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 - 양조훈 육필기록] <163> 국방부 「6·25전쟁사」 파동 ①

민간인 희생 외면…기존의 '폭동론' 답습
국방장관 옹호 발언에 4·3진영 강력규탄

국방부 「6·25전쟁사」 파동 ①

   
 
  2004년 국방부가 '전쟁의 배경과 원인'이란 제목으로 발간한  「6·25전쟁사」 제1권. 4·3에 대한 왜곡, 폄하 기술로 인해 파동이 일어났다.  
 

2004년 7월 보수단체가 낸 헌법소원 못지않게 국방부가 발행한 「6·25전쟁사」 파문도 논란거리였다.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가 편찬한 이 책에 제주4·3을 '무장폭동'으로 기술하는가하면 오류와 왜곡사례도 수두룩해서 큰 파장이 일어난 것이다.

국방부는 6·25전쟁에 관한 정부 공식 역사서로 1967년부터 13년간에 걸쳐 「한국전쟁사」(전 11권)를 발간한 바 있다. 국방부는 「한국전쟁사」 발간이 오래 전에 있었고, 미국과 구소련, 중국 등에서 새로 발굴한 문헌자료와 학계의 연구 성과, 참전용사 4000명의 증언자료 등을 반영해서 모두 18권의  「6·25전쟁사」를 새로운 각도로 쓴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그 첫권으로 '전쟁의 배경과 원인'을 발간한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 제주4·3을 '무장폭동'으로 표기했다는 문제 제기가 4·3관련단체로부터 나왔다. 4·3위원회 전문위원실에서 얼른 이 책을 입수해서 분석했다. 총 28페이지에 걸쳐 언급한 제주4·3 관련 부분에서 30여군데의 문제가 발견됐다. 정부 위원회가 발간한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를 철저히 묵살하고, 기존의 폭동론과 토벌의 정당성을 그대로 답습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4·3의 직접 발발 원인이 된 1947년 3·1 경찰 발포사건부터 왜곡했다. 아울러 3·1사건 이후 발생된 2500명의 검속, 3건의 고문치사 등에 대해서는 한번의 언급도 없이 남로당 활동만 부각시켰다. 초토화작전에 대해서도 "포로가 된 인민유격대도 처형하지 않았고, 양민으로 인정된 자는 전원 귀향조치했다"고 왜곡했다.

또한 민간인 희생사실을 철저히 외면하면서, 오히려 군인들에게 민간인 80여명이 희생된 의귀리사건에 대해서는 "주민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30여명을 사살했다"고 기술했다. 더욱 어이가 없었던 것은 이미 폐기처분된 2000년판 「제주경찰사」에서 여덟 군데나 인용한 점이다. 경찰사는 발간 직후 4·3 관련 부분에 많은 오류와 왜곡으로 물의를 빚자 2000년 11월 제주경찰청 스스로 공식 폐기했던 문건이다.  

이런 내용상의 왜곡 못지않게, 국방부가 정부의 진상조사보고서나 대통령의 사과라는 정치적 행위를 애써 외면하거나 묵살하는 의도를 보였다는 점이 더욱 심각한 문제였다. 이것은 자칫 국군 통수권자에 대한 항명으로 비쳐질 수 있는 사안일 뿐 아니라, 4·3 치유의 향방에도 중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었다.

이와 같은 문제가 불거지자, 7월9일 제주4·3연구소장 출신인 강창일 국회의원(열린우리당)이 우리 전문위원실에서 분석한 자료를 토대로 조영길 국방장관을 상대로 10개 항의 서면 질의를 했다. "국방장관은 4·3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해놓고도 정부 진상보고서를 단 한 줄도 인용하지 않고 철저히 묵살한 저의는? 진상보고서를 인정하지 않는가?", "민간인 희생 부분에 대해서 철저히 외면하고 있는데, 장관은 진압작전의 민간인 희생을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인가?", "장관은 국가권력에 의한 민간인 희생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가 잘못됐다고 판단하는가?" 등을 따졌다.

7월12일 임종인 의원(열린우리당)도 대정부 질문에서 국방장관에게 제주4·3을 '폭동'으로 표현한 문제 등을 따져 물었다. 이에 대해 조영길 장관은 "6·25전쟁사에서 폭동이란 표현은 딱 두번 썼다. 이는 사건의 전개과정을 표현한 것으로, 제주4·3사건 전체의 성격을 정의한 목적에서 썼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조 장관은 또 "폭동이란 수식어를 썼다고 해서 4·3사건 성격을 왜곡하거나 변조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덧붙여  「6·25전쟁사」를 옹호했다.

이에 4·3진영이 발끈했다. 7월13일 제주4·3희생자유족회(회장 이성찬)·4·3연구소(소장 이규배)·민예총 제주도지회(지회장 김수열)가 긴급 대책회의를 가졌다. 이들 단체 대표들은 다음날인 7월14일 제주도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주4·3사건에 대한 대통령의 사과문과 국방부에서 발간한  「6·25전쟁사」 내용이 판이하게 다른데 참여정부의 입장은 과연 무엇인지 밝히라"고 노무현 대통령에게 공개 질의했다. 아울러, 국방장관의 사과와  「6·25전쟁사」의 회수 폐기, 관련자 문책 등을 요구했다.

7월15일에는 제주도의회와 4·3도민연대(공동대표 고상호·고창후·김평담·윤춘광·양동윤)가 나섰다. 도의회는 이날 4·3특별위원회(위원장 강원철)가 제안한 건의문을 도의원 전원의 서명으로 채택했다. 도의원들은 이 건의문을 통해 " 「6·25전쟁사」의 은폐와 왜곡 사태는 그동안 도민들이 조심스럽게 쌓아 올린 진실의 탑을 송두리째 허물고 우롱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정부에 대해 재발 방지 대책과 문제의 책 전량 폐기를 주장했다.

4·3도민연대도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노무현 대통령은 이번 사태에 대해 진상을 즉각 조사하고, 국방장관과 군사편찬연구소 관계자를 엄중히 처벌하라"고 요구했다. 또한 국회에 대해서는 4·3특별법을 제정한 입법기관으로서 특별법의 권위를 지켜줄 것을 촉구했다. 이와 함께 도민연대는 청와대와 국회를 항의 방문하겠다고 밝혔다.

☞다음회는 '국방부  「6·25전쟁사」 파동' 제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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