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 - 양조훈 육필기록] <162> 보수단체의 헌법소원 ②

헌재 "보고서는 사건 성격 등 기재" 평가
이진우 변호사, 세 번째 도전에서도 패소

보수단체의 헌법소원 ②

   
 
  2004년 8월 4·3진상조사보고서와 대통령의 사과가 위헌이라는 보수단체의 청구를 각하한 헌법재판소 결정문. 청구인 6명의 이름과 대리인 이진우 변호사, 피청구인으로 대통령과 4·3위원회가 명시돼 있다.  
 

2004년 7월 보수단체들이 제기한 헌법소원은 일파만파 파장을 일으켰다. 보수단체에서는 "현 정부가 확정한 4·3진상조사보고서와 대통령의 사과 절대 인정할 수 없다", "대통령과 정부는 4·3사건을 무장봉기로 규정한 역사왜곡을 즉각 취소, 전면 수정하라"는 성명 이외에도 헌법소원을 내면서 제주도민들을 빨치산 협력자로 매도해 공분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이런 헌법소원에 일부 제주도민들이 참여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아무리 극우적 사고를 한다 해도 제주사람이면서 이 헌법소원에 참여한 것은 너무했다. 정말 제주사람 맞느냐"는 비난이 일었다. 제주4·3유족회 등 4·3 관련단체들은 7월21일 성명을 통해 "제주도민은 너희들의 이름을 잊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결코 너희들을 용서치 않을 것이다"고 직격탄을 날린 것이다.

그 다음날인 7월22일 헌법소원에 참여한 대한민국재향경우회 제주도지부(회장 김영중)와 대한민국건국희생자 제주도유족회(회장 오형인) 관계자들이 제주도청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내용들 중에 부적절한 표현이 있다며 해명하고 나섰다. 그들은 제주도민들을 4·3 당시 빨갱이를 도와준 부역자로 규정한 것 등 몇가지 부분은 잘못된 것이라고 해명하고, "이로 인해 도민들에게 심려를 끼쳐 드린데 대해 대단히 죄송하게 생각한다"고 사과 입장을 밝혔다.

그들은 이선교 목사가 제주에 내려와 헌법소원에 동참해달라고 해서 참여한 것이지만 "헌소 내용을 보지도 않은 채 서명하고, 청구인과 전문위원으로 참여하게 된 것은 분명한 오류였다"고 꼬리를 내렸다. 그러면서도 4·3진상조사보고서가 좌편향되고, 왜곡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진상조사보고서와 대통령 사과에 대한 헌법소원은 그대로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이들만이 아니라 전문위원으로 이름을 올린 일부 제주출신 보수논객들도 자신이 동의한 바 없다고 부인하고 나섰다. 이에 대해 이선교 목사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제주도 4·3사건에 대해 헌법소원을 하는 것인데, 제주도 사람들이 다 빠지면 누가 할 것이냐, 서울에는 4·3을 연구한 사람이 별로 없다. 그래서 내가 일방적으로 넣었다"고 궁색한 변명을 했다.

이 목사는 문제된 내용들에 대해서는 "내가 작성한 것은 아니다. 이진우 변호사가 혼자서 쓴 것이다. 이 변호사는 현재 유럽에 가 있어서 연락이 안되고 있는데, 연락이 닿으면 일부 내용을 수정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 목사 역시 헌법소원 자체를 포기할 생각은 결코 없다고 강조했다.

이진우 변호사는 4·3특별법이 제정된 직후인 2000년 2월 「월간조선」에 "국군을 배신한 국회-공산게릴라들에겐 면죄부를 주고 국군을 학살범으로 정죄한 4·3특별법"이란 매우 선정적인 기고문을 통해 4·3특별법의 국회 통과를 개탄한 바 있다. 한때 민정당 정책위의장을 지낸 그는 1999년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자가 "4·3계엄령은 불법"이라고 보도한 「제민일보」를 상대로 3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할 때 원고측 변호인으로 참여했다가 패소의 쓴 맛을 봤다. 그는 또 2000년 4월 보수 인사와 예비역 장성들이 4·3특별법을 위헌이라면서 헌법소원을 제기할 때에도 변호인단으로 참여했다가 역시 패소했다. 이번엔 4·3진상조사보고서와 대통령의 사과가 위헌이라면서 4·3과 관련한 세번째 사법적 도전을 한 것이다.

이에 맞서 4·3위원회는 행정자치부 고문 변호사였던 배병호·정연순 변호사와 4·3계엄령 불법 손해배상 소송에서 승소한 바 있는 제주출신 문성윤 변호사를 소송 대리인으로 위촉, 대응에 나섰다. 물론 4·3위원회 전문위원실에서 청구인 측의 부당한 주장에 반박하는 관련자료를 제공했다.

2004년 8월17일 헌법재판소는 이 헌법소원을 각하 결정했다. 헌법재판소 지정판결부(재판장 김경일)는 관여재판관 전원일치로 "청구인들이 제기한 헌법소원 청구는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수 없는 행위에 대한 위헌확인을 구하고 있으므로 부적법하다"면서 각하 결정을 내린 것이다.

재판부는 4·3진상조사보고서에 대해 "4·3특별법의 입법목적 수행에 필요한 근거자료 마련 차원에서 작성된 것으로 사건의 성격, 발생원인과 경과, 피해상황 등 진상조사 결과가 기재된 것"이고, 대통령의 사과에 대해서는 "대통령이 국가 내지 정부를 대표하여 유족 등에게 제주4·3사건에 대한 공식 입장을 밝히면서 사건으로 인한 희생에 관한 의견과 감상을 표명한 것"이라면서 이는 헌법소원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헌법재판소가 4·3진상조사보고서에 '사건의 성격' 등 진상조사 결과를 기재했다고 밝힌 점이다. 앞에서 밝혔지만, 진상조사보고서 서문 작성을 둘러싸고 격한 논쟁이 벌어진 이후 "사건 전체에 대한 성격이나 역사적 평가를 내리지 않았다"는 애매한 내용이 기술됐지만, 사법부는 사건의 성격을 기재했다면서 그와 다른 견해를 표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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