조훈 육필기록] <160> 보고서 일본 보고대회

   
 
  2003년 4월10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행사에서 4·3진상조사보고서에 대해 강연하고 있는 필자.  
 

대통령 사과 영상 보며 재일동포들 눈물
조선학교의 마당극 공연으로 조사받기도

보고서 일본 보고대회
2003년 4월10일 일본 도쿄 한복판인 닛포리(日暮里) 랑그우드호텔 사니홀에서 제주4·3사건 55주년 기념행사가 성대히 열렸다. 이날 500명이 수용할 수 있는 행사장에 700명의 관중이 몰려 일부 참석자들은 바닥에 앉기도 했다. 필자의 특별 강연과 제주민예총 소속 놀이패 한라산의 4·3 마당극 공연이 있는 행사였다.

1988년부터 일본 도쿄 중심으로 활동해온 '제주4·3사건을 생각하는 모임'은 고국에서 4·3특별법이 제정되고, 진상조사보고서가 확정되는 단계에 이르자 특별한 행사를 준비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진상조사보고서에 대한 설명과 이를 경축하는 마당극 초청공연이었다. 이 일을 위해 그동안 4·3 알리기에 헌신적인 활동을 해온 고이삼·문경수·조동현 등이 발벗고 나섰다.

   
 
  일본 월간지 「세카이」에 실린 '한국에서의 역사와의 화해…'란 제목의 필자 원고.  
 
여기서 '특별한 행사'라 한 것은 행사 내용만이 아니라 행사 준비과정이 특이해서이다. 4·3 활동가들은 일본에서 이념적 갈등 때문에 좀처럼 자리를 같이 할 수 없는 재일본대한민국민단(민단)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총련) 관계자들을 끌어들이는 작업을 벌였다. 4·3의 진상규명을 매개로 "일본 내에서라도 삼팔선을 없애자"는 선언적 캠페인이 먹혀들어 양쪽에서 120명의 후원자들을 모았다. 모금한 성금만도 5000만원에 이르렀다. 공동대표에는 4·3 진영의 소설가 김석범·양석일, 문경수 교수 이외에도 민단과 총련, 재일본제주도민협회 간부들이 함께 추대됐다.

필자의 강연 제목은 '정부 4·3사건진상조사보고서의 의의'였다.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를 통해 국가공권력의 잘못으로 무고한 희생이 발생되었음을 밝혔고, 그 조사결과를 토대로 대통령의 사과 등 7개항을 정부에 건의했다고 발표하자 관중석에서 박수가 터졌다.

마당극 '한라의 통곡'(연출 김경훈·각색 장윤식)은 400명 가까이가 한꺼번에 희생된 '북촌 주민 학살사건'을 극화한 작품이었다. 비극적인 사건 재현과 함께 당시 주민들의 애환을 구수한 제줏말로 쏟아내 관객들을 웃기기도 하고 울리기도 하면서 여러 차례 박수를 받았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관객들도 함께 하는 위령제로 진한 감동을 줬다.

다음날인 11일에도 같은 장소에서 관객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행사가 진행됐다. 4·3 기념행사가 성황을 이루자 일본 언론에서도 비중있게 보도했다. 김석범 선생은 「오마이뉴스」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이 나이까지 살아서 이렇게 좋은 일도 본다. 나는 이런 일이 있어 고맙기도 하고 정말 행복하다고 느낀다"는 소회를 피력했다.

그런데 돌출적인 상황이 일어났다. 총련 소속 조선학교에서 우리 공연팀을 초청한 것이다. 공무원 신분인 필자는 난감했다. 당장 진상조사보고서를 마무리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사전 신고 없이 조선학교에 갔다가 자칫 이념 논쟁에 휘말릴 개연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4월12일 필자는 빠진 상태에서 놀이패 한라산 공연팀이 도쿄 조선중고급학교에 들어가 학생 1000명이 지켜보는 가운데 마당극을 펼쳤다. 조선학교 역사상 대한민국 국적의 공연팀이 들어가 공연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공연팀이 귀향하자 검찰이 한라산 김영진 대표를 소환했다. 경위를 조사했으나 자연 발생적으로 생긴, 이념적 의도가 없는 일로 밝혀져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그것도 노무현 정부 시절이었기 때문에 가볍게 넘어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필자는 이때의 강연이 인연이 되어 일본의 대표적인 월간지 「세카이」(世界)로부터 원고 청탁을 받았다. 그 원고는 4·3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 발표 직후인 2003년 12월호에 '한국에서의 역사와의 화해-제주도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와 노무현정권'이란 제목으로 실렸다.

2004년 4월에도 일본에서 4·3 강연과 민속극 공연이 있었다. 4월24일 도쿄에서, 4월27일에는 오사카에서도 열렸다. 강사는 국회의원 당선자 신분인 강창일 전 4·3연구소 소장이었다. 그런데 강창일 당선자가 도쿄 행사만 마치고 급히 귀국해야 할 상황이 생겼다. 그러자 주최 측은 서울에 있는 나에게 강연 대타로 SOS를 쳤다.

오사카로 급히 날아갈 수밖에 없었다. 대통령 사과 이후여서인지 오사카 행사장에는 1000여명의 청중이 운집했다. 나의 강연에 이어 노무현 대통령 사과 장면이 영상으로 비쳐지자 참석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박수를 쳤다. 재일동포들의 가슴에 남았던 4·3의 한이 얼마나 깊었는지 절로 느껴졌다. 

☞다음회는 '보수단체의 헌법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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