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 진실찾기 그 길을 다시 밟다 - 양조훈 육필기록] <164> 국방부 「6·25전쟁사」 파동 ②

   
 
  「6·25전쟁사」 파동 결과 청와대의 중재로 4·3 관련 왜곡부분 등 35건을 수정하기로 결론이 난다. 군사편찬연구소 최종대 대령과 필자가 서명한 합의서.  
 

청와대, 국방부-4·3관계자 불러 대책회의
쌍방 대립하자 청와대가 "수정하라" 설득

국방부 「6·25전쟁사」 파동 ②
2004년 7월 「6·25전쟁사」 파문이 일어났을 때 4·3유족회·4·3연구소·4·3도민연대 등 4·3 관련단체와 제주도의회 등은 한결같이 국방부가 정부 보고서인 4·3진상조사보고서를 철저히 외면한 사실을 지적하고, 한목소리로 이를 규탄했다. 4·3 관련단체들은 4·3진상조사보고서를 "국가의 공식적인 보고서", 혹은 "제주4·3사건에 관해서는 재론의 여지가 없는 정사(正史)"로 규정하고 이를 외면한 국방부를 질책하고 나선 것이다.

이들 단체는 4·3진상조사보고서의 조사 결론을 토대로 대통령이 사과했음을 강조하면서 어떻게 국방부가 이를 묵살할 수 있느냐고 따진 것이다. 일부 4·3 관련단체가 2003년 10월 4·3진상조사보고서가 최종 확정됐을 때, 이를 '미완의 보고서'로 규정하면서, "미완의 보고서를 뛰어넘는 '4·3정사'를 새롭게 편찬하겠다"고 밝혔을 때와는 사뭇 다른 태도였다.

이렇게 4·3 관련단체와 제주도의회까지 합세해서 「6·25전쟁사」의 시정을 요구했지만 국방부 측은 계속 버티기 작전으로 들어갔다. 7월19일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는 4·3연구소에 보낸 회신 공문에서 "「6·25전쟁사」는 전쟁사 기술방식으로 작성했고, 4·3위원회에서 논의된 내용을 전체적으로 고려, 최종 발간했다"는 궁색한 변명을 했다.

조영길 국방장관은 7월22일 강창일 의원의 서면 질의에 대한 답변서를 통해 4·3진상조사보고서의 사료적 가치와 군경 진압과정의 민간인 희생이 있었음을 인정하면서도, 4·3 관련부분의 전면 수정이나 사과, 관계자 문책 등을 거부했다. 조 장관은 '무장폭동'이란 표현에 대해서도 "군사적인 용어를 사용한 것"이라며, 사소한 오류에 대해서는 '정오표(正誤表)'로 교정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강창일 의원뿐만 아니라 4·3 관련단체들이 발끈했다. 4·3유족회·연구소·도민연대와 제주민예총, 백조일손유족회(회장 조정배)까지 가세한 5개 단체는 7월26일 「6·25전쟁사」의 4·3 왜곡을 바로잡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나서라고 촉구했다. 또한 이 책의 전량 폐기뿐만 아니라 국방장관과 군사편찬연구소 관련자의 문책을 강도 높게 요구했다.

이제 공은 청와대로 넘겨진 상황이었다. 이에 앞서 7월20일 4·3도민연대 고성화 상임고문, 김평담·양동윤 공동대표, 김용범 운영위원이 청와대를 방문, 시민사회수석실 황인성 비서관 등과 만나 「6·25전쟁사」 왜곡에 대한 도민사회의 분노를 전하면서, 이를 시정하기 위한 진정서를 반드시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달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렇게 되자 청와대도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 없게 되었다. 7월26일 오후 청와대 국방보좌관실에서 윤광웅 국방보좌관(예비역 해군 중장) 주재로 「6·25전쟁사」 관련 대책회의가 열렸다. 청와대 측에선 윤 보좌관과 김종대 국방보좌 행정관, 기춘 시민사회 행정관이,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에선 안병한 소장(예비역 육군 소장), 최종대 연구부장(현역 육군 대령), 양영조 박사가, 4·3위원회에선 배윤호 지원과장(당시 지원단장 공석 중)과 수석전문위원인 필자가 참석했다.

먼저 안 소장이 국방부 입장을 설명했다. 요약하면, 선배 군인들이 기록한 내용을 중심으로 「6·25전쟁사」의 4·3 관련부분을 기술했다는 것이다. 이어 필자가 4·3위원회의 입장을 설명했다.

"국방부 기존 기록이 문제가 있었기에 4·3특별법이 제정되고, 정부 차원의 진상조사가 진행된 것이 아닙니까. 많은 논란 있었지만 결국 국방부 쪽에서도 참여한 가운데 '무장폭동' 용어를 삭제하지 않았습니까. 국무총리가 주재한 회의에서 보고서가 확정되고, 이에 따라 대통령이 사과까지 한 마당인데 국방부가 이제 와서 과거의 논리로 회귀하겠다면 누가 신뢰하겠습니까?"

내가 되묻는 식으로 말을 이어나가자 안 소장이 바로 항변하려는 듯 말문을 열었다. 그때 회의를 주재하던 윤 국방보좌관이 안 소장의 말을 가로막았다.

"안 장군, 이제 국방부도 달라져야 합니다. 국방부도 아픈 역사를 풀어주는 차원에서 합리적인 수정방안이 모색돼야 할 겁니다. 그래야 국민으로부터 사랑받는 강한 군대의 모습이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아울러 제주도민들도 국방부의 입장을 십분 고려하여, 슬기롭게 이 문제를 풀어주실 것을 바랍니다"

그러자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날 회의는 그후 2시간 동안 진행됐다. 청와대의 수정 의지가 분명하게 드러남으로써 국방부 쪽에서도 더 이상 이의를 달지 않았다. 이날 회의에서 다음과 같은 3가지 원칙이 합의됐다.

1) 「6·25전쟁사」 중 사실과 다른 4·3내용을 협의 수정하되, 수정안을 4·3위원회에서 만든다.
2) 수정작업은 8월중 마무리한다.
3) 협의가 완료될 때까지 「6·25전쟁사」 배포를 중단한다.

이런 수정 원칙은 이틀 후 청와대 윤광웅 국방보좌관이 국방장관으로 전격 발령이 나 취임하면서 더욱 탄력을 받게 됐다.

☞다음회는 '국방부 「6·25전쟁사」 파동' 제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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